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부터 너는 우리 집에 왔어.
첫날, 바닥에 자기 몸을 낮춘 채 온몸으로 낯섦과 두려움을 내비친 너. 다행히 밥과 물을 꼬박꼬박 잘 먹어 주어 감사하긴 했지만 우리 집 옷방 속 서랍 사이에 숨은 너를 3일 동안 걱정했다.
그래도 정말 딱 3일 저녁부터는 거실로 나와 작은 얼굴을 내민 채 경계심과 호기심 사이에서 흐느적흐느적 걸어오는 너를 보며 나는 많이 기뻤다.
그 뒤로 너는 옷방에서 거실과 부엌을, 이제는 내가 일하는 책상으로 영역을 넓히며 너의 흔적을 묻혀 갔지.
내가 일할 때 꼭 모니터 앞을 가로막고 만져달라, 놀아달라며, 성가시게 보챈다거나, 부엌에서 요리할 때는 꼭 그 근처에 자리를 잡은 채 몸을 옆으로 뉘이고 냉장고에 얼굴을 기댄 채 털썩 주저앉아 나만을 바라보는 너의 감시망에 황홀해하기도 했어. 또 밥을 줄 때는 어떻고 말이야. 밥시간을 얼마나 잘 맞추는지 나보다 먼저 네가 날 찾아와 앵앵하고 어린아이처럼 울어대면 “아 밥 먹을 시간이구나.” 하고 서둘러 부엌에 가곤 했어.
그럼 넌 내 발밑에서 과자를 조르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소리를 내며 온 몸으로 나를 휘감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다. 내가 서둘러 밥을 주면 복실한 엉덩이를 씰룩이며 얼굴을 코 박고 정신없이 오독오독 씹어먹는 소리,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웠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가장 감동케 한 건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작은 소리로 나의 필요를 갈구하는 너를 보는 일이었어.
내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면 영락없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만 기다리고 있고, 낮에 잠을 청할 때 내 무릎 위에서 자려고 일부러 다가온다거나,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하면 청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그새 깨서 나만 졸졸 따라다니며 우는 너의 모습에서 사랑스럽고, 기특한 감정까지 들곤 해. 오직 나만이 너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아 뿌듯한 감정까지 들더라고. 누군가 나를 온전히 바라보는 존재가 생긴 거야.
처음 느껴보는 행복한 구속감에 이상하리 만치 오묘한 만족감이 드는데, 마치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하게 될 엄마 연습을 미리 하는 것처럼 나는 너를 아이로, 너는 나를 엄마로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데 정말 모자의 관계처럼 너를 아이로 생각했던 걸까. 나는 가끔씩 섭섭하고 화가 나기도 해.
너의 눈곱을 떼주려고 휴지를 들이밀면 너는 이내 싫어서 발톱을 드러내거나 살짝 물려고도 하고, 자기 똥 자국을 묻히고 다녀서 엉덩이를 물티슈로 닦아주려 하면 발버둥 치면서 나를 할퀴려 하지.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상처받아. 내 맘을 이렇게도 몰라주나. 너를 위해서, 너와 내가 같이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인데, 왜 이렇게 나를 상처 주는지 섭섭하곤 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조차도 이기적인 나의 생각과 행동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된 거야. 나는 나의 시선과 잣대로 으레 내 감정을 드러내고 내 규칙을 적용하려 했던 거지. 그에 반해 너는 내 의도를 모르고, 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톱과 이빨을 드러냈을 뿐, 보호자로서 그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영희 군! 너라는 작은 생명체를 나의 집에 들인 순간부터 어쩌면 난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스스로에게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먹이고 입히고 언제나 눈동자처럼 한 존재를 지키는 헌신적인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거지. 생각해 보니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본 적이 없더라고. 그런 내가 어쩌면 처음으로 가장 성가시고 귀찮고 자기희생적인 일을 감당하려 해. 그렇지만 서툴기에 여전히 나는 배우고 싶고, 나의 시선을 낮추고 겸손하게 너를, 또 내 뱃속의 아이를 존중하는 법을 공부하고 싶어. 고마워! 너를 통해 나에게 엄마가 되는 방법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앞으로도 나는 최선을 다해, 나의 몸이 허락하는 한 너와 아이를 책임져 보고 싶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해보자. 너를 많이 좋아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