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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Jan 23. 2024

운전할 때 조수석에서 잔소리하는 팀장

“야, 노란불인데 왜 멈춰? 밟았으면 갈 수 있잖아. 답답하게 운전하네. 늦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저 새끼가 어딜 들어와? 야 인마, 저런 놈을 왜 끼워주는 거야. 운전 개차반으로 하네.”


 팀장은 전형적인 ‘일잘러’입니다. 정확한 판단과 명확한 업무 지시는 본받고 싶은 상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회사 안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회사를 벗어난 팀장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차 안에서는 잔소리꾼, 분노 조절 장애 등 온갖 나쁜 평판이 팀장을 수식합니다.

 업무 특성상 출장이 많습니다. 주로 저와 팀장이 한 팀이 되어 움직입니다. 나란히 앉아 출장을 갈 때면 정말 힘들고 때로는 짜증이 납니다. 제가 운전을 하는 건 별 일 아닙니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상사가 운전하는 것보다 부하 직원이 운전대를 잡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니까요.


 팀장과 차를 타기 싫은 이유는 팀장의 잔소리 때문입니다. 업무적인 내용이면 참을 수 있습니다. 일 잘하는 팀장의 조언이니까요. 팀장이 하는 말은 대부분 운전에 관련된 잔소리입니다.


 야 박대리, 노란불인데 왜 멈춰? 밟았으면 갈 수 있잖아. 답답하게 운전하네. 정말. 늦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노란불엔 멈추는 게 아니라 빨리 지나가라는 뜻이야. 어휴, 갑갑해라.


 이런 식입니다. 팀장은 조수석에 앉아 제 운전 실력을 비난합니다. 노란불엔 속도를 줄이는 게 맞거든요. 깐깐한 팀장 성격상 출장 갈 때면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게 일정을 잡습니다. 아무 문제없는데 팀장은 무서울 정도로 돌변하여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립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였습니다. 내비게이션에서 과속단속 카메라를 알리는 경고 메시지가 흘러나왔습니다. 미리 속도를 줄여 단속에 대비했습니다. 역시나 팀장은 또 화를 냈습니다. “카메라 바로 앞에서 속도를 줄이면 될 것을 왜 벌써부터 브레이크를 밟느냐”고요.

 차량은 법인차지만, 과태료는 위반한 당사자가 내야 합니다.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해 벌금이 날아오면 대신 내줄 것도 아니잖아요. 왜 위험한 운전을 강요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회사에선 젠틀하고 냉철한 사람이 조수석에만 앉으면 망나니가 됩니다.


 안전벨트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출장 초기엔 팀장이 깜빡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습니다. 조수석 안전벨트 경고음이 신경 쓰여 팀장에게 말했습니다.


 “팀장님, 안전벨트 하시겠습니까? 이제 출발하려고요.”


 “야, 네가 운전만 제대로 하면 아무 문제없어. 조용히 하고 그냥 갈 길이나 가자”

 그 후론 팀장에게 안전벨트를 하란 이야기도 못합니다. 시끄러운 경고음도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두고 액셀을 밟습니다.


 ‘이 사람 정말 미친 건가?’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습니다. 좌회전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미처 좌회전 차선에 들어오지 못한 차가 팀장과 제가 탄 차 앞으로 들어왔습니다. 창문을 내려 미안하다고 손을 드는 운전자를 보곤 양보하려던 때였습니다. 앞 차가 서서히 들어오자 팀장은 외마디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 새끼가 어딜 들어와? 야 인마 박대리, 저런 놈을 왜 끼워주는 거야. 운전 개차반으로 하네.”


 깜짝 놀란 건 팀장의 다음 행동입니다. 팀장은 왼손을 뻗어 클락션을 후려갈기듯 눌렀고요. 오른손으론 핸들을 잡아서 끼어들려는 차 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왼발은 운전석을 넘어와 액셀을 밟으려 했습니다. 다행히 팀장 다리가 짧아서 엑셀엔 닿지 않았지만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클락션 소리에 놀란 앞 차는 끼어들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췄습니다.

 조수석에서 넘어와 핸들을 뺏으며 액셀을 밟으려 하다니요.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어리둥절하고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자 다들 똑같은 반응입니다.


 “그럼 팀장이 운전하면 되잖아. 답답하면 본인이 하던가.”


 맞습니다. 팀장이 하면 됩니다. 하지만 팀장은 면허가 없습니다.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습니다. 그런 사람이 저에게 운전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다니, 더 어이가 없습니다. 다음 주 출장일정이 잡혔습니다. 회사에서 2시간이나 떨어진 곳입니다. 이번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저도 면허가 없어지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잘 버텨내고 싶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회사, 직책, 업무 등은 사연 내용을 재구성하여 만들었습니다.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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