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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Jan 26. 2023

여행에서 번아웃이 온다면

번아웃으로부터 나를 구하기

어디서부터였을까. 어떤 사건이 기점이 된 것일까. 사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엉망진창이 된 속내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좀 있어 보이고 싶은 단어를 찾고 싶었다. 번아웃. 언젠가 책에서 봤을 법한 단어와 문장들을 내 속마음에 빗대어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늘 이런 식이다.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 살면서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써야 이 허무맹랑한 욕심을 밀어낼 수 있을는지.

번아웃을 핑계 삼아 나는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 혹독했던 사회생활의 마침표를 긴 여행으로 찍었다. 떠날 땐 종점이라 믿었는데, 돌아와 보니 그건 사회생활의 쉼표였다. 마치 미리 준비해 둔 시즌2의 이야기를 새로 꺼낸 것처럼 내 앞에는 또 다른 사회생활이 재생되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또 늘 이런 식이다. 무언가를 엄청 갈구하다가 그 갈증이 해결되면 길을 잃는다. 한때는 분명 여행을 통해 자유의 목마름이 해갈되었는데, 그 후에 딸려오는 어떤 공허함이 언젠가부터 나를 자책하게 했다. 여행에도 번아웃이 온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여행은 끝나지 않는 레이스 같았고, 매번 반복되는 새로운 여정에도 설렘과 기대는 무뎌져 갔다.

어떤 여행은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기도 한다지만, 그건 여행 자체가 인생을 바꿔놓는 스위치라기보다 여행을 하는 동안 그 사람의 본성이 발현된 결과다.

여행의 내막은 자신과의 끝없는 타협과 타인과의 낯선 교류로 촘촘히 이루어져 있다. 그 속에 드러나는 실수와 본성을 마주하는 것이 곧 여행 본질이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나는 가능하다면 평생 감추고 었던  지난 모습 그림자처럼 계속 따라왔다. 때때로 나는 림자로 따라온 나의 못난 모습들을 하기도 했고, 억지로 떼어내기 위해 더 빨리, 더 멀리 아나보기도 했다. 그럴수록 감추고 싶은 그림자는 더 선명해졌고, 나를 버닝 시킨 건 여행 자체가 아닌 추고 살았던 내 그림자였다는  알아차렸다.


일과 일 사이마다 번아웃에 쓰러지고 여행으로 치유하는 반복적 회로 속에서 나는 어떤 그림자들을 만났던 걸까. 여행을 통한 공백이 자책으로 남았던 건 여행 속에서조차 나는 끝없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I'm willing to lose everything.


상실에 대한 불안에 대해 우리는 기꺼이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최근 넷플릭스 다큐 <스터츠 :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를 통해 배운 이야기는 번아웃과 여행을 거듭하며 자책감을 축적해 온 나를 달랬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불확실성과 끝없는 노력으로 자신과 싸우고 있다. 우리는 문제를 극복하거나 보이지 않게 숨기고 없앨 줄 아는 데 그건 불가능하다. 모든 문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불안해소된다. 영화를 통한 심리 상담으로 나는 지난하게 반복된 나의 번아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재단하며 그 속에서 나의 그림자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것과 싸우며 버닝 되거나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도, 과감히 모든 걸 잃을 용기도 없던 것이다. 그리고 이 악순환은 무서운 속도로 무기력을 향해다.

스터츠의 영상을 보고 난 후, 더 이상 나를  쫓아다니는 그림자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번아웃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책과 외면이 아닌, 의식 속에 감춘 그림자를 찾아 보듬는 것일 테니까. 앞으로도 수많은 여행을 통해 나는  어두운 그림자를 만날 것이고, 더 이상 것을 없애기 위해 버닝 되지 않고 사이좋게 행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지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번아웃에 잠식되지 않고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게 먼저겠지. 슨 일이든 첫 발이 제일 무겁고 어려운 법이지만 그것이 없다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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