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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범 Apr 26. 2021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술 한 잔만 마셔도 온몸이 빨개졌다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창백해진다. 술을 못 먹는 내게 붉은 얼굴은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드는 그런 낙인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술이 늘었다.

누워서 TV 보다 문득 술이   같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술을 마신 적도 없는데.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란만에 술을 마셨고, 정말 술이 늘었다. 숙취 해소제를 먹거나 물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다.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술을 천천히 먹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술이 늘었다.


언제부턴가 미련이 없어졌다. 언제든 헤어져도 좋다고, 빠를 수록 좋다고. 그러면서도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연락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듣고 싶지 않은 것들을 성심껏 들었으며 궁금하지 않을 이야기를 성의껏 늘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질 수 있었다. 그냥 문득 그럴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마음은 갑자기 네가 좋았다가, 어느 날엔가 식었다. 아니, 사실 갑자기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마음은 빠르게 달아오른 후 조금씩 식어갔고 이별은 시나브로 치뤄졌다.

한 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금세 빨개졌다가 서서히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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