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할 숙제가 너무 많은 인생
하루하루가 숙제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지난 4월이 유독 그랬다. 매일 눈을 뜨면, ‘아 일어나야지‘ ’운동 가야 하는데’로 시작해 하루 종일 ‘~해야 하는데’의 일들이 테트리스 조각들처럼 따라붙었다. 당장 눈앞에 치고 들어오는 조각을 구석에 잘 내려놓았다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조각들이 마구잡이로 타임어택을 해왔다. 떨어지는 조각들 중 대충 처리해도 되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에 쫓기니 늘 조급했고, 시간 내 해내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이것이 최선인가’ 하는 자문에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고 불안했다. 전전긍긍하며 보내는 날들에 지쳐가면 괜한 부아가 나기도 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일부러 외면한 날도 있었고 당장 급하지 않지만 빠르게 끝낼 수 있는 일을 미리 당겨와 처리하는 것으로 그 죄책감을 씻어낸 날도 있었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을 아이패드 다이어리에 기록해 두는 편인데, ‘기록이라는 핑계로 스스로 또 하나의 감옥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곤 한다. 어떤 날은 해야 할 일들을 생각 없이 쓰다 보면 하루 치의 칸이 모자랄 정도로 늘어나서, 이제는 굳이 써 놓지 않아도 습관화된 일들은 제외시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종일 바빴는데, 텅 빈 하루처럼 보이는 칸들이 생긴다. 문제는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그 빈칸에 꾸역꾸역 해야 하는 일들을 채워 넣는 나를 발견할 때다. 바쁠 때는 바쁜 대로 조급하고, 여백이 생기면 무언가를 채우지 못해 안달이다. 여전히 내 무덤은 내가 파고, 스스로 만든 감옥에 나를 가두고 산다.
지난 4월은 출근할 때마다 ‘그날 치의 해결해야 할 일들’을 곱씹었다. 사업 3년 차가 되면 사실 완벽한 해결이라는 건 없다는 것쯤은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 하나만 딱! 처리하면 실타래처럼 툭툭 풀릴 것 같은 일들이 더 꼬일 때가 있고, 출구가 다 막혀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아주 작은 숨구멍이 환기를 시킬 때가 있다.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어떨 때 힘을 주고 힘을 빼야 하는지에 대한 눈치 싸움은 여전히 난제다. 그러니 나같이 미련한 자는 매일매일을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서라도 힘을 주고 살아갈 수밖에.
‘나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근로자의 날부터 대체공휴일까지 꽤 긴 연휴에도 매일 운동을 했고, 미뤄둔 집안일들과 집에서 할 수 있는 회사 업무를 한다고 종종거리며 보냈다. 달력에 표시된 빨간 날과 내 머릿속의 소프트웨어가 동기화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쉬는 날에도 여전히 ‘해야 하는데’로 가득 찬 하루하루가 무척 피곤하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던 이 죽일 놈의 연휴가, 아니 나의 데스크톱이 원망스럽다. 오늘 아침 운동 갈 준비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아 사는 거 너무 피곤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 인생에는 왜 이렇게 숙제가 많을까. 해야 할 일들이 나에게만 이렇게 많은 걸까. 하루하루 매일 무언가를 해치우기에 급급하고, 세상 유난을 떨지만 막상 인생을 봤을 때 크게 해결된 일은 거의 없다. 몇 달째 미뤄둔 세차도 못했고, 운동화 세탁도 못 맡겼고, 구두 수선도 못했고, 피부과도 못 갔고, 어깨 물리치료도 받아야 하고, A형 간염 주사도 맞아야 한다. 매일 운동을 해도 여전히 무게는 늘지 않고, 체지방도 빠지지 않는다. 많이 먹은 날도, 적게 먹은 날도 이제 몸무게는 거의 변화가 없다. 내가 아무리 전전긍긍 살아간다 해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내 마음이 바쁘다고 한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되려 뾰족한 예민함으로 옆 사람에게 불똥만 튈 뿐이다.
쉴 때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한 수만 가지의 것들의 부채감을 덜기 위해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글이라도 쓰고 있는 스스로가 어쩐지 공부하기 전에 책상 정리부터하는 것 같아 조금 애처롭다. 이제 공부 안 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나는 스스로를 닦달하며 성실의 감옥에 가두는가. 자, 지금부터 잠들기 전까지만이라도 잠시 스위치를 끄고 탈옥하자. 어차피 나는 멀리 도망갈 깜냥도 안 되는 죄수라 내일이면 스스로의 감옥에 제 발로 걸어갈 테니, 내일의 나를 믿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