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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탤미 Sep 09. 2020

트림하는 처녀

난  트림을 참 자주 합니다. 난 아직 결혼도 안 한 처녀인데 콜라 원샷하고 '가슴속에 타오르~는 그으에웩'하는 추성훈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트림을 곧 잘합니다.

일명 용트림이라고 하죠. 제가 참고로 88년생 용띠인데 그래서 그런가. 트림을 용처럼 하나 봅니다. 이 용트림은 유독 집에 있을 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길길이 날뛸만한 트림을 하곤 하는데요. 아무래도 집이 편하고 만만 하니 그러겠지요. 어찌 되었든, 나의 튼튼한 다리도 날씬하다고 콩깍지가 제대로 씐 엄마도 들으시기에 역했는지 더럽다고 할 정도랍니다.



그런데 시집도 안 간 처녀가 50대 아저씨처럼 더러운 트림을 하게 된 이유를 들어보시면 저를 마냥 나무랄 수는 없을 거예요.


사실 난치병 때문이에요. 100% 치유가 안 되는 질환 때문인데, 그 이름은 '기능성 위장장애'라고... 들어는 보셨는지. 저도 2년 전쯤 처음 들었습니다. 위 장이 제대로 일해 안해 일반 음식은 도저히 소화가 안되는 그런 질환이요. 제가 이렇게 몇 년 묵힌 된장처럼 '지독한' 위장장애를 앓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 난치병 때문에 하루에도 일하다 말고 몇 번이나 앉았다 일어났다 벌칙을 반복하지는지 몰라요. 남들 떡볶이 피자 치킨 과자 먹을 때 나는 사탕만 쪽쪽 빨고, 식후에는 언제나 소화에 좋다는 페퍼민트 티를 마시기도 한답니다. 저녁 6시 이후면 밥은커녕 물도 마시지 않고요.

그리하여 저는 거하게 먹으면 먹은 만큼 정직한 트림을 토해내야 가까스로 소화를 시킬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 부끄러움도 없이 트림을 해댄다고 저를 비난하더라도 나는 할 말이 있단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때는 2018년 11월 저녁이었어요. 밥을 먹고 이상하게 메슥거리고 어질어질하더라고요? 토할 것도 같고. 임신한 여성이 입덧한다면 이런 기분 일까 싶기도 하고 그것이 앞으로 나의 위 장이 일하기 싫다는 선전포고 인지도 모른 채 말이죠.


처음에는 장이 말썽이었어요. 보통 저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으레 직장인들이 그렇듯 책상에 앉아 컴퓨터만 내리 보는 직업이걸랑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스가 너무 심하게 차고 밥만 먹고 나면 화장실로 달려가는 일이 빈번해졌어요. 또 시간이 지나 장이 괜찮아지면 소화가 지독히도 안되고, 얼마나 안되냐면 누울 수 없어서 잠을 못잘 정도였다니까요.


그래도 지금은 우렁차긴 하지만 그런 트림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마치 어머니가 갓난아기들 분유 먹이고 꼭 트림을 시켜야 눕힐 수 있잖아요. 제가 딱 그 짝이었거든요.

트림을 해야 숨통이 틔었으니까요. 제때 트림을 못할 경우가 있어요. 나올랑 말랑 하는데 갑자기 문 소리가 난다거나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건다거나 하면 내 위는 너무나 섬세해서 트림이 쏙 들어가 버려요. 그럼 전 발을 동동 구르며 계속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내 위를 살살 달래곤 합니다. 다시 트림이 나오도록 온갖 아양을 떨어야 하는 것이죠.


물론 저도 여잔데 이게 참 부끄럽기도 해요. 저라고 추잡하고 부끄럽다는 감정을 모르겠어요? 그래서 친한 언니한테 내 트림이 너무 더러운 것 같다고, 부끄러워서 어디 남자라도 만날라치면 트밍아웃이라도 해야 만날 수 있을것 같다고 하면 '소화 안되서 죽을것 같은거 보단 더러워도 트림하는게 낫지 않니?'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럼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트림이 참 소중해요. 더러우면 어때요? 저에게 트림을 한다는건 살고자 하는 억척스런 갈망을 토해내는 것과 같거든요.


얼마전에 운동 가르켜 주는 동생이 트림을 하게 될때 위가 움직인다고 그러더라구요? 정말 눈에 보일정도로 몸이 울렁 거리면서 움직이더라고요. 그러니 트림을 하는 것 자체가 내 위가 살아내려는 몸부림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내과 의사가 아니니 인체의 신비는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저는 더욱 살아내야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숨이 턱턱 막힐 듯이 위가 무거울때는 죽고싶기도 했었는데, 그 하루 고비를 넘기고 나면 다시 배는 고프고 입구멍에 무언가를 넣고 있더라고요. 그것이 곧 고통스럽게 할 줄을 알면서도 말이죠. 마치 사랑때문에 괴로워 헤어지는걸 선택했지만 다시 사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불쌍한 영혼같았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소화시키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모두 살기 위한 몸부림인 것을. 그러니 살아내려고요. 오늘 하루 더 힘내서. 토해내려 고요. 삶에 대한 갈망을! 의지를! 분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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