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원 Feb 23. 2022

내가 만난 선입견

강남역 11번 출구 앞 B타워 1층. 그 모퉁이에는 12평 남짓한 남성복 판매장이 있다. 주 고객층은 2~30대지만 나이로 옷을 입지 않는 요즘 4~50대 고객도 제법 있다. 색채에 대한 선택이 과감해지고 안목이 넓어지자 남성들도 혼자 하는 쇼핑을 즐겼고 그 시간도 길어졌다. 반면 변화에 합류하지 못한 남자들은 여전히 판매자의 권유를 신임했고 쇼핑은 속전속결이었다. 그런 남자가 단골이 되면 조금씩 변화에 애쓰기도 한다.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매장에선 겉모습으로 생긴 해프닝들이 있다.  

그날은 여느 날보다 올림픽 도로가 한산했다. 한남대교에서 논현동까지 약간의 정체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그 구간을 벗어나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했다. 

매장 앞에서 보안장치를 해제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한 손에 들린 커피와 빵 봉지 때문에 허술하게 맸던 가방이 신경 쓰였다. 놀라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맘처럼 되지 않았다. 얼핏 본 남자의 셔츠는 핏자국이 있었고 단추도 떨어져 있었다. 며칠 전 패싸움으로 경찰도 다녀갔던 참이라 두려움이 더 컸다. 

난 해제된 문을 열지 않고 오픈전임을 말했다. 남자는 상황이 좋지 않아 급하게 왔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다리도 후들거리고 떨리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지만, 상황을 판단해야 했다. 직원들이 출근하려면 30~40분은 더 있어야 했다. 달리 방법도, 내칠 용기도 없어 함께 매장으로 들어섰다.  

매장에 들어온 이상 고객으로 응대해야 했다. 줄자로 고객의 사이즈를 재고 흰색 셔츠에 검은 단추가 달린 슬림 셔츠를 권했다. 셔츠가 맘에 든 고객은 갈아입고 가야 한다며 스팀을 원했다. 고객과의 거리를 두고 손질된 셔츠를 피팅룸 안으로 걸어줬다. 

피팅룸 문이 닫히자 좀 전까지 있었던 내 불안감은 좀 가라앉았다. 이제 계산하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네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들어와 매장을 가득 메우고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들의 옷도 성하진 않았다. 재킷 소매가 찢겨 나가고 셔츠 단추가 풀어지고, 먼저 온 고객보다 피가 더 많이 묻어있었다.

“소란 떨지 말고 필요한 것만 골라라.” 

셔츠를 갈아입고 나온 고객은 짧게 말하고 거울 앞에 섰다.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날 떨게 했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고객님, 흰색 셔츠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마세요. 들어가셔서 티셔츠 벗고 나오세요.”

거울에 비친 고객과 눈이 마주치자 얼떨결에 안 해도 되는 말을 해 버렸다. 고객은 답이 없었다. 내 말이 무시당한 것 같아 맘에 들지 않았다. 한 번 더 속옷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당돌하게 말하는 순간 남자가 웃었다. 건장한 남자들도 덩달아 웃었다.

아뿔싸! 그건 문신이었다. 

그 남자는! 그저 그날의 첫 고객이었을 뿐이다.     

선입견이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을 말한다. 미리 정해놓은 단순하고 일반화된 생각의 틀을 깨고 때론 새롭게 시각화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해보고 아님 말고!     


윗사람의 선물을 고르는 시각은 비슷했다. 나이 차가 많든, 적든 일단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시점이 같기 때문이다. 선물을 고르는 사람은 밤색, 회색, 감색. 무늬도 없는 단색의 옷을 만진다. 그분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고 어른의 기본에 집중한다. 그래서 질문한다. 

“고객님은 그 나이가 되면 어떤 색을 입고 싶으세요?”

웃는 나를 보며 고객도 같이 웃었다. 아버지, 선생님이란 이름에 갇힌 관념을 특수화하면 좀 더 세련된 선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황금비율을 가진 고객이 몸에 붙는 민트 셔츠를 입지 못하고 아버지처럼 앞 주름이 있는 바지를 찾는다. 그게 또 의외로 잘 어울린다. 110 size를 입는 남성이 앞 단추가 미어지는 슬림한 셔츠를 입고 유쾌하게 나간다. 예상은 늘 적중하지 않았다.      


고객들은 변해간다. 구매 의사가 없어도 어색한 색채의 옷을 입어보고 거울을 보며 자신의 색을 찾아간다. 퇴직자의 선물을 사러 온 고객이 선물은 내게 맡기고 자신은 신상을 입은 마네킹 앞에 서 있다. 

선입견은 또 다른 반전을 남기며 새로운 선입견을 만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