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즈음이었나 처음 음계를 배울 때, 오선지를 손가락으로 한줄 한줄 짚어가며 음계를 세었다. 줄 하나, 칸 하나. 검지 마디가 두꺼워 짚은 곳이 줄인지 칸인지 헷갈릴 적에는 처음으로 돌아갔다. 도는 왜 첫 번째 줄의 두 칸 밑에서 시작하는 건지 의아했지만 굳이 알려하진 않았다. 더듬대며 한음 한음 받아 적고 리코더로 불었다.
솔솔 라라 솔솔 미
솔 파 미 레 도
구멍을 제대로 막지 못해 흰 바람 소리가 날 적에는 음 셀 때만 두껍던 마디가 순간 연약해졌다. 한음 한음 찾아 불며 한줄 한줄 끝내고 악보의 끝에서, 도돌이표 앞에서 좌절했다.
간신히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손마디에는 작은 동그라미 직인이 찍혀 저려온다.
사실 도돌이표가 두려웠다고. 이제 와 깨달았다. 손톱을 세워가며 음표 한 개 한 개 세어가며 어떻게든 나아갔지만, 다시 돌아가기는 두려웠다. 악보는 내게 별천지라, 오선지를 수 놓은 별들은 화려하게만 보였다. 그 예쁜 꼴을 보고, 너무 섣부르게 달려든 탓일 테지. 악보도 못 보는 눈은 비루하고 저린 손은 남루했다. 그러니 도돌이표가 무서울 수밖에.
손가락으로 음계를 세고 운지 하는 것은 도돌이표 뒤에선 더 쉽겠지만, 손가락의 피로는 중첩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그 피로는 20년째 풀리지 않았나 보다.
생각해보면, 원래 나는 오선지를 잘 보지 못했다. 그래, 그러니까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곧게 뻗은 다섯 개의 줄은 마치 달려야 할 트랙 같아 보였고, 결승선 없이 도돌이표로 막혀있는 미로 같아 보였다. 그 답답함에 코스를 이탈한 모양이다. 애초에 오선지는 나와 맞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게 오선지의 잘못은 아니잖아. 굳이 따지자면 섣부른 내 탓이었다. 까막눈인 내 탓이고, 손마디가 두꺼운 탓이었다. 한 사람만을 위해서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렇게 또 깨졌다. 이것 또한 내 탓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