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초의 떠들썩함이 올해는 유독 빠르게 사라진 듯하다. 한 달 전 '올해는 꼭이루고 싶다' 적어 내려간 목표들은 모두 안녕하신 지.
매일이 새해와 같은 마음이라면 모두가 세상에 못 해낼 게 없을 것 같은데, 2월이 되면 새 마음을 다시 헌 것으로 되돌리는 잔인한 마법이 시작된다. 허리에 단단한 줄을 매고 있는 힘껏 달렸지만, 속도가 높을수록 임계점은 가까워지는 법. 우리의 목표도 그렇다. 작심삼일의 반복도 결국 임계점을 향하게 되어 있고, 그것을 넘어서는 건 결코 쉽지가 않다.
한 번은 필라테스를 배울 때였다. 굽은 어깨를 펴기 위해 한 달을 꾸준히 노력했는데도 매 수업마다 내 근육은 마치 난생처음 한 동작인 양 뻣뻣하게 굴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회원님, 30년 간 굽은 어깨를 만들어왔는, 한 달 만에 펴지겠어요? 그건 불가능해요." 어른이 되어 배움이란 사실 매번이 임계점이다. 이미 오랫동안 고착화된 습관과 몸이 하루아침에 바뀔 일이 없으니까. 새해가 돌아와도 나는 조금 더 헌 것이 될 뿐이니까.
한 달 전, 라일레이 여행 중 반나절 맹그로브 카약 투어를 할 때의 일이다. 여럿이 우르르 따라다니는 체험 투어 같은 걸 원래는 좋아하지 않는데, 전 날 바다에서 카약을 좀 타보니 갑자기 흥미가 붙었다. 그날 우리와 함께 투어에 나선 멤버는 프랑스에서 온 3대 가족, 고등학생 딸과 여행 온 라틴계 부부, 싱가포르에서 온 커플 그리고 우리 부부였다. 가이드를 포함해 우리 부부까지 7개의 카약이 넓은 호수에서 시작해 맹그로브 숲을 돌아오는 약 1시간 30분짜리 코스였다. "각자 속도가 다르니, 누군가는 좀 더 일찍, 누군가는 좀 더 늦게 도착하겠지만 모두가 12시 안에는 다 도착할 거예요. 걱정할 건 없어요. 이건 레이스가 아니니까." 가이드는 출발 전 대수롭지 않게 주의 사항을 전하고 물가에 카약을 내리며 우리를 밀어 넣었다. 출발한 지 조금 지나서일까. 서서히 카약들은 선두 그룹과 후발 그룹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출발이 가장 늦었던 가이드는 어느새 저 멀리 선두 그룹을 이끌고 있었고, 우리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노 젓기에 능수능란해 보이는 싱가포르 커플은 일부러 우리 옆에서 속도를 줄이며 노 젓는 법을 친절히 알려 주다가 금세 선발 그룹에 끼여 유유자적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부렸다. 나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야에서 우리 투어팀의 카약이 사라지면, 뒤에서 열심히 노를 젓는 오빠를 닦달했고 요령 없이 노를 젓느라 팔이 저려 왔다. "이러다 우리 저 사람들 놓치겠어! 빨리 저으라고! 젓고 있어? 왜 나만 힘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짜증과 화는 고조됐다. 좁은 맹그로브 숲에서 바위에 부딪히고 카약이 진흙투성이가 되는 순간에는 정말 울고 싶었다. '대체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해서 돈 주고 고생일까.'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야생 원숭이가 호시탐탐 카약을 노리는 맹그로브 숲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짐덩어리 같은 카약을 이끌고 숲을 빠져나가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전쟁터 같았던 숲을 빠져나오자 자연의 전리품처럼 탁 트인 호수가 나타났다. 입이 떡 벌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나에게 '넌 이걸 보기 위해 그 어두운 숲을 지나온 거잖아.'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제야 진정이 됐고, 이내 부끄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렇게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안달이 났을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부딪히고 더러워지는 것을 왜 부끄러워했나' 분명 전날 바다에서 우리끼리 카약을 타고 유유히 돌아다닐 때는 우리 속도에 맞춰 방향을 정하다 보니, 사력을 다해 노를 저을 필요도 없었고 바다 한가운데서 보는 풍경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오늘은 남들 속도에 맞추려고 열을 올리며 그저 노를 젓는 데만 열중했다. 불과 30분 전에 화가 잔뜩 나 있는 내 모습이 그제야 객관화되면서, 그동안 나를 수없이 좌절하게 만들었던 내 인생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배움을 시도할 때, 진정한 의미의 시도가 아니라 그저 ‘잘하려고 애쓰기’를 수행할 뿐이라고 말한다. 특정 기술을 익히기 위해 어떤 세부 동작이 필요한지 분절하여 이해하지 못한다면 판에 박힌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할 수밖에 없다. 제현주 <일하는 마음> 중에서.
어떤 순간에 임계점을 넘지 못하고 멈출 때가 종종 있다. 매번 이건 포기가 아니라 한계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왔지만, 사실 나는 남들보다 잘하려고 애쓰느라 원래의 목적을 잃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무언가를 난생처음 배우는 초보의 단계에서조차 잘하기에 급급할 뿐, 배움에 대한 과정에서 나는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결국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워도 이도저도 아닌 곳에 정처해 있기만 할 뿐 더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매번 우리의 목표가 실패도 성공도 아닌 애매한 결과로 끝맺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일 지도.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에서든 시작을 하는 것이고, 임계점을 넘어서 보는 것. 이것이 올해의 목표라면 나에겐 또 하나의 리스트가 새로, 아니 다시 생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