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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s Fong Apr 25. 2020

캐나다의 민낯을 보았던 날,

내가 꿈꾸었던 곳은 결국 '유토피아'다.


  내 나이 만 서른 하나, 아직은 한창인 이제 막 피어나려는 꽃 같은 인생이다. 그래도 이 짧은 시간들을 되돌아보자면 우연인지 운명인지 나는 4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25년 동안 내가 나고 자란 모국 대한민국, 그리고 1년 동안 인턴을 하기 위해 떠났던 뉴욕, 8년째 살고 있는 마카오, 그리고 남편을 따라 1년 중 한 두 달 정도를 캐나다에서 보내고 있는 생활을 5년째 하고 있다.


  남편은 캐나다에서 온 중국계 교포이다. 캐나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살다가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마카오로 돌아와 거의 20년 가까이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편에게 캐나다는 그리운 고향이며, 가족이 있는 곳이고,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가고 싶은 장소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캐나다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그 계획이 일시정지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마카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자세한 내막은 이전글-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에 있다)



  남편을 따라 처음 가봤던 캐나다는 정말이지 내가 그려왔던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 나는 대도시의 복잡함과 높은 인구밀도를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타인과의 경쟁이 당연시되는 한국, 그리고 지옥철. 땅덩어리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카오와 홍콩. 익사이팅했지만 정 없이 자기 갈길만 가는 뉴요커와 옐로 택시들이 쉼 없이 경적을 울리며 정신을 쏙 빼어 놓는 뉴욕. 각각의 도시들은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이 있었지만 내 라이프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다.


  나는 차가운 빌딩 숲보다는 자연이 좋은 사람이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으면 좋겠고, 가끔은 조용히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슬비라도 내릴라치면, 축축한 땅에서 피어오르는 흙냄새와 나무 냄새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나도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본 어쩔 수 없는 도시 사람인지라, 또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은 놓치고 싶지 않다. 언제든지 아이쇼핑을 할 수 있는 거대한 쇼핑몰, 맛집이 즐비한 다운타운, 때로는 사색을 즐길 수 있는 문화센터나 박물관, 영화관 등.


  세상에 산과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데 맛집이 즐비한 다운타운이 바로 옆에 있으며 거대한 쇼핑몰과 가까운 그런 시골 같은, 도시 같은 두 곳이 동시에 합쳐진 곳이 어디 있겠는가. 도시에 살면 교외로 나가기 위해 한 두어 시간은 차를 몰고 나가던지, 시골에서 고즈넉한 삶을 산다면 가끔 읍내 정도나 마실을 나갈 수 있겠지. 그런데 그 유토피아가 밴쿠버였다. 다운타운 한가운데 랍슨 스트릿에는 다양한 쇼핑몰과 맛집이 즐비했고, 그 다운타운을 배경으로 눈 덮인 산이 보인다. 조금만 내려가면 바다가 있고, 공원이 있으며 새들과 토끼가 뛰어논다. 마음만 먹으면 차를 몰고 30분만 가서 산속에서 힐링도 가능했다.


  자연환경뿐만이 아니었다. 캐네디언의 라이프 스타일 또한 나와 찰떡궁합이었다. 항상 여유가 넘쳐나는 사람들,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사람들, 낯선 사람과도 인사하고 안부를 물으며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 강아지들과 산책을 즐기며,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곳이 캐나다였다.



  마카오에 살면서 캐나다로 탈출하는 날만 얼마나 손꼽았는지 모른다. 평균 습도가 80%는 족히 넘는, 여름은 체감온도가 50도 가까이 되는 찜통 같은 마카오. 정신없이 왕왕 거리는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캐나다로 갈 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인내했고, 드디어 캐나다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얻었다.


  우리는 나의 빠른 적응과 진정한 캐나다 라이프를 한번 느껴보고자 다운타운에 집을 구했다. 집을 구해 리모델링을 하고, 신혼집을 다시 꾸미는 기분으로 예쁜 가구를 사러 매일 매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밤이면 동네에 익숙해지고 싶다는 핑계로 시원한 여름 바람이 부는 저녁, 게스 타운으로 매일같이 산책을 나갔다.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영어학원에 다니며 친구도 사귀었다. 빠른 시간 내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마약이었다.

캐나다는 마약 합법 지역이다. 길거리 어딜 가나 마리화나 냄새가 진동하고, 약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동안 캐나다에 방문할 때는 시댁에 있었기 때문에, 다운타운의 밤거리가 이럴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밤이면 쉴 새 없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 때문에, 창문을 닫고 잤다.


  한 번은 혼자 길을 익혀본다며 이곳저곳을 탐험하러 떠난 적이 있다. 발길 닿는 대로, 느낌 가는 대로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새로운 지역이나 여행을 가면 종종 탐험이라고 명명하고 혼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마침내 발길이 닿았던 곳은 다운타운에서 악명 높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스트 해스팅' 지역이었다. 밴쿠버 초짜가 그걸 알 턱이 있나, 나도 모르게 발 길이 닿았던 그곳은 내가 봐왔던 다운타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좀비 영화 세트장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을씨년스럽게 겨우 벽에 붙어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게 달랑거리는 모텔 사인, 다 깨져버려서 누가 안에 살 것 같지도 않은 창문들이 줄지어 있었고 문을 열은 가게는 몇 군데 있지도 않았다. 마치 좀비 떼가 휩쓸고 가 버려진 드라마 '워킹데드'의 한 장면 같았다. 그 배경들 사이로 무수히 많은 사람이 바닥에 앉아 노닥거리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High'해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마도 대낮부터 마약을 했으리라.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 그저 앉아서 일광욕을 하며 누워있는 사람들, 기절한 듯 자는 사람들 사이로 아시아인이라고는 나뿐이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해를 끼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으나, 무서운 건 사실이었다.


  뉴욕에서 살 때도 거지나 마약 중독자를 참 많이 봐왔었다. 익숙할 정도였기 때문에 마약 중독자에 대한 거리낌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스트 해스팅의 거지들은 나에게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뉴욕의 거지들과 마약 중독자들은 보통 혼자 있거나 두어 명 정도 구석에 있지 떼로 다니지는 않는다. 하지만 밴쿠버에서는 그 지역에 거지와 마약중독자를 한데 모아놓은 것 같았다. 그 수가 어마어마하여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황급히 그 길을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그쪽은 위험한 동네이니 절대 가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남편과 집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갔다. 주말이라 사람이 여기저기 많았고 다들 활기차 보였다. 밤이면 사람들로 북적 거리는 유명한 Bar하나가 있는데, 거기에 어떤 아주머니 한 명이 얼굴이 상당히 상기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여보, 저기 사람이 쓰러졌나 봐. 어떻게 해?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이미 그 아주머니를 발견한 많은 사람들도 흘끗흘끗 그 아주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이게 웬일인가. 아주머니의 팔에는 방금 주사를 놓은 듯 한 자국과 함께 피가 흐르고 있었다.


"Overdose네"


  남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누구 하나도 그 아주머니를 일으키거나 세우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쳐다만 볼 뿐, 다들 각자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중에서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어떤 아저씨 한분이 휴대전화로 신고를 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고, 우리도 선뜻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장소에서 조금 멀어졌다.


  잠시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구급차 한대가 도착했다. 그런데 구급대원이 그 급박한 상황에서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고, 사이렌은 금세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잠시 후 Special이라고 쓰여있는 차 한 대가 뒤이어 도착했다.


"그 아주머니, 죽었나 봐"


  남편은 보통 마약에 취한 사람들은 구급차가 와서 데리고 간 뒤, 정해진 장소로 데리고 가서 마약 기운이 빠지게 도와주고 훈방조치를 내린다고 한다. 하지만 저렇게 구급차가 환자를 데려가지 않고 스페셜리스트가 온 것이라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이 꽤 충격적이었다. 나와는 어떤 관계도 없는 아주머니였고, 내가 한 일은 더더욱 아니었으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던 그 사람 옆을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쳤다는 것에 대해 왠지 모를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차가운 바닥에서 얼굴이 상기된 채 이상한 각도의 팔 모양을 하고 쓰러져 있던 그 아주머니. 도대체 어떤 사연이었길래, 대낮부터 마약에 취해 그렇게 길바닥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내가 도와줬어야 했던 건 아닐까, 인공호흡이라도 해줘야 했던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저런 사람들은 안타깝긴 하지만 함부로 도와줘선 안된다고 했다.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에이즈 같은 병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만져서도 안된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쓰러져있을 때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캐네디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캐나다의 마약은 심각한 문제로 항상 부각되고 있다. 마리화나 정도는 마약도 아니라는 생각이 팽배해져 있기 때문에 어디서나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마리화나에서 그치지 않고 그보다 더 강력하고 센 약을 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마약의 합법에 관련해선 항상 찬반론이 끊이지 않기에 나도 무엇이 정답인 줄은 모르겠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는 내가 꿈꾸던 유토피아 같은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유토피아의 말이 그리스어로 '없는 곳' 인 것처럼 유토피아는 없다. 인생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듯 내가 꿈꿔왔던 캐나다라는 나라도 분명 비극의 민낯이 있었다.




#캐나다 #이민 #외국 #밴쿠버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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