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만 되는 이야기
만남의 애티튜드 차이는 거기서 시작이다.
십 년을 넘게 나간 동창 모임은 정기적으로 오는 간행물 같았다. 반가운 친구도 있고, 처음 보는 동창도 있지만 피하고 싶은 동창도 있다. 소박하게 시작했던 동창회는 인원이 늘어나면서 잡음이 생겼고 설렜던 모임 공지는 망설임으로 바뀌었다.
인사치레로 마친 저녁 자리는 애피타이저고 2차로 옮긴 장소는 누군가의 단두대였다. 한동안 발 없는 말이 여기저기 달리고 엎어지길 반복했다. 당사자가 없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조선왕조 오백 년처럼 떠도는 얘기는 각색되어 누군가의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다. 빈 말이 굴러다니며 위력을 키웠다.
그 자리에 없는 남의 말. 그 ‘남’이 해야 하는 말을, 무리는 잘도 지어냈다. 안주 삼아 씹었던 말이니 맛깔났을 것이고, 내 혀가 아니니 깨물어도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남’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때론 남의 말에 염증을 느낄 때도 있겠지만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어울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맞장구치게 되고, 수위가 조절되지 않아 범람하는 데 일조까지 한다. ‘아차’하는 순간 누구라도 멈춰야 할 말들의 고삐를 잡아야 한다.
언젠가 내 SNS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웬만하면 네 얼굴도 좀 올리지? 얼마나 잘나서 네 사진 하나 없냐?’
인물사진을 안 올렸던 내게 동창이랍시고 들어와 이런 댓글을 남겼다. 잘 알지 못하는 사이라 조심스럽게 입장을 설명했지만 결국 난감한 댓글은 남고 조회 수만 늘었다.
누구에게나 있는 사정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무례해 보였다. 말의 부드러움을 따라오지 못하는 문자가 불쾌감을 남겼고,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거리감이 생겼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그날 이후 내 SNS는 비공개로 전향됐고,
오래도록 가깝게 사귄 친구와, 같은 학교에 다니기만 했던 동창을 구분하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정기적으로 오는 간행물은 더 열어보지 않았지만 열 손가락만큼 남은 친구와의 만남은 지속됐다. 음담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부부간의 얘기도 패설로 남지 않게 뒷얘기가 없었다.
아내가 모르는 남편의 ‘작은방’ 이야기나, 까도 까도 모르겠는 양파 같은 아내의 변덕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이야기 정도였다.
남사친(?)은 아내가 새벽밥 하고 잘 다려진 와이셔츠와 양복과 어울리는 넥타이와 손수건을 골라준다고 했다. 일정한 수입을 가져다주고 가정에 책임을 다하는 자신이 마땅하게 받아야 할 권리라고 말하자 여사친들은 말한다. 집안 살림 잘하고, 아이들 관리 잘하면서 완벽한 남자까지 만들어 출근시키는 거니까 나가서 돈 많이 벌어오라고.
나니까 데리고 산다는 말과 너라서 같이 살아준다는 맥락 없는 위로와 칭찬을 이어가며 웃고 떠들다 보면 4차 같은 2차로 각자의 이야기는 끝난다. 최종적으로 술값을 누가 냈는지는 관심 없다. 단지 그날 모임에 오지 못한 친구의 안부가 궁금할 뿐이다. 수시로 궁금하고 적당히 걱정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어느 날 나도 모르는 난폭한 말들이 발신자 없이 배송된다면, 불쾌함과 억울함으로 분노를 만들고, 대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를 놓아버릴 수도 있다. 악성 댓글과 언어폭력으로 만들어지는 상처는 생각보다 세다. 실감 못 하는 건 상처 준 사람의 일방적인 태도고 상처받은 사람의 후유증은 핵폭탄급이다.
상처 준 사람을 보면 흉터가 생각났고 흉터를 보면 그 사람이 미워졌다. 그래서 악순환의 뿌리를 잘라내려고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 목록을 정리했다. 친구와 나머지로 분류하고 나머지에서 또 걸러냈다. 상처의 여지는 내가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보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기능도 이용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을 난 찰떡같이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