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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탤미 Sep 15. 2020

그래서, 원인이 뭐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듣는 질문이 있다. 하나는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래서 원인이 뭐래?"였다.

어떨 땐 이 두 질문을 연달아 들은 적도 있다. 첫 번째는 어렵지 않다. '그냥 위가 좀 안 좋아서'라고 대충 둘러대면 되니까.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의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나도 이유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내가 군것질을 좋아했어서...' 혹은 '원래 좀 위가 안 좋았는데 갑자기 죽어버렸네...' 하고 넘기기 일수.


그저 나는 내 위의 기능이 소실된 것에 대한 추측만 할 뿐 뚜렷한 이유나 원인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내과를 방문했던 것 같다. 평일에는 일하다 말고 회사 근처의 병원을 갔고, 주말에는 집 근처의 병원으로 의사 선생님들을 만났다. 의사는 내 소화불량이 으레 있는 일이라 판단하여 소화제나 위장관 약 등을 처방해 주었다. 하지만 그 약들은 복용하는 동안에만 괜찮고 약을 다 먹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급기야 나중에는 약을 먹어도 나아지기는커녕 메슥거리거나 오히려 토할 것 같은 증상마저 나타나기도 했다.


나는 좀 더 근원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분당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검진 전문병원 찾아갔다. 내과 전문 의사는 내 증상을 듣더니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위 대장 내시경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고 내시경 검진을 예약했다. 전에도 위 내시경은 몇 번 해본 터라 오묘한 수면내시경의 므흣한 기분을 나름 즐겨서 어렵지 않았는데, 대장 내시경은 처음이라 하기 전부터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그 중 나를 두렵게 한 첫번째 이유는 내시경 약이었는데, 하기 전부터 악명이 자자하여 그 맛이 느끼한 포카리스웨트 같다더니 먹다가 아래가 아니라 위로 쏟아낼 뻔 했다느니 하는 경험담이 나돌았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1리터 넘는 물약을 먹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당시 나는 물조차 소화가 잘 안 되는 일명 '위가 파업한 상태'여서 "물약 먹고 체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더 컸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반대로 다행히 그 물은 소화가 필요 없을 만큼 목구멍으로 들어가자마자 효력을 발휘했다. 몇 번 먹고 나자 바로 화장실을 뿌개기 시작하여 내 몸속 모든 걸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걸 게워내고 당일 검사를 진행했고, 간호사는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을 만큼 게워 냈냐는 확인 질문을 받은 후에야 위와 대장 내시경을 진행했다. 검사 후 나는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내 몸속을 속속들이 봤을 테니 무언가 나와도 나올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가 실망스럽다고 하면 이것 또한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지만 의사의 소견은 이상토록 실망스러웠다. 정말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빠알간 위 장을 보여주면서도 별다른 특이점을 찾을 수 없다는 건 도통 납득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원인을 알고 싶어서 그 이유만 알면 고칠 수 있을 거란 한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토할뻔한 음료를 들이부으면서 모든 걸 쏟아냈는데, 별 문제없다는 결과가 이토록 기운 빠지는 소리일 줄이야.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 머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학 문제에 접근한 것 같은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몸속에 큰 혹이 있거나 명확한 문제점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이 들으면 천지개벽할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단순한 원인과 결과가 필요했기에 차라리 문제가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혹만 때어내면 혹은 손상된 부분을 치료하면 나을 것이라는 정확한 원인과 그에 따른 명확한 처방. 하지만 의사는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다른 사람처럼 검사 전 확고하고 명료한 어투와는 다르게 검사 후 본인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선생님에게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왠지 모를 배신감마저 느꼈다. 하지만 어찌 됐건 의사 나름대로는 기능의 문제인 것 같다는 정의 내렸고, 그렇게 나는 또 소화제를 받았다.


그 뒤로 나는 한동안 내과를 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웬만하면 내과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이는 내가 그들을 신뢰하지 않아서도 그들이 실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다만, 그곳에서 내가 나으리란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아마 너무 뻔한 대답과 처방전이 조금 지치고 지겨워진 탓도 있으리라. 그들은 결국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도 "원인이 뭐래?"라는 질문에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다만, 현재는 그 이유가 그다지 '중허지' 않게 됐다. 그저 매일 걷고, 될 수 있으면 많이 씹어 먹고, 공복시간을 유지한다. 이유를 찾는 것보다 내가 나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 그저 매일매일을 버텨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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