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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범 Jun 10. 2021

묘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서 편지를 썼다 지웠다 여태 보내지도 못하고 있어. 아니 사실 편지를 쓰진 않았어. 요즘 세상에 편지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편지는 지어낸 말이고. 카톡을 썼다 지웠다 말을 걸까 말까 하다가 그냥 말았어.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어떤 말로 시작해야 될지 몰라서. 대뜸 본론부터 얘기할 순 없어서. 글이란 게 그렇잖아. 서론이 있어야 본론도 잘 들리지. 말이란 게 그렇잖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누구한테 말해야 될지 몰라서 말하지 않았어. 그렇게 닥치고 사니까 낙태한 말들이 묘지에 가득 들어찼어.

묻고 싶은 말이 있는 자식들은 낙태된 부모를 묻으려 밤마다 빈 장을 찾아 묘지를 헤매다 몇은 도굴꾼이 되고 몇은 불효자가 되고 몇은 그냥 남의 무덤 위에 드러누워 버려.

묻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서 무덤을 팠다 묻었다 그냥 내가 들어가 누웠어. 그것까진 좋았는데,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묻어주지 않았어. 눈앞에 밤하늘이 떠 있어. 하나둘 저 별을 세다 보면 잠들겠지. 그런데 서울 밤하늘은 별이 너무 없어 나는 잠들지도 못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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