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뺏긴 것들
성경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마치 성경의 한 구절처럼 나의 건강은 예고편이 없었다. 도적처럼 뜬금없이 와버렸다.
전조증상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눈치채지 못했을 뿐.
내 기억으로는 제작년 11월 즈음이었던것 같다. 기분나쁜 메슥꺼움과 어지러움증이 동반됐다. 어라? 왜이러지? 거실 바닥에 주저않아 임신한 여성이 입덧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 거렸다. 처음에는 그 원인이 소화불량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곧 있으면 나아지겠지 하던 나의 상태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속이 괜찮은건가 싶으면 장이 탈이나고 장이 괜찮은가 싶으면 꽉 막힌 하수구처럼 엄청난 더부룩함이 계속 됐다. 그렇게 장과 위를 반복하면서 나의 몸은 조금씩 제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런 증상은 19년 3월 경 다니던 회사의 정직원 준비를 하면서 더욱 극심해 졌다.
많은 이들이 말하길 뇌와 위는 직렬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심적 스트레스가 예민한 위에 영향을 미쳤을까? 업무를 끝마치고 남는 시간에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몸은 쉬지 못했고 멋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 욕심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전날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날 점심까지도 묵직한 위때문에 어떤 음식도 입에 들어가지 않은 날이 계속 됐다. 이건 단순히 식사 후 상복부의 불편감이 아닌 마치 위가 아무런 운동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준비한 포트폴리오는 면접으로 이어졌고, 다행히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감사한 결과와는 반대로 나의 몸은 전혀 감사하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도 먹은 것 없이 소화가 되지 않아 앉아 있을 수 없는 날이 계속됐다. 중간중간 뜬금없이 일어나 걷고, 트림을 하고 다시 자리에 앉기를 반복했다. 물 한모금 마시면 그마저도 소화가 쉽지 않아 중간에 걷고 마른 가슴을 쓸어내리기를 반복하다보니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건지 소화 시키는 업무를 하는 건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나아지지 않은 위와 장을 파악하기 위해 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기도 했다.
괴로워 하는 나를 보며 친구와 회사 동료들은 걱정스런 얼굴로 묻고 했다. '원인이 대체 뭐래?'
온갖 병원을 다닌 후로 알게 된 결론은 간단했다.
"기능성 위장장애" 그게 내가 가진 위장 질환의 이름이었다.
말 그대로다. 위와 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 그러니까 입으로 통해 씹고 넘기고 소화시키고 배설의 이 모든 과정이 원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자력의 힘이 소실된 상태을 말한다.
도적처럼 온 건강의 적신호는 내 삶의 대부분의 것을 빼앗아 갔다.
첫번째는 수분을 도난당했다. 하루에 1.5L가량 먹던 나의 물 섭취 양은 현저히 줄어들어 한컵 정도 먹으면 더이상 소화할 수 없었고, 두번째로는 평범한 일상이 사라졌다. 친구들과 만나 원하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 떠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으며, 166이란 키에 50kg 후반대를 달리던 정상에 가까운 몸무게는 10kg 이상 빠졌다. 나의 바지, 원피스 모든 옷들은 너무 커져서 줄여입거나 새로 사야했다.
들어가는 돈은 어떠랴. 이곳저곳 병원 다니고, 위/대장 내시경 받고, 양방으로는 안되니 한약먹고 그 약값에 나의 대부분의 지출이 소실됐다.
하지만 이 모든것을 포함하고서도 나를 가장 우울하게 했던 건 잠을 잘 수 없는 날이었다.
일주일에 3일정도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소화불량에 시달렸기 때문인데, 하루는 저녁 8시 즈음 목이 말라 물 한방울 마셨는데 그것이 얹혀서 새벽 2시까지 잠을 못자고 집 밖에 나가 걸어다녀야 했다. 그 후 저녁 6시 이후로는 아무리 목이 말라도 배가 고파도 아무것도 먹지 않게 됐다.
이렇게 갈수록 살은 빠지고 물은 마실 수 없고, 음식은 죽만 먹고, 잠도 잘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숨쉬는 것. 버티는 것 그뿐이었다.
그렇게 2019년, 나에게 형벌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해 유일하게 샘솟는건 눈물 뿐이었고, 잠을 잘 수 없는 날에는 죽기를 바라는 기도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그렇게 나의 건강은 도적처럼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