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차별 없다고 얘기한 유리방 실장
수습 노무사로서 처음 받은 과제는 ‘적극적 고용 개선 조치' 관련 논문을 읽고 컨설팅 제안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일이었다. 적극적 조치는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운 불평등 문제가 있다고 보아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추구하는 정책 행동이다. 적극적 조치로 이루어진 채용목표제 등이 여성의 노동의 양을 측정하는 반면, 구조적인 차별을 개선하고 시정하기 위한 궁극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10년 차 여성 직장인으로서 기업 내에서 경험한 차별에 대해 생각해본다.
채용차별
2016년 이후 신입사원의 성비는 8:2 정도로 10명을 채용할 경우 단 2명만이 남성이었다. 이에 대하여 관리자들은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남성 지원자를 늘리기 위한 고민을 시작하였다. 관리자들은 모두 남성이었으며, 남성 합격자가 다수였던 기존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여성 합격자의 증가는 조직의 문제가 되었다. 여성이 대다수였던 최종면접에서 남성 지원자가 등장하는 경우 면접관들이 더욱 지원자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통해, 성별의 차이가 채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업무 차별
입사 후 인사팀에 배속되었다. 인사팀 업무는 크게 인사노무, 교육 업무로 나뉘었는데, 나는 5년 이상 교육 업무를 수행하였다. 구성원들의 성장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고 조직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업무라는 점에서 자긍심이 높았으나 같은 업무를 반복하여 매너리즘을 느낄 때가 많았고, 향후 업무 수행에 있어 인사업무의 경험은 필수적이라고 생각되어, 상사에게 업무 조정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교육업무는 창의적이고 사람들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수행하여야 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결국 인사 업무를 하지 못했다. 같은 부서에 있는 남자 선배는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선배가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상사는 남자 선배의 일의 범위를 확대해주었고, 심지어 부서 내 팀을 만들어 팀장이라는 직책을 부여하여, 관리자 역할에 대해서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는 교육업무를 수행한 적이 없었고, 팀원은 나 하나였다.
차별의 이유는 무엇일까?
2017년 경력사원 입문교육을 진행하였을 때의 경험이다. 12명의 신규 입사자가 있었고, 그중 2명만이 남성이었다. 6명씩 팀을 구성하여 팀빌딩 프로그램을 하였는데, 자연스럽게 2명의 남성이 각 팀의 리더가 되었다. 기업 내에서는 나이 많은 남성이 리더가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며, 여성들 역시 그 당연함을 불편함 없이 수용한다. 여성 역시 오히려 여성 관리자보다 남성 관리자가 더 편하다는 말을 스스름없이 한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준비할 때, 여성민우회의 ‘성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 워크북’ 설문조사를 시도하려 했는데, 유리방 실장님께서 나를 불렀다.
“구성원은 여성이 많지만, 관리자는 남성이다.... 이거 웃기지 않아?
예전에야 남자가 많았으니 남자가 관리자 되는 게 당연한 거지. 이걸로 차별이 있네 없네라고 하는 것도 웃기고.”
그 자리에서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리방 안에는 50대 남성 실장님과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공격적으로 대꾸했어야 했나? 집에 와서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50년을 살았을 것이며, 나와 함께한 5분은 그의 인생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었을테니.
기업 내 성차별은 결국 조직문화의 문제이며,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관성적인 사고를 벗어나기 힘들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성에 비해 현저하게 적었던 1970-1980년대에서 남성 관리자는 당연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여성의 대학 진학률, 사회진출은 남성과 차이가 없음에도 '관리자는 남성,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 수행'이라는 그 당연함은 관성으로 존재한다.
나는 일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었다. 그런 기회를 얻으려면, 남의 불편함을 무시하고,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노력해야 했다. 그럴수록 미묘하게 불편한 상황은 계속되었고, 문제를 말한 사람이 문제가 되는 조직문화가 싫었다. 노무사가 되어 이런 불편함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더 이상 미묘한 불편함을 그냥 넘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걸음마도 하지 못했는데, 뛰려고 하니 마음만 급하고 생각만 많다. 천천히 걸어도 내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