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친해질 수 있을까
나는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핸드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건데
상대방에게는 너무 낯선 이야기.
이전의 나는 그런 답답한 상황이 오면
상대를 판단하고 핀잔을 주고 짜증을 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냥 지켜보고 ‘그럴 수 있지’ 정도의
마음으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상대방이 잘 못 받아들이는데 애써 가르치려고 하는 건 나한테도 너무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에 서로 좋을 게 없다)
할머니나 엄마가 기계에 서툰 모습을 보일때 그러하다.
이제는 나한테 직접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그냥 옆에서 지켜본다.
약간 연구대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나와 다르게 기계가 익숙치 않은 할머니는
핸드폰에 어떻게 반응할까-
올해 미국에 사는 사촌이 아기를 낳아서
매주 매달 아기 비디오를 엄마 카톡으로 보내온다.
그러면 할머니는 그 영상을
쇼파에 앉아서, 식탁에 앉아서
스무번 넘게 돌려본다.
이제는 재생 버튼을 클릭해야
영상이 나온다는 걸 습득한 것 같다.
까르르 웃다가도 영상이 멈추면
손가락에 힘을 바짝 주어 재생버튼을 꾹꾹 누른다.
우리가 가볍게 터치하듯 누르는 게 아니라
마치 리모콘을 누르는 듯 하다. 귀엽다 ㅋㅋ
티비나 핸드폰에서 영상이 나오면
‘저 사람 지금 저러고 있는 거야?’ 물어보곤 했다.
녹화와 라이브를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래도 이제는 아기 영상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다른 시공간이라는 걸 좀 더 체득한 것 같다.
그래도 재미있는 것은
같은 영상을 수십번 보면서도,
웃긴 장면에 계속 웃고
같은 잔소리도 계속 육성으로 한다는 것.
당사자들은 이 집에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ㅋㅋ
전화도 아닌 그냥 녹화 영상을
인터렉티브하게 만들어내는 할머니의 손주 사랑인가
할머니는 아기를 보기 위해,
미국의 가족들과 통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체득하고 있다.
딱 할머니가 필요한 만큼 자연스럽게 말이다.
기계와 친해지는 건 할머니에게도
옵션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다.
다행인 것은 억지로 가르친 게 아니라
본인이 즐겁기 위해 알아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