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RED PINK GREEN: Peter Pabst x Pina
2019.5.25 - 10.27 piknic.kr
Visited 10.8 during Korean Art Week
Instagram hashtag event: exhibition poster and memo block
9월 말부터 1-2주 동안 한국에서도 아트위크가 진행되었다.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베를린 아트위크를 돌아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도 열리는 것을 보니 내심 반가웠다. 보통 협력 기관들은 이 미술 주간 동안 할인이나 이벤트를 열기 때문에 그간 가보고 싶었던 갤러리나 전시들을 찾아보았다. 남산 피크닉도 그중 하나였다.
여름 내내 보고 싶었던 전시를 가을이 되어서야 갔다. 홍보하는 것을 봐서는 작년에 갔던 류이치 사카모토 전시랑 비교했을 때, 작품의 양이 엄청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살짝 망설이고 있었는데, 미술 주간 이벤트가 있기도 하고, 곧 있으면 끝나는 전시라서 질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교 때 Dance 수업에서 알게 된 피나 바우쉬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대학교 때 수강했던 Dance department의 movement 관련 수업이었다. 선생님이 Pina Bausch 다큐멘터리를 틀어주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사실 조금 졸아서 점수가 깎였고, 영상의 30%는 이해를 못했지만, 막연하게 멋있다는 느낌은 계속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피나 바우쉬 이름이 거론되면 속으로 아는 척을 하며 반가웠다. 이번 전시도 그런 의미에서 꼭꼭 가야지 생각했다.
전시 홍보글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피나 바우쉬 내용인 줄 알았는데, 계속 다른 이름이 거론되길래 의아했다. 나중에서야 피나 바우쉬의 무대 디자이너 페터 팝스트의 전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할 때, 무대보다는 조명과 사운드 디자인을 했지만, 무대 디자인은 항상 탐나는 topic이었다. 미적 감각이나 손재주가 뛰어나지는 않아서 소형 모델링을 만드는 과제들로 만족했지만, 언제나 뮤지컬을 보러 가면 무대 디자인과 그 무대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변하는지 수첩에 스케치했다.
나처럼 연극을 전공했고 지금도 공연계에서 일하고 있는 멋진 선배에게 last minute 연락해서 함께 갔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취향에 맞는 전시를 간다는 것은 언제나 영감이 샘솟는 일이기에.
사실 피나 바우쉬도, 현대무용에 대해서도 많이 알지는 않는다. 그저 대학교 수업 때 연습했던 topic들을 통해 현대무용이란 것을 즐거운 경험 정도로 남겨두었다. 수업 시간에 우리는 여러 블록이나 오브제들을 널브러트려 놓고, 그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했다. 또, 사물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툭 치거나 만지거나 등의 액션을 취할 때 나는 어떤 리액션을 줄 것인지 생각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외부의 자극과 환경에 따라 나의 리액션이 바뀌고, 나의 다음 액션이 변하기도 했다. 움직임이란 무엇인지, 몸이란 무엇인지, 춤이란 무엇인지, 이 공간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수업이었다.
내가 느낀 것은 빙산의 일각이자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어찌 되었든 이런 현대무용의 전설로 남은 피나라는 사람은 어떤 무대를 쓰고 싶어 했고 어떻게 제작에 참여했는지 궁금했다. 또 그녀와 함께 일한 무대 감독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페터 팝스트가 바라본 피나와 그녀의 무대는 무엇인지도.
자연 소재가 특히 많았다.
인조적인 소품들은 하늘하늘 거리는 실크 같은 소재의 커튼들과 댄서의 셔츠, 댄서들이 밟고 올라가는 수많은 공사장 벽돌들, 그리고 권총 정도?
나머지는
비
바다표범 (인형인지 실제인지는 모르겠다.)
아기 사슴 인형
장미, 꽃밭
호피 무늬의 프로젝션 영상
공연장 뒷면을 가득 메우는 암벽
유려한 곡선을 가진 커다란 바위, 바위와 마주 보며 흐르는 강물같이 춤추는 댄서의 셔츠 주름
물고기 영상 - Pina는 물고기와 함께 춤추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아쉽게 도슨트 시간을 놓쳤지만, 설명을 들었던 동행을 통해 짧게나마 전해 들었다. 내용은 블로그에서 가져온 아래 글과 유사하다.
독일 출신의 안무가 피나 바우쉬(1940-2009)는 파격적인 작품들로 동시대 무용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노래나 곡예, 연극 등과 춤의 결합을 최초로 시도했고, 이를 통해 이른바 ‘탄츠테아터(무용극, Tanztheater)’라는 새로운 무대 형태를 창조했다. 당시 바우쉬의 슬로건은 “나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보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큰 관심이 있다”였다.
무대와 오브제들이 어떻게 무용수들을 변화시키고 자극하는지, 그 환경 안에서 어떤 새로움이 펼쳐지는지 지켜보는 것. 리액션과 액션을 이야기하다 보니, 일본 야마구치현에 위치한 기술+예술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는 YCAM의 RAM (dance+tech) 캠프 생각도 났다. RAM 캠프에서는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댄서에게 어떤 제약적인 환경이나 외부의 자극을 제공하고, 댄서는 그것에 반응하면서 새로운 움직임과 춤을 창조해 낸다.
사실 예술과 기술을 자꾸 혼합하다 보면, 이것이 기술을 위한 작품인지 예술을 위한 작품인지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생긴다. '춤(이든 무엇이든 순수 예술) 자체에 이렇게 뭘 막 섞어도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거야?'라는 조심스러운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피나와 YCAM 같은 approach를 보다 보면, 어떤 restriction이나 complement가 생기는 것이 무언가를 망치는 것은 아니라고 다시금 고찰하게 된다.
리액션과 액션, 기술과 예술... 그러다 동행이 불현듯 말했다. '피나와 페터도 그런 관계가 아니었을까?'
피크닉에서 미술 주간 기념으로 진행하는 인스타그램 이벤트에 참여하면 포스터를 주었다. 4가지 색의 포스터 중 무엇을 고를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특히, Green과 Pink 중에서 망설였다. 초록색은 평소에 좋아하는 색이고, Pink는 박효신 LOVERS 콘서트 이후로 좋아하게 된 색이었다.
Green은 옥상에 깔려있던 잔디였고, 피나와 페터의 quote들이 적힌 하얀 천들이 나풀거리던 작품이었다.
Pink는 옥상 바로 전 3층을 한가득 채웠던, 꽃밭에서 영감 받아 탄생한 '카네이션 위로하기' 작품이었다.
색감으로는 Green이 당겼지만 Pink도 만만찮게 이뻤다. 사실 지금도 Green으로 바꿀까 고민 중이긴 하지만, 이 전시에서 기억에 남은 피나x페터의 대화가 Pink였기에 그 날 마지막 순간에 결국 Pink 포스터를 골랐다.
페터: '무대에 처음 꽃을 심었을 때,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무용수들이 춤을 추자 꽃들이 부러져버렸다'
내가 직접 전시 공간을 걸으면서도 실감했다. 조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아예 꺾여서 누워버리는 꽃들에 나도 모르게 움찔움찔했다.
하지만 피나는 말했다. '우리가 카네이션을 위로하는 장면을 만들면 되죠.' 그 말은 구부러진 꽃을 다시 곧게 세운다는 뜻이었다.
나는 아직도 Green으로 바꿀까 고민 중이다. 그렇지만 피나의 정신이 담긴 저 말 한마디가 너무 강력해서 포스터를 보며 그 위로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처음에는 피나 바우쉬의 전시가 아니라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녀를 제삼자, 아니 작업 파트너로서, 어쩌면 가장 가까이서 그녀를 바라보고 이해했을 페터 팝스트였다. 그의 눈과 작품으로 피나 바우쉬를 알게 되는 것은 새로운 perspective 였다.
동시에, 다른 예술가와 일하면서 자신의 세계까지도 구축한 페터 팝스트의 작품들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전시를 보면서 이런 작업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참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옥상에서 천막에 새겨진 수많은 글귀들을 보며 멋있다는 말이 여러 번 절로 나왔다. 피나와 페터의 작업 과정은 눈치게임 가득한 탐색전, 직관과 순수함의 구현, 도전과 영감의 포착처럼 보였다.
무대 디자이너의 일은 예술적 관점과 기술적 관점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I think in my mind I draw a distinction between two aspects of my work as a stage designer.
우선 예술적 관점, 즉 콘셉트로서의 디자인은 대부분 본능적인 직감에서 나온다. 처음부터 기술적인 부분을 고려하면 두려움이 앞서서 자유롭게 꿈꿀 용기가 사라질 것이다. There is, first and foremost, the artistic aspects, the concept which I most often draw from my own gut instinct. If I already began to think about the technical consequences in the midst of this early phase, then I would be utterly dismayed, so much so that would no longer have the courage necessary to dream.
피크닉: http://piknic.kr/index.php/exhibition-category/current/
또 다른 info 링크: https://www.indiepost.co.kr/post/9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