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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an 26. 2022

저기요,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그들이 내민 순간의 용기가 내게는 다 행운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눈도 간간이 내렸다. 주말에 동생의 자취방에 놀러 갔다가 아끼는 목도리를 두고 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잘 매지 않던 뜨개 목도리를 하고 출근을 했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출퇴근길이면 날이 웬만큼 추워도 지하철을 탈 때와 내릴 때의 체감 온도가 많이 달라졌다. 그날 퇴근길에도 장갑에 목도리까지 야무지게 두르고 가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말고 꾸역꾸역 사람 틈새로 모두 벗어버렸다. 장갑은 주머니에 넣고, 동그랗게 생겨 머리에 쏙 끼우는 형태의 목도리를 어떻게 들고 갈까 고민하다 팔에 나름 단단히 걸었다.


테트리스 같던 지하철을 내려 한숨 돌리고 출구 밖으로 나왔다. 한참 걷는데 누군가 등을 툭툭 건드렸다. 주변 소음을 모두 막은 채 이어폰을 듣고 있기도 했고, 워낙 잘 놀라는 편이라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한 남자가 있었다.


"저기에 목도리 떨어뜨리셨어요."


남자는 한참 뒤 출구 쪽을 가리켰다. 팔에 잘 걸었다고 생각한 목도리가 어느새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놀란 마음이 사그라들고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하며 등을 돌려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남자가 가리킬 때까지만 해도 멀리서나마 바닥에 보이던 목도리가 사람들을 뚫고 근처에 다다르자 보이지 않았다.


당황해서 주변을 훑는데, 근처에 어떤 아주머니가 목도리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아주머니께 다가가 제 목도리라고 말씀드리자 잘 챙기라며 그새 조금 묻은 눈과 얼룩들을 털어 건네주셨다. 역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아까 목도리의 위치를 알려주던 남자와 다시 마주쳤다.


머쓱하게 웃으며 목례를 건네고 지나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방향으로 가던 길이 아닌데도 목도리가 떨어진 걸 알려주러 한참을 왔구나. 새삼 더욱 고마워졌다. 그 아주머니도 내가 출구까지 뛰어갈 동안 목도리를 든 채 자리에 서 계셨겠지. 혹시나 근처에 있을 주인을 찾아주려고.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데, 추운 바깥에서 지하철역으로 들어서자 안경에 김이 훅 서리며 눈앞이 뿌예졌다. 민망한 마음에 서둘러 벗어버리고 패딩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었다.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또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건드렸다. 이번에도 놀라 외마디 소리까지 내며 뒤를 돌아봤는데, 누군가 안경을 내미는 것이었다.


"이거 떨어졌어요."


그렇게 말하며 우뚝 선 여자의 뒤로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조금만 늦게 주웠더라면 연약한 안경은 저 인파에 밀리고 밟혀 수명을 다했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안경을 받고 꾸벅 인사한 뒤 멀어지는데, 목도리를 떨어뜨린 역 앞에서의 일이 떠오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나 그런 장면을 목격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짧은 순간 지나치지 않고 다가가 알려주는 것, 물건을 주워주는 것, 더 나아가 도와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용기라면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가는 길이 바쁘다면, 가던 길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럴 테다. 나는 짧은 며칠 사이에도 우연히 많은 사람에게 그런 도움을 받았다. 용기를 받았다.


개인적인 일로 큰 피로감을 느끼고 집에 돌아와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다. 그때, 그리고 그런 때에 주로 생각했던 것은 꽤 자기 파괴적인 것들이었다. 왜 나에게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늘 운이 나쁘지. 재수가 없지.


하지만 이렇게 무심코 도움을 받았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과연 내가 운이 나쁜 사람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운이 좋아 목도리를 잃어버리지 않았고, 또 운이 좋아 안경이 부서지지 않았다. 그들이 내민 순간의 용기가 내게는 다 행운이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다 뭐라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별것도 아닌 단순한 행동에 혼자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그렇지만 그 단순한 행동을 우리는 호의라 부른다. 얼만큼의 고민을 하고 행동에 옮겼든, 난처해진 타인에 대한 호의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일이니까. 작은 호의에 크게 감사해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감사를 나누어도 힘듦이 닥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나를 깎아내릴지도 모른다. 운을 탓할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생각은 잘라도 잘라도 질기게 자라나고, 아무리 꺾어내도 어느새 꼿꼿이 허리를 펴곤 하니까. 영영 뿌리를 뽑아버리기란 아무래도 힘이 들겠지. 그럴지언정 조금이라도 더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게, 전보다 더 빨리 잘라낼 수 있게 오늘도 나를 다독여본다.


그리고 다짐도 한다. 누군가 내 앞에서 무언가를 떨어뜨린다면, 잃어버린다면, 자신도 모르게 조금은 난처해진다면 나도 주저하지 않고 용기를 내 도와야겠다고. 내 잠깐의 용기가 누군가에게는 그날의 안도가 되고 행운이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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