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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Feb 09. 2023

남들의 여행이 부러울 때면

나만 빼고 다들 해외여행 중인가요?

지난 명절 즈음인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인스타그램에는 해외로 떠난 지인들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전 세계 각지를 누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순수하게 명절을 보내는 사람을 찾는 게 귀할 정도로 모두가 해외로 떠나버린 듯 보였다. 아마도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스마트폰을 열어 남들의 여행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괜한 박탈감에 힘이 빠졌을지 모르겠다. SNS 속 여행은 그 어떤 사치품보다 빛나 보이는 법이니까.  아무리 해외여행이 흔해졌다고 해도 누군가에겐  예나 지금이나 특권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무나 해외여행을 할 수 없던 시절에는 미지의 이방을 다녀온 경험만으로도 특권을 쥘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해외여행이 상품이 된 지 오래된 만큼 여행을 하는 방법도 쉽고 편해졌다. 사실상 돈과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전 세계 대부분의 경계선을 쉽게 넘나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이 여전히 특권을 갖는 건, 경계가 사라진 시대에도 인정과 문화가 다른 나라에 대한 환상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아무나 가 닿을 수 없는 머나먼 오지, 여행을 통해 영웅담이나 미담을 만드는 영화 같은 '이야기'는 여행자에게 새로운 특권을 쥐어준다. 이 특권으로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 미지를 탐험하고 싶은 욕망,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수없이 떠나본 사람만이 가늠할 수 있는 부러움을 산다.


여행 기자를 하면서 은 사람들 나의 잦은 해외 출장을 부러워했다. 그들은 내 직업을 특권처럼 여겼지만, 정작 당시의 나는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는 못했다. 어떤 여행은 분명 매체 소속이었기에 가능했고, 남들과는 다른 여정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것이 특별하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다. 다만, 그것이 특권이라면 나는 아무리 고된 여정이더라도, 나의 여행기를 읽은 당신은 한 번쯤 이대로 떠나 보라고. 당신이 머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런 삶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나로서 그것을 대신 증명 수 있다면 말이다. 내가 가진 특권은 여행 그 자체가 아니라 남들과 다른 특별한 여행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짜인 일정을 소화할 때조차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평범한 여행도 이야기를 가지면 특권처럼 보였으니까. 


인스타그램 속 사진 한 장으로 가늠하는 여행의 특권은 일시적일 때가 많다. 누가 먼저 가서 깃발을 꽂느냐의 경쟁이나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럭셔리를 뽐낼 수 있는 지로 특권을 운운하며 내 앞에 놓인 현실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하듯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 고달픈 삶을 이어갈 수도 있고, 그저 버티기 위한 여행 중일 지 누가 알겠는가.

여행 흔해진 시대에서 나만의 특권을 가지고 싶다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사진 한 장에 목숨을 거는 것보다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게 더 랫동안 여행의 기쁨을 누리는 방법일 것이다. 여행을 통해 오직 자신만의 것을 찾고 채워가는 경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 주는 특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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