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낯선 여행
가족 여행은 왜 매번 낯설까?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2014년. 런던으로 떠난 이후부터 나는 거의 대부분의 여행을 혼자 했다. 여행 기자로 일을 할 때는 사진가와 동행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 또한 모든 여정을 나 혼자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도모(?)한다는 게 여전히 나에겐 낯선 일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초반에는 종종 혼자 떠나곤 했는데, 이를 두고 주변에서 참 말이 많았다. 대부분 남편이 허락하냐는 것이었는데, 정작 우리는 그런 의문을 가진다는 게 놀라웠다. 남편은 되려 본인이 함께하지 못하는 걸 혼자라도 하는 걸 반겼는데 말이다. 남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누군가(남편)와 떠나는 여행에 익숙해졌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은 애초에 내 계획에 없었다.
올 초 아빠가 수술을 하게 되면서 온 가족, 특히 엄마가 고생을 좀 했는데, 이를 핑계로 형부가 첫 가족 여행을 제안했다. 순수하게 우리 가족끼리 떠난 여행이 언니가 결혼하기 전이었으니 언 10년 만에 다시 떠나는 여행이었다. 이번엔 사위 둘이 더해졌으니,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여행이 내 앞에 놓인 것이다. 둘만 돼도 피곤한데, 여섯이라니.
언니와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2박 3일의 여정이 꽤나 부담스러웠는데, 정작 두 사위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만 떠나기 전, 이번 여행을 계획한 형부는 우리 자매에게 절대 부모님에게 잔소리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모든 여정은 부모님의 의견에 따를 것. 그게 우리 자매가 받은 미션 중 하나였다. 떠나기 전엔 나 또한 이번 여행은 엄마와 아빠를 위한 것이니 모든 걸 내려놓으려 했지만, 막상 닥치니 마음의 평정이 쉽게 깨졌다.
여행은 만남부터 삐걱댔다. 각자 집에서 출발해 만나기로 한 장소는 소노펠리체 레지던스였는데, 소노의 옛 이름인 대명리조트로만 아는 아빠는 스키장과 승마장 어디 즈음을 뱅뱅 돌며 입구를 찾지 못했다. 1시간을 주변을 헤매는 동안, 누구보다 가장 피곤했을 건 아빠와 엄마였을텐데, 나는 네비대로 온 것 맞냐며 아빠를 타박했다.
네비도 없던 시절, 종이 지도와 이정표만 보고도 두 딸과 아내를 데리고 지방을 누비던 과거의 아빠는 더 이상 없었다. 영어로 된 이정표에 당황하고, 복잡한 번호 키에 공동 현관을 혼자 나가기를 망설였다. 분명 내 기억으론 엄마가 사우나를 좋아해서 미리 동선을 짜뒀는데, 엄마는 혈압 때문에 더 이상 사우나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예쁜 카페에 가는 걸 즐겼고, 아빠는 입이 쉬지 않을 정도로 군것질을 좋아했다. 이 모든 사실을 3일 동안 부모님과 여행하며 새롭게 알게 됐다. 아빠가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젊음이 좋긴 좋구나."
여행을 하는 동안 엄마와 아빠가 가장 많이 한 얘기는 '젊음'에 관한 것이었다. 스키장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사람들과 아찔한 슬로프를 멍하니 바라보며 엄마는 눈을 찔끔 감았다. 볼링과 탁구에 열성인 사람들, 레이싱을 하며 깔깔 대는 아이들을 보며 아빠는 부러운 듯 멈춰 섰다. 정작 직접 해보라 권해도 손을 저으며 자리를 급하게 떠났다. 바라만 봐도 좋다며. 젊으니까, 좋은 걸 많이 보고 할 수 있는 거라고. 나즈막히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에 순간 감정이 동요해 약간의 먹먹함이 몰려왔는데, 그걸 또 들키고 싶지 않아 왜 자꾸 할아버지 같은 소리를 하냐며 타박을 하고 말았다.
자식을 통해 젊음을 보는 부모와 그들을 통해 나이 듦을 생각하는 되는 상황에서 나는 조금 먹먹해졌다. 함께 살을 비비고 살았던 시간만큼 따로 떨어져 산 시간의 간극이 벌어진 지금, 우리는 서로가 흘려보낸 시간을 간과하고 있었다. 어느새 부쩍 나이 든 부모님이 낯선 것처럼, 보호자처럼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는 다 큰 딸이 남처럼 여겨지진 않았을까?
여행에서 다녀온 다음 날, 엄마는 이번 여행이 너무 좋았다며, 피곤함 없이 푹 쉬고 몸도 말끔하다며 전화를 남겼다. 나는 또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 여행이라 하면 으레 '부모님을 모시고 간다' 생각하는데, 사실 모두 각자의 여행을 한 것뿐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그리고 아빠는 아빠대로 그리고 나는 나대로. 모두가 각자의 여행을 했고 여행의 잔상을 기억에 남길 것이다. 나는 어쩐지 훗날 이 여행이 꽤 뭉클하게 기억될 것 같아 또 다시 마음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