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했을 때, 새 프로젝트를 위해 팀이 꾸려지면 보통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해당 팀원들에 대한 평가들이 자연스레 귀에 들리곤 했다. 그 매니저 밑에 있으면 어떻다 저떻다, 그 과장 일을 잘한다, 혹은 일을 만들어 하는 스타일이다, 그 대리 일 못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뭐 등등. 그렇게 대충 평판을 듣고 직접 사람들을 접하면 사실 50:50으로 소문과 비슷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평판이라는게 결국 그 말을 전달한 사람의 기준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느끼기에 한국에서 보통 평이 좋고 일 잘한다고 소문난 경우는 아주 눈에 띄게 특출나고 탁월한 업무 능력은 솔직히 모르겠고 (전문직이 아니라면), 적당한 업무능력와 책임감 그리고 사회성이 함께 결합된 느낌이다. 그러니까 각각을 100으로 봤을 때, 100 60 50보다도 70 70 70 인 경우가 훨씬 평이 좋고 일 잘한다고 소문이 쉽게 났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좀 더 많기 때문에, 내가 한국의 경험으로 선입견처럼 생각하던 그 일을 ‘잘한다는’ 기준이 흔들리게 되었다.
일단 회사에 종속된 시간이 적기도 하고, 각자 워킹 패턴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그러니 동료 간 유대관계가 한국 회사보다 적어서 사회성 같은 부분이 제외된다. 그러니까 동료들과 엄청 잘 지낸다거나 상사에게 아부하는 것이 한국에서처럼 잘 작용할 수 없는 구조 같다. 그러면 업무능력과 책임감 정도가 남게 되는데, 업무능력이라 하면 이것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기술적이고 전문성이 들어가는 일과 자원을 관리하는 일인 매니징. 어느 단계 이상이 되면 이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오게 되는데 내가 좀 더 파고드는 스타일 즉, 기술 연구 개발 같은 것에 어울리면 그쪽을 택해 계속 디벨롭을 하는 것이고, 관리하는 쪽으로 가겠다 하면 실무보다는 매니징 쪽으로 가면 된다. 보통 성향과 적성에 맞게 자연스레 갈리는 것 같은데, 두 개가 그냥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엔지니어라던가 컨설턴트라고 해서 낮은 직급이 아니고 매니저라는 이름을 달았다 해서 더 높은 것이 아니라 그냥 롤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오히려 principal이나 director 정도를 직군 앞뒤에 붙이면 더 상위 직급이다. 이때 업무능력 외 남은 책임감이 롤 앞뒤에 붙는 직급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월급 받으며, 책임지는 일 하기 싫고 그러면 그냥 엔지니어에 머물면 된다. 반면 야심가에 막 뭔가 해보고 싶다 하면 열심히 해서 앞에 호칭 하나 더 다는 직급으로 올라가면 된다. 내가 느끼기에 이 동네는 후자가 생각보다 많이 없어서 책임감 몇 스푼만 얹으면 잘 올라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주 젊은데도 직급이 높고, 나이가 5-60인데도 직급이 낮은, 동양 문화에는 좀 어색한 역전 현상이 종종 보이는데 이게 경쟁에서 쳐졌다기보다는 자기 개인 삶의 가치관에 따른 결정이라 사실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 (사실 나도 이제야 좀 익숙해지는 것 같다). 개인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성향도 다르기 때문에, 일도 내가 추구하는 만큼 하면 되니 경쟁이라는 것이 치열하지 않다, 오히려 불필요한 경쟁이 줄어들어 사회적 피로도가 적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일을 잘한다는 기준을 생각해 보기 전에, 일단 내 삶에서 일을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얼마나 할 것이지가 우선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마다 내가 일 속에서 혹은 일로부터 추구하는 바가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개인의 첫 번째 기준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회사가 평가하는 고과는 그다음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그 기준은 아직 못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