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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범 Mar 16. 2022

2022

가끔 경리단에  일이 생긴다. 분기당 1~2 정도. 분기당 1~2회라면 제법 자주 가는 정도이지만,  때마다 괜히 애틋해진다. 그래서 부러 동네를  돌아보곤 한다. 내가 살던 때와 얼마나 많이 바뀌었나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2015년에 처음 관리직으로 근무했던 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2018년도에  그렇게 괴롭혔던, 그래서 아홉수의  저주를 잔뜩 받아 망해버린 가게 자리에는 무엇이 들어왔나, 그리고 30년을 살았던 집에는 이제 누가 사나.  이런 것들.

  30년을 살던 반지하 집에서는 매년 초일에 연말을 돌아보고 새해를 다짐하는 글을 싸이월드에 적었다. 그리고 싸이월드 서비스가 끝나면서 나의 연초 행사도 자연히 끝났다. 새해 다짐이란  보통은 그간 바라왔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기 마련이라  것도 그런 것들이었지만, 12 31일에서 1 1일이 되어 나이가 바뀌고 연도도 바뀌었다고 새해의 내가 새로운 나로 바뀌진 못했다. 그러므로 어제의 내가   것을 새해의 내가 해낼  만무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해를 다짐하는가.

  새해에 금연을 다짐한다는 (나만)친한 형이 있다.  형은 연말에 폭연식을  이후에 새해부터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했지만, 며칠 뒤에 다시 담배를 폈고, 다시 금연을 다짐했다. 그런 형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 다짐을 해볼까잠시 생각했지만, 이래놓고 실패하면 자괴감이 심할  같아 아무 다짐도 하지 않았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 가수 리사가 나왔다. 대표곡 < 사랑하기는 했었나요> 불렀고, 오랜만에 들은  노래가 너무 좋아 요즘 반복적으로 듣고 있다. 언젠가 들은  중에,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노래를 찾아 듣는 빈도가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2021년의 나는 새로운 노래를   곡도 찾아 듣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어 익숙한 노래, 혹은 우연히 마주친 동창 같은 노래들을 주구장창 들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어느 유명인이 했던 말이 있다(방금 내가  말했으니 이제 유명인 2인이  말이 되겠다). 그렇지만 과거에만 사는 이에겐 오늘도 없지 않은가. 나는 매일 어제를 사는 기분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봤던 것들만 보고 있다. 그나마 연말에는 <>이나 마블 신작 영화들을 봤고, 디즈니 플러스도 탐독했지만,  보고 나면 다시 봤던 것들을 봤다. 그것들이 좋아서  보는  아닌  같다. 주로 자기 전에, 잠들기 전까지 적적한 방을 채울 영상을 찾다 보면 익숙한 것들에 손이 가는 모양이다. 그리고 노래처럼, 영화처럼 나는 글도 어제  것을 다시 쓰거나 어제나 썼을 법한 글을 반복해서 쓰는 기분이다. 익숙한 활자에 손이 가는 모양이다.

  과거의 인연이었지만, 내가 과거에 사는 탓에  오늘을 사는 인물들도 있다. 각각의 이유로 이제는 연이 끊겼지만, 아직 내겐 익숙한 그들. 얼마 전에는 그중  인물에게 연락했다. 반가운 인사가   오간 ,  한번 먹자는 형식적인 다짐으로 마무리됐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와의 식사를 희망한다. 그래서   약속을 잡을까 하다가  적이 있다. 세어보니 10 넘게 만난  없는 인연이어서, 그와의 식사 자리를 상상해보니 너무 어색해서 미칠  같았기 때문에. 과거에 사는 내가 현재의 그를 마주했을 , 너무  충격을 받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얼마 , 사무실에서 팀원들과 잡담을 나누다가 의사에 대해 이야기한  있다. 팀장님은 지인분  마흔에 의사가 되신 분이 있다며, “자기들도 늦지 않았어독려하셨다. 그래서 옆자리 동료에게 물었다. ‘과거로 돌아갈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동료가 “학창 시절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하길래 내가 답했다. “지금 가진 기억을 모두 갖고 돌아간다 해도 변하는  없을걸요?

  지금 가진 기억을 모두 갖고 과거로 돌아갈  있다면, 나는 과거에 머문 인연을 현재로 끌고   있을까? 그럴  없다는   알고 있다. 인연이 닿아있던 때로부터   혹은 수십 년이 지났지만, new year new me 되는  아니기 때문에 과거에 잡지 못한 인연을 과거를 사는 지금의 내가 잡을  있을  없다.  생각이 재갈처럼 내게 물려, 나는 결코 오늘을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을 쓰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거로 돌아갈  있는 기회를 마다할 것인가? 아마 그렇지도 못할 것이다. 그때의 인연들을 끌어안고 잠들어, 깨어나 다시 어제를 산다 해도, 나는  체온으로도 족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오지 않는 오늘에, 반복되는 어제에 감사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올해 아무런 다짐을 하지 않았는가?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말 못 할, 말하지 않을 몇 개의 다짐이 내게도 있다. 그 다짐을 입 밖에 내지 않음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제의 내가 그랬듯, 오늘의 나도 그렇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그러나 언젠가, 혹시라도 무언가. 의미 없던 다짐에 어떤 의미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쩌면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내가 될 것이다. 잠 깨어 오늘이 되면, 그러고 나면, 기억력 나쁜 나는 그들을 모두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잠 들고나면, 이제 내일도 깰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는, 어쩌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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