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기로 마음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 결혼해'라고 알렸을 때
같은 교회 청년부 어떤 언니였던가 학교 선배였던가 둘 중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귀걸이 예물로 못 받겠네?
내가 대답했다.
넌 귀를 뚫지 않았잖아. 내게 그렇게 알려주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 귀를 뚫지 않으면 결혼 예물로 귀걸이를 받을 수 없는 거구나.
그래서인가 나는 귀걸이를 결혼 예물로 받지 못(안)했다. 그냥. 내 멀쩡한 귀를 뚫고 싶지가 않았다.
시간이 훌쩍 흘러 2024년 11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는 땡스기빙을 일주일 앞두고 있고,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있고, 결혼기념일도 다가오고, 세상은 혼잡하고,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놓인 사람들이 지구에 흩어져있고 온지구를 훑지 않아도 내 주변과 혹은 나 자신도
매일매일 변화하고 숨통을 조여 오는 것 같은 불확실성과 불안함 속에서 바둥바둥거리면서 하루를 버텨낸다.
단위를 하루로 끊어서 허덕이며 사는 느낌이 든달까? 지친다는 느낌이 생생하다.
집안에서 해야 하는 자잘한 일들, 접시를 치우고 컵을 닦고 포크나 수저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거품내서 닦는 다든가 청소기 앞부분에 낀 머리카락을 잘게 잘라서 빼낸다든가 하다가
갑자기!
귀나 뚫어 볼까? 생각했다. 그냥. 이제껏 한 번도 해볼까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이 떠올랐다.
내 귓볼을 뚫고 안 뚫고는 남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며 나 자신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귀를 뚫어서 거기에 작고 반짝이는 귀걸이를 끼운다는 것은 '적당한 크기의 이벤트' 같았다.
한번 해보고 없어지는 시시한 게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고 되돌릴 수 없는 무겁고 중한 이벤트도 아닌 것 같았다.
딱 적당했다. 저지르기에 딱 적당했다.
안 뚫었다. 못 뚫었다.
아플 것 같아서. 귀찮을 것 같아서.
뚫린 귓볼에 매일매일 귀걸이를 바꿔서 달고 이 옷엔 이게 어울릴까 저게 어울릴까를 잠시라도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걸 상상해 보니 지금도 할 일이 많아서 지치는데 일이 또, 더 늘어난다는 자각이 들었다.
좀 더 인생이 심심해지면 그때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