이제는 집보다 사람이 보인다
나는 북한강변 아름다운 곳에 산다. 북한강은 주변 산이 높고 강폭이 넓다.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북한강은 마치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만대루 앞 낙동강을 바라다보는 것 같다. 2층에 올라가 병풍을 두른 듯한 앞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잔의 맛이 꽤 괜찮다. 그동안 몇 년의 시간은 동네 모습보다는 경치에 취해 살았던 시간이었다. 사실 동네가 눈에 들어오기 시간 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경치가 좋은 곳은 어디나 그렇듯 일단 동네에 들어서면 펜션이 보인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동네에는 거의 펜션만 있는 줄 알았다. 오래 살다 보니 차츰차츰 원주민 어르신이 사시는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이 사시는 건물은 오래되고 규모도 작고 주변에 논이나 밭을 끼고 있어 눈이 띄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주택을 농가주택이라고 부른다. 동네 집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업적인 목적이 있는 펜션이나 음식점, 어르신들이 사시는 오래된 주택, 수도권에서 생활하며 별장으로 쓰이는 몇몇 채의 별장주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 동네가 나에게는 삶의 공간이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경치가 좋고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주변에는 수상스키를 비롯한 물놀이 시설 자전거길 레일바이크 등 놀이시설이 다양하다. 빡빡한 도시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일일생활권으로 아니면 2~3일 머물곤 한다. 요즘 지방도시는 어디라도 그렇겠지만 정주공간으로서의 기능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다 언젠가는 소멸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 동네는 강에서 산으로 난 골을 따라 농사를 짓고 살던 평화로운 오지마을이었다. 다리가 놓아지면서 수도권과 접근성이 좋아져 유원지로 바뀌었다.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에는 강을 따라 도시가 발달하기 때문에 물길이 사람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했다. 자동차가 새로운 교통수단이 되면서 혈관은 도로로 바뀌었다. 산과 강이 많은 우리나라는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었다.
다리와 터널은 지역환경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이곳에 경기도와 강원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이면서 가장 많이 상황이 바뀐 곳이 우리 동네다.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이곳을 오지마을에서 물놀이는 물론 각종 놀이의 핫플레이스로 격상했다. 휴일이면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동네에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타 지역에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한평생을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아들 낳고 딸 낳고 사셨다고 한다.
대부분의 건물은 목적에 따라 규모나 모양에 달라진다. 건물을 보면 그 동네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알 수 있다. 강을 바라보는 경치가 좋아 동네에는 차츰차츰 펜션이 지어졌다. 펜션건물은 규모가 크고 독특하게 지을수록 사람들의 인지도가 높아지니 외관이 특이한 건물이 많다. 콘셉트에 따라 건축재료 색상이 일반 주택과는 다르다.
살다 보면 어느 곳이나 그 지역 나름의 특징과 정보를 알게 된다. 이곳에 살면서 펜션 사업에 관해 아는 것이 많아졌다. 우리가 펜션펜션 하지만 사실 법적으로 펜션이라는 용어는 없다고 한다. 우리가 펜션이라고 하는 상업시설물은 원래 농가주택으로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농어촌 민박이다. 농어촌 민박은 정부에서 농어촌의 시설을 이용해서 소득을 목적으로 소규모 숙박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 것이다. 우리가 펜션펜션 부르는 숙박시설은 농어촌 민박이 정확한 표현이다. 만일 농어촌 민박이 규정하는 규모보다 크게 사업을 한다 하면 호텔이나 모텔과 같이 정식 숙박시설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시적인 유행에 민감하다. 건물에서도 나타난다. 오래된 건물 중에는 벽돌로 지은 건물이 남아 있다. 펜션문화가 정착하던 시기 뭔가 다르게 보이기 위해 그런지 거대한 규모의 통나무 건물이 많았다. 현재 지진에 취약한 조적조 건물은 지어지지 않는다. 요즘은 건물은 규모나 모양이 부담스럽지 않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에 파벽돌을 붙여 튼튼하고 세련된 모양의 건물이다.
펜션은 상업시설이기 때문에 여행유형에 따라 규모나 내부시설이 달라진다. 어디도 갈 수 없었던 코로나 시절이에는 아이들을 위한 풀빌라가 유행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풀빌라라는 말이 많은 시설이 갖추어지다는 뜻(FULL)으로 생각했다. 어느 날 (POOL)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 시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조금은 황당했다. 지금 유행은 커플 중심으로 인터넷에 올릴 사진이 잘 나오는 집이라 한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건물이 모여있는 동네 풍경은 재미가 있었다. 재료에 따라 쓰러져가는 흙벽의 스레트 건물에서부터 벽돌건물, 통나무 건물, 요란한 색을 칠한 콘크리트 등 알록달록 재미가 있었다. 같은 통나무집이라도 나무의 종류에 따라 건물의 색이 달랐다. 멀리 보이는 동네는 그야말로 그림 같았다.
펜션건물은 과도하게 웅장하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강너머 볼 때 상당히 그럴듯하다. 하지만 살면서 자세히 보면 부족한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펜션은 상업건물이기 때문에 예술성보다는 투자대비 수익에 중점을 두고 지은 건물이다. 정교하고 튼튼한 디테일이 없다. 마치 허우대만 멀쩡하고 연약한 사람 같다. 유행이 지나고 나면 정이 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주를 위해 지은 집보다 더 낡아 보인다.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그곳은 펜션단지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관광객이 많을 때는 건물이 멋있어 보였는데 관광객이 오지 않으면서 크고 화려한 건물들이 더욱 쓸쓸해 보인다. 크고 국적을 알 수 없는 과장된 모양 빛바랜 색상이 마을을 더욱 처량하게 만든다. 사람이 떠난 마을은 어디나 같다.
너무 많은 관광객은 마을을 폐허로 만든다.
마을이 따뜻하려면 정주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춘천에 인연을 맺은 지 몇 해가 지났다. 어느 날 돌아보니 동네 펜션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통나무 펜션 토야도 철거되고 로그 하우스도 철거되고 정겨운 아침햇살도 유럽식 지붕을 가진 해든가든도 철거되었다. 다양한 모양의 펜션들이 우리 동네 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 둘 철거될 때마다 안타까웠다. 유럽의 건물들은 수 백 년이 지나도 보존되고 있는데 이십 년도 안된 펜션들이 철거되는 것은 엄청난 자원 낭비가 아닐까? 얼마 지나지 않아 궁금증이 풀렸다.
우리 동네는 수자원 보호구역이다. 수도권 식수를 제공하는 팔당댐의 상수원으로 수질을 보존하기 위해 강력하게 개발이 제한되고 있다. 강 주변에 강을 오염시킬 수 있는 어떤 시설도 짓지 못하도록 할뿐더러 국가는 강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강 주변의 땅을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땅 주인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땅값과 건물값을 보상해 준다. 이렇게 좋은 법이 펜션 철거의 주범이었다.
건물주인은 펜션의 트렌드가 바뀔 때쯤 땅을 국가에 판다. 트렌드가 지난 펜션은 개인 간의 거래에서는 제값을 받기 힘들다. 국가와 거래는 땅값과 건물값을 함께 받을 수 있다. 펜션 주인들은 그 돈을 받아 다른 곳에 최신의 트렌드로 다시 짓는다. 국가는 수자원 보호 측면에서 땅과 건물을 매입하는데 수자원 보호를 위한 좋은 뜻의 법이 자원을 낭비하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었다.
지역의 개발과 보존 사이에 목표하는 바가 상충되기도 하고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다. 법에 따라 정책에 따라 어느 쪽에서는 타당하기도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말이 되지 않게 생각되기도 한다. 전 국토가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에 이러한 사례는 상당히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복잡한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보존주의자다. 동네가 별안간 많이 바뀌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많은 것을 자원은 물론 우리의 기억까지 보존하는 것을 선호한다. 처음 집을 구입했을 때 기존의 집을 철거하고 다시 지을 것인가 남길 것인가 개인적으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기존의 집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집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건물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추억이 남아 있다.
집을 철거한다는 것은 건물에서의 기억까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리모델링을 선택했는데 공가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양을 보고 놀랐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원보존의 효과는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 집 옆 넓은 밭에는 평생을 그곳에서 농사짓던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조상에게 땅을 물려받아 그 밭을 일구고 살아오셨다. 농부들은 지혜롭다. 언제 무엇을 심을 것인지 밭매기는 언제 할 것인지 비료는 언제 얼마큼 줄 것인지 할아버지의 머릿속에는 농사의 모든 것이 입력돼 있었다. 할아버지는 여유롭고 근면하셨다. 여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하셨고 땡볕이 내리쬐는 오후에는 마을 사람들과 게이트볼을 치며 인생을 즐기셨다.
언제 봐도 할아버지는 험한 일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밭에서 일을 하실 때도 의관을 갖추셨다. 모자를 쓰고 깨끗한 복장으로 트랙터를 몰던 할아버지는 멋졌다. 어느 날 허리에 주머니를 차고 조를 수확하셨다. 조 수확하는 도구는 면도칼이었다. 모종을 심은지 얼마 되지 않은 밭에서 새벽에 긴 호미로 땅을 긁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어느 때 밭을 갈면 쉬운가 알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농산물은 건강하고 깨끗했다. 농사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든다.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옥수수도 사고 좁쌀도 샀다.
겨울이 지나고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봄여름가을겨울을 보내 듯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셨다.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 요양원에 누워서 말년을 보내지 않으셨다.
동네를 들어오는 곳에 담도 울도 없는 통나무집이 있다. 그곳에는 올해 90이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신다. 마당은 넓고 항상 깨끗했다. 할머니가 꽃을 좋아하셔서 마당 끝 꽃밭에는 사시사철 꽃이 핀다. 할아버지는 건강하고 부지런하셨고 할머니는 성격이 명랑해 볼 때마다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그런 집이 있는지도 어떤 사람이 사는지도 몰랐다. 그저 멋진 펜션만 보였다. 지금은 이곳에서 오래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열심히 일한다.
우리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배울 것이 많다.
나는 우리 동네가 오래도록 정주공간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나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노인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나도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늙어가고 싶다.
이제는 집보다 사람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