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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Oct 31. 2024

오늘은 근육이 좀 붙었을까요?

형편없는 나의 첫 인바디가 불러온 좌절

올해 초, 헬스장에 등록할 때만 해도 딱히 '근육을 키워야겠다' '살을 빼야겠다' '몸을 만들어야겠다'라는 거창한 목표는 감히 없었다. 지구력, 인내심 같은 것과 상응되지 못하는 체력의 나약함, 타고나지 못한 신체 비율에 대한 체념이랄까. 그러니까 한마디로 몸을 쓰는 일에 있어서는 괄목하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내 발로 헬스장에는 왜 찾아갔냐고 물으신다면, 운동을 습관화해 보기 위해서다. 샤워를 할 때 머리부터 감는다거나 양말은 오른쪽부터 신는다거나 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정된 생활 반응에 '운동'이라는 습관 하나를 추가해 보자는 것이 목표라면 장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기대 효과였다. 언젠가는 운동이 나를 지탱하는 필수적 축이 되어 굴러가길 바라면서.


필라테스와 병행하는 헬스장이라 초반에는 필라테스 위주로 근력 운동(쇠질)과 유산소를 조금씩 시작했는데, 운동의 결과보다는 매일 아침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러 간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꽤나 즐거웠다. 분명 인바디를 재기 전까지는 말이다. 운동을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났을 무렵, 이왕 시작한 거 변화를 알면 좋지 않겠냐는 남편의 권유에 난생처음으로 인바디 기계에 올라가 봤다. 기계에 몇 초 서 있다 보니 내 몸을 (감히) 객관적인 수치로 내뱉는 숫자들에 잠시 어질어질해졌다. 처음에는 뭐가 좋은 지 나쁜 건지도 모르다가 체중과 골격근량, 체지방량으로 나뉘어 뻗어나가는 막대그래프가 심상치 않았고, 100점 만점에 내 몸의 점수가 적나라하게 찍혀서 나오는 것을 보고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단 몇 초 사이에 내가 지금껏 살아온 생활 습관의 궤적들을 추적해 성적표를 매긴 것 같았다. 역시 몸은 숨겨지지 않는 가장 솔직한 나였구나.


"오히려 좋아, 앞으로 더 좋아질 일만 있다는 거잖아.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돼."


럭키비키한 남편의 긍정회로는 때때로 위로가 되는 동시에 부아를 일으키기도 한다. 나의 뇌는 남편의 대책 없는 위로에는 관심 없는 듯 인간이 부정을 받아들이는 5단계의 과정을 정확하게 거쳐갔다. (부정) 내 몸이 이렇게까지 엉망이라고, 그럴 리 없어! - (타협) 아니야, 이 정도면 눈바디가 괜찮지 않나? 인바디 안 재도 지금껏 잘 살아왔잖아 - (우울) 아마 난 더 운동을 해도 안 될 거 같은데... 망했어  -  (수용) 앞으로 근력 운동에 더 집중하고, 유산소 시간을 늘리자!

형편없는 인바디 결과가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불행이라고까지 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8개월 동안 운동을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때를 꼽자면 바로 첫 인바디를 쟀을 때라고 말할 만큼 당시 나에게는 좌절감이 꽤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름 두 달간 인생에서 가장 많은 운동량을 소화하고 있었으며, 스스로 운동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뿌듯함과 자신감을 얻던 시기였던 터라, 사실 숫자보다 나를 진짜로 절망에 빠트렸던 것은 '이 정도의 노력 가지고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라는 현실의 벽이었으리라.  


 

나이가 들수록 모든 일은 체력에서 시작되고, 체력에서 멈춘다는 것에 통감한다. 언젠가부터 쉽게 지치고, 포기하는 일이 생기면서 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날들이 여러 해 쌓여갔다. 나를 지탱하던 일에 있어 버닝과 번아웃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모든 상황을 '늙어서 그래'라는 말로 무책임하게 얼버무리는 것도 신물이 날 지경이다. 30대면 어떻고, 40대면 어때서. 모두가 알겠지만, 나이는 아무 죄가 없다. 다만 몸이 지치고 힘들면 잠시 스쳐 지나갈 바람에도 쉽게 포기하고, 절망하고, 좌절한다. 어렸을 때는 조금만 노력해도 이룰 수 있었던 일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노력 가지고는 택도 없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만큼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목표와 욕망도 함께 커졌다는 것은 전혀 감안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몸은 가끔 야속할 만큼 솔직하고 정확하다. 개개인의 체질과 속도에 따라 다르지만 인풋과 아웃풋의 정확한 계산을 통해 완성된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마음과 다르게 몸은 겉으로 모든 것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보이고, 바라보는 시선은 주관적 문제일 수 있으나 몸에는 거짓과 숨김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개개인의 생활 궤적을 그대로 축적하고 쌓아간다.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의 목표대로 지금은 어느 정도 운동이 내 생활 반경 속 한 축이 되어 습관처럼 굴러가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하다. 하지만 첫 인바디를 계기로 나는 여전히 매달 한 번씩 인바디를 체크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C자 커브가 서서히 I자로 펼지며 아주 더딘 성장을 조금씩 이루고 있다. 단 몇 백 그램의 근육량에 절망과 희망을 넘나드는 감정의 동요도 있지만, 절망의 파고가 전처럼 높지 않다. 비록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내 몸은 오늘도 나의 쇠질을 아주 미량이라도 축적했을 테니까. 비록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늙은 몸이 되었지만, 어제 만큼의(혹은 그보다 더 증량한) 무게를 해냈고, 조금씩 붙어가는 근육처럼 마음도 어제보다는 한층 단단해졌음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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