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화양리의 지하 단칸방에는 메케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작은 계단을 내려가면 우리 집이랑 옆집이 옹기종이 붙어있고, 우리 집은 큰방 하나, 작은 방 하나에 작은 화장실이 딸리어 있었다. 엄마는 건설 현장서 일하는 아빠 덕에 우리 두 남매를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홀로 돌봤다.
한 번은 엄마가 두터운 큰 가방을 꺼내 옷이며 화장품, 온갖 것들을 가방에 담고 오밤중에 나간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가 말을 안 들어서 집을 나가는 것이라 말했다. 6살이었던 나는 엄마가 무슨 영문으로 우리를 떠나려 하는지는 몰랐지만, 너무 무서워서 엄마의 바지를 잡고 울고 불고 늘어졌다. 엄마 없이 단 1분도 살 자신이 없던 꼬맹이는 절규에 가까운 눈물 콧물을 흘리며 잘할 테니 제발 우리를 두고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런 나를 보며 3살 많은 오빠는 장난치는 거라며 엄마는 안 나간다고 핀잔을 주었다. 그날 엄마는 오빠의 말처럼 나가지 않았다. 다만 그 가방은 아직도 왜 쌓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그날 우리와 함께 잤고 그 이후로 집을 나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뿐이다.
메케한 곰팡이 냄새가 추억처럼 번지는 인천 화양리 방 2개짜리 집에는 아이 두 명이 살았다. 남자아이는 개구쟁이에 앞 이빨 두 개가 벌어져 있었으며, 여자아이는 울보에 이상하리만치 앙칼진 데가 있었다.
한 번은 2층 주인집 딸내미 얼굴을 쓰레받기로 긁었다. 드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왜 긁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그 감정은 내가 보통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 싶은 6살 어린아이의 자존심이었다. 2층 집 딸내미는 솔방울처럼 큰 눈으로 얼굴을 잡으며 울기 시작했고, 극악스러운 울음소리를 들은 나는 놀라 줄행랑쳤다.
그날 처음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는 어디서 들었는지 난처한 얼굴로 친구에게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2층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가서 사과하고 친구에게는 사탕을 주라고 했다.
사과를 하기 위해 지하 작은 계단을 올라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굴을 들어 2층 집 계단을 바라보았다. 친구와 주인아주머니가 내려오고 있었다.
곧 사형선고를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친구 얼굴에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혼날 각오를 하고 우물쭈물 주인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생각보다 온화한 미소로 "내 딸 얼굴을 이렇게 긁어놓으면 어떡하니?"라고 말했다.
앙칼진 울보는 친구와 그의 어머니를 보자 몸들 바를 몰라 울었다. 그리고 사탕을 건네며 “미안해”라고 했다. 친구는 괜찮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인천 화양리 지하 단칸방에는 우리 가족이 살았다. 나에게 어린 시절을 추억할 냄새와 쓸만한 두려움을 알게 해 준 곳. 오늘따라 그때 그 시절이 메케한 향기처럼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