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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반려 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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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Feb 28. 2019

악보 읽기

반려 첼로 3

어제 레벨 테스트를 봤다. 수능 이후로 영어 시험은 처음이었다. 1월에 온라인 연수로 토플 맛보기를 신청해놓고 1강도 못 듣고 수강기간이 끝났다. 영어 공인 시험은 어떤 식으로 출제되는지 경향을 파악하고 싶었으나 아까운 돈만 날렸다!


아... 미세먼지가 뭐였던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본 하늘이 너무 파랗다. 눈이 시려서 자꾸 껌벅거렸다. 겨울바람에 눈물이 자주 나는 편이니까. 버스를 타도 눈이 시리다. 걸어오는 길은 안전한 길 말고 숲 옆길을 택했다. 겨울 숲을 보면서, 이 길이 나의 하굣길이 된다면 이 숲의 사계절과 안녕을 나누고 싶어 졌다. (집에 오자마자 홈스테이 연장을 알아보았다.)

“울었어요?”

“...... 울.었.죠.”

아끼는 동료가 중국에 있다. 같은 날에 그 친구는 중국으로 한국 국제학교에 갔고, 나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왔다. 서로 준비하다가 막히면 넋두리와 꿈을 다졌으므로 첫 주말에 아이폰 유저로서 페이스 오디오로 통화를 했다. 작고 작은 것들에 맘이 자꾸 들썩이니까 힘들었나 보다. 그러려니 하고 무심결에 물었는데, 잠깐 정적이 일더니 또박또박 말한다, 울.었.죠. 해외 체류 첫 경험이라 그런다며 괜찮다, 괜찮다 위로를 건넸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상대방에게 건네는 위안 인지도 모를 문장들이 오가고 끊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캐슬린에게 시험을 얘기하다가 누구랑 억울하게 싸우다 온 사람처럼 엉엉 울었다. 아니 모국어도 아니고 제2 외국어이면서 그러냐, 처음 본 시험이지 않냐, 최선을 다한 거면 결과는 연연하지 마라, 인생이 그렇지 두 발 앞으로 가는 거 같아도 두 발 뒤로 가기도 하는 거지... 앞으로 인터넷도 핸드폰도 책도 음악도 영어로만 해라 그러면 금방 늘 거다(는데 지금도 한국어로 쓰고 있다), 그래도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라 엄마 걱정하신다... 등등 어르고 달래주어도 자꾸만 내 맘을 쓰다듬기가 어려웠다.


오늘은 오타와 시내에 리도 운하(Rideau Canal)가 7.8km 스케이트장이 된 걸 구경하러 가고 싶었다. 오전이면 오겠지 아무렴~ 시험 결과 메일을 받고 싶어서 기다리다가 꼼짝도 못 했다. 지하에 내려가서 손빨래를 하고, 한글 페북도 그만 보려고 영어책을 좀 보다가 그것도 안 들어와서 첼로 악보를 읽었다.


따뜻한 물을 좀 마시려고 내려간 김에, 캐슬린한테 의자가 엉덩이 부분이 움푹 들어가서 허리가 아파 앉기 힘드니 바꾸고 싶다고 부탁을 드렸다. 편평한 의자 없으니까 베개를 대란다. 그렇게 했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대꾸했더니, 집에 그런 의자 없다고 그러는데... 뜬금없이 눈물이 나서 알았다고 말하고 방에 올라왔다.

간밤에 잠이 깨서 오랜 시간을 차갑게 누워있다가 핫팩에 따뜻한 물을 바꿔 담고 잤다. 오늘밤마저 내 맘을 춥게 놔두지 않으련다. 친구가 종이별 속에 넣으면 반짝거린다고 선물해줬던 미니 전구를 꺼내서 별을 만들었다.

캐슬린이 돌봐주는 캘랩이 가고, 저녁 먹고, 병원에 예약한 시간에 맞춰 가기에도 늦었는데 내 방을 두드린다. 문을 열었더니 본인 방에서 쓰던 의자를 내주고 내 의자를 빼간다. 교회 갔다가 밤늦게 온다길래 내일 아침에 보자 했더니 일찍 잘 거냐고.. 오늘은 감정의 결 사이사이를 바라보는 게 피로해서 자기 전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어서 “아마도..”라고 말했다. 현관문 안에서 차고에서 차가 뒷걸음질로 나와 가는 걸 보는데 캐슬린도 문 안에 있는 나를 한번 보고 차를 돌린다.


악보나 읽어야지, 미파미파 미파솔라 시도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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