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경리단에 갈 일이 생긴다. 분기당 1~2회 정도. 분기당 1~2회라면 제법 자주 가는 정도이지만, 갈 때마다 괜히 애틋해진다. 그래서 부러 동네를 좀 돌아보곤 한다. 내가 살던 때와 얼마나 많이 바뀌었나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2015년에 처음 관리직으로 근무했던 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2018년도에 날 그렇게 괴롭혔던, 그래서 아홉수의 내 저주를 잔뜩 받아 망해버린 가게 자리에는 무엇이 들어왔나, 그리고 30년을 살았던 집에는 이제 누가 사나. 뭐 이런 것들.
30년을 살던 반지하 집에서는 매년 초일에 연말을 돌아보고 새해를 다짐하는 글을 싸이월드에 적었다. 그리고 싸이월드 서비스가 끝나면서 나의 연초 행사도 자연히 끝났다. 새해 다짐이란 게 보통은 그간 바라왔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기 마련이라 내 것도 그런 것들이었지만, 12월 31일에서 1월 1일이 되어 나이가 바뀌고 연도도 바뀌었다고 새해의 내가 새로운 나로 바뀌진 못했다. 그러므로 어제의 내가 못 한 것을 새해의 내가 해낼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계속해서 새해를 다짐하는가.
새해에 금연을 다짐한다는 (나만)친한 형이 있다. 그 형은 연말에 폭연식을 한 이후에 새해부터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했지만, 며칠 뒤에 다시 담배를 폈고, 다시 금연을 다짐했다. 그런 형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 다짐을 해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래놓고 실패하면 자괴감이 심할 것 같아 아무 다짐도 하지 않았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 가수 리사가 나왔다. 대표곡 <날 사랑하기는 했었나요>를 불렀고, 오랜만에 들은 그 노래가 너무 좋아 요즘 반복적으로 듣고 있다. 언젠가 들은 말 중에,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노래를 찾아 듣는 빈도가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2021년의 나는 새로운 노래를 단 한 곡도 찾아 듣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어 익숙한 노래, 혹은 우연히 마주친 동창 같은 노래들을 주구장창 들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어느 유명인이 했던 말이 있다(방금 내가 또 말했으니 이제 유명인 2인이 한 말이 되겠다). 그렇지만 과거에만 사는 이에겐 오늘도 없지 않은가. 나는 매일 어제를 사는 기분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봤던 것들만 보고 있다. 그나마 연말에는 <듄>이나 마블 신작 영화들을 봤고, 디즈니 플러스도 탐독했지만, 다 보고 나면 다시 봤던 것들을 봤다. 그것들이 좋아서 또 보는 건 아닌 것 같다. 주로 자기 전에, 잠들기 전까지 적적한 방을 채울 영상을 찾다 보면 익숙한 것들에 손이 가는 모양이다. 그리고 노래처럼, 영화처럼 나는 글도 어제 쓴 것을 다시 쓰거나 어제나 썼을 법한 글을 반복해서 쓰는 기분이다. 익숙한 활자에 손이 가는 모양이다.
과거의 인연이었지만, 내가 과거에 사는 탓에 내 오늘을 사는 인물들도 있다. 각각의 이유로 이제는 연이 끊겼지만, 아직 내겐 익숙한 그들. 얼마 전에는 그중 한 인물에게 연락했다. 반가운 인사가 몇 번 오간 뒤, 밥 한번 먹자는 형식적인 다짐으로 마무리됐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와의 식사를 희망한다. 그래서 몇 번 약속을 잡을까 하다가 만 적이 있다. 세어보니 10년 넘게 만난 적 없는 인연이어서, 그와의 식사 자리를 상상해보니 너무 어색해서 미칠 것 같았기 때문에. 과거에 사는 내가 현재의 그를 마주했을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얼마 전, 사무실에서 팀원들과 잡담을 나누다가 의사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팀장님은 지인분 중 마흔에 의사가 되신 분이 있다며, “자기들도 늦지 않았어” 독려하셨다. 그래서 옆자리 동료에게 물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동료가 “학창 시절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 하길래 내가 답했다. “지금 가진 기억을 모두 갖고 돌아간다 해도 변하는 건 없을걸요?
지금 가진 기억을 모두 갖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과거에 머문 인연을 현재로 끌고 올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인연이 닿아있던 때로부터 수 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났지만, new year에 new me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과거에 잡지 못한 인연을 과거를 사는 지금의 내가 잡을 수 있을 리 없다. 이 생각이 재갈처럼 내게 물려, 나는 결코 오늘을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을 쓰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것인가? 아마 그렇지도 못할 것이다. 그때의 인연들을 끌어안고 잠들어, 깨어나 다시 어제를 산다 해도, 나는 그 체온으로도 족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오지 않는 오늘에, 반복되는 어제에 감사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올해 아무런 다짐을 하지 않았는가?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말 못 할, 말하지 않을 몇 개의 다짐이 내게도 있다. 그 다짐을 입 밖에 내지 않음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제의 내가 그랬듯, 오늘의 나도 그렇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그러나 언젠가, 혹시라도 무언가. 의미 없던 다짐에 어떤 의미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쩌면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내가 될 것이다. 잠 깨어 오늘이 되면, 그러고 나면, 기억력 나쁜 나는 그들을 모두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잠 들고나면, 이제 내일도 깰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는, 어쩌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