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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Jul 08. 2024

제사 - 8

개성음식 - 개성편수, 조랭이 떡국

개성편수


결혼 며칠 전 시댁에 들렸다. 


어머님은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서 막내 시누와 만두를 빚고 계셨다. 준비물도 도구도 단출했다. 어머님은 반죽된 밀가루를 밀어 피를 만들고 대학생 막내시누는 어머님이 만드신 만두피에 속을 넣으며  '엄마 이렇게 만들면 돼요?'라며 계속 물었다. 어머님은 '배를 볼록하게 속을 넣어야 예쁘다' '속을 넣고 꼭꼭 마무리를 잘해야 터지지 않는다' 등등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밀어 놓은 만두피가 어느 정도 모아지자 직접 모양을 만드셨다. 금방 한 판이 완성되었다. 어머니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님은 큰며느리 될 나를 위해 부엌으로 나가시더니 작은 소반을 내 오셨다. 소반 위에는 방금 만든 만두 10여 개를 맹물에 깨끗하게 끓여 담은 대접과 보쌈김치, 식초를 한 방울 떨어뜨린 초간장이 전부였다. 그 옆에는 빈 작은 접시가 놓여있었다. 만두가 담긴 대접은 무심한 붓터치의 그림이 그려진 품위 있는 도자기(미국에 주재원으로 간 큰딸과 나는 이 도자기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였다. 보쌈김치는 가장 밖에 있는 푸른 잎 연두색잎 노란 잎까지 걷어 김치보시기에 담았다. 벗겨진 배춧잎 안에는 잘 정돈된 배추 줄기가 가지런하고 그 위에 붉은 양념을 덮었다. 양념 위에는 하얗게 썰은 밤채, 붉은 실고추, 흰 잣 몇 개와 싱싱한 고수잎이 살포시 얹혀 있었다.


개성에서는 만두의 크기를 검지와 장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작게 빚는다. 국물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맹물에 깨끗하게 삶아 동동 띄운다. 이렇게 만든 만두를 개성에서는 만두라 하지 않고 개성 편수라고 부른다. 작고 통통한 만두가 물에 끓으면 다소 커지기는 하지만 그 양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소반 앞에 앉으면 우선 보쌈김치의 화려함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은 독특한 고수향과 잘 익은 김치의 시큼한 향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어머님은 개성편수 먹는 방법을 설명하셨다. 우선 만두 하나를 옆에 놓인 작은 빈 접시에 놓고 숟가락으로 속이 보이게 반을 자른다. 그리고 그 안에 초간장을 두어 방울 넣어 국물과 함께 입에 넣는다. 입 안에 퍼지는 고급스러운 담백한 맛이 개성편수의 맛이다. 중간중간 보쌈김치를 입에 넣으면 쨍~ 하는 맛이 입 안을 톡 쏜다. 보쌈김치의 맛이 심심한 편수맛을 입 안에서 화려하게 만든다. 


개성편수는 한 끼 깨끗하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음식이다. 






결혼을 하고 나는 명절마다 명절이 아니라도 특별한 날이면 개성편수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개성편수는 다른 만두 재료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고기 야채 두부가 들어간다. 고기는 소고기 돼지고기를 섞어 사용하였다. 소고기만 넣으면 속이 너무 딱딱하다.  돼지고기의 기름기가 어느 정도 들어가야 속이 부드럽다. 돼지고기만 들어가면 고급스러움이 떨어진다. 채소는 색과 맛을 고려해서 숙주 시금치 채친 당근을 넣는다. 채소를 더하면 편수 속이 화려해진다. 끝으로 물기를 제거한 두부를 으깨 양념을 해서 넣는다. 이 두부는 모든 재료를 엉기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에 날계란을 넣는 것도 재료가 어우러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두부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 전체적인 맛이 텁텁해진다. 모든 재료는 물기를 제거해서 각자 양념을 해서 모든 재료를 함께 섞는다. 


만들어 놓은 편수는 편수만 깨끗하게 먹을 수도 있지만 조랭이 떡국을 끓이면서 떡국 한 대접당 2~3개씩 넣기도 한다. 설날에는 편수가 든 조랭이 떡국을 한 그릇 먹는 것이 개성사람들의 가장 대표적인 설날음식이다. 






조랭이 떡국


설에 떡국을 먹는 것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다. 나이를 말할 때 자기가 먹었던 떡국의 그릇을 센다. 먹거리가 흔한 지금은 떡국 먹는 것이 큰일이 아니다. 밥 먹기도 어려운 시절 떡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있는 집에서는 생일이나 특별한 날 떡을 했는데 그 떡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일 년에 한 번 먹는 설날 떡국은 없는 집에서도 꼭 먹었고 재료며 맛이나 끓이는 방법이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대동소이하다. 


음력설이 다가오면 보통 설빔으로 옷이나 신발 등도 준비했다. 아이들이 많거나 경제적으로 힘들면 설빔 없이 설을 지낸다. 하지만 설날 먹을 음식은 꼭 준비한다. 설이 아니라도 사람이 먹어야 하니 명절에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사람 사는데 특별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어느 집이나 명절이 가까이 오면 분주해진다. 자식들이 많거나 종갓집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더 분주할 수는 있다. 


설이 다가오면 가장 바쁜 곳은 방앗간이다. 쌀을 불려 물을 빼서 방앗간에 가져가면 쌀이 담긴 대야가 줄을 서서 기다린다. 방앗간의 기계는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려면 소리를 질러야 한다. 가래떡은 굳어야 썰기 때문에 1주일 전쯤 미리 해 놓는 것이 좋다. 


우리 순서가 돼서 기계에 우리 쌀이 들어가면 몇 단계를 거치게 된다. 우선 쌀을 빻고 다음 그 쌀을 찌고 찐 쌀이 기계를 통해 가래떡으로 나오게 된다.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며 기다린다. 모두 동네 사람들이니 할 말이 많다. 그러나 가래떡이 나올 때는 방앗간 주인이 쌀의 주인을 부른다. 우리 쌀이 두 줄의 가래떡으로 나오는 순간을 주인이 직접 지켜본다. 다된 떡이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물속에 들어간 첫 부분을 잘라서 맛을 보인다. 


계속 나오는 가래떡은 일정한 길이로 잘라 집에 가져오게 된다. 집에 가져온 떡은 말랑말랑 너무 맛이 있어 식구들은 꿀이나 조청을 찍어 먹는다. 아이들은 단맛을 좋아하지만 실제 어른들은 소금 넣은 참기름을 찍어 먹는 것이 더 맛있다. 참기름은 설을 지내기 위한 준비로 바로 짠 것이 좋다. 


방앗간에서 방금 가져온 떡으로 한 번의 잔치가 끝나고 나머지 가래떡은 바람이 통하는 광에 보관한다. 3~4일이 지나면 꾸덕꾸덕해진다. 떡이 썰기 좋은 정도로 굳으면 도마과 칼을 가져와 썰기 시작한다. 길고 둥근 가래떡을 어슷어슷 썰면 이것이 설날에 쓸 떡국의 재료다. 대부분 떡국이라 하면 이렇게 가래떡을 어슷어슷 썬 모양이다.  






그러나 개성사람들은 설날이면 조랭이 떡국을 먹었다. 

조랭이 떡국이라고 해서 끓이는 방법이나 재료 자체가 다른 것은 아니다. 단지 모양이 다르다. 조랭이 떡국떡은 눈사람 모양이다.  조랭이 떡국은 우선 모양이 재미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알알이 단단해서 잘 불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설날 매번 새로 끓이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우리 아버님은 동생과 단 둘이 남쪽으로 내려오셨다. 두 형제는 모든 행사를 함께 하셨다. 설이면 작은 어머님이 내려오실 때 서울에서 조랭이 떡을 사 오셨다. 많은 식구들이 먹을 것이고 특별히 주문해서 사 오시는 것이라 한번 가져오실 때마다 많은 양을 사 오셨다. 무거운 떡보따리를 받아 펼쳐보면 동글동글 어찌 그리 예쁘던지...   수많은 탱글탱글한 작고 하얀 눈사람이 가득하다. 작은어머님은 개성에서 내려오신 할머니 분이 집에서 직접 만든 조랭이 떡이라 하셨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서도 어슷어슷 썬 가래떡으로 새해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조랭이떡을 만들어 파시던 분들도 돌아가셨고 떡을 사 오셨던 작은 어머님도 돌아가셨다. 그러나 조랭이 떡에 대한 추억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조랭이 떡을 만드는 것을 본 일은 없다. 작은 어머님께 만드는 법을 들었다. 원래 피난 오기 전 개성에서는 설날이면 집에서 조랭이 떡을 만드셨다고 한다. 쌀가루를 쪄서 떡메로 친 다음 그 떡을 목판에 놓고 어른들이 손에 기름을 발라 손가락 굵기로 가늘고 길게 밀어 놓는다. 길게 만든 떡을 여자들이 가져다 날이 무딘 대나무칼로 허리를 잘록하게 눌러 주고 다음번에 그것을 잘라내면 마치 누에고치 모양의 조랭이떡이 된다.

 

어느 날 작은어머님들이 모여 개성에서만 특별하게 이런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먹은 이유를 말씀하셨다. 떡의 모양이 가운데를 잘록하게 하는 이유는 이성계의 목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셨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사람들은 이성계에 의해 일어난 역성혁명을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예쁘게만 보였던 조랭이떡의 모양이 달리 보였다. 나도 전주 이 씨인데.....


개성사람들은 그들의 전통을 고수해 온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농공상의 조선의 신분 서열에서 가장 낮은 계급의 상업을 중시 여겼다. 지금도 개성상인은 유명하다. 현실에 밝고 실리적이며 신용을 중시하며 부지런하다. 현대 사회에 적합한 인간상이다. 개성에서는 '양반만도 못한 놈'이라는 욕이 있다고 한다. 조선의 양반제도를 무시하는데서 나온 말이라 생각된다. 조선시대 한반도 어디서나 한양을 갈 때는 올라간다고 하는데 개성사람들은 한양에 내려간다고 한다고 했다. 조선의 건국으로 수도를 빼앗긴 울분이 담겨있는 듯하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정서와 역사가 담겨있는 생활문화다. 명절음식으로 개성 편수와 조랭이 떡국을 먹는 풍습과 함께 개성 사람들의 정서까지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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