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들으면 자던 내가 한밤중에 글쓰기 숙제를 하면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듣고 있다. 악기라면 기껏해야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잠깐 불어본 리코더가 전부인 내가 악기의 기본이라는 피아노도 배우지 않고 첼로를 선택하여 가까이한 건 2년 전부터다.
추석 연휴 때 다섯 언니가 시골에 오면 집 앞에 줄줄이 주차를 한다. 우리집은 동네 끝집이라 마당 앞에 길이 하나이다. 먼저 온 사람이 잠깐 읍내에 나가게 되더라도 다섯 대가 모두 빼야 하고 다시 또 차곡차곡 주차를 한다. 그게 번거롭고 귀찮아서 미리 마을회관 공터에 주차를 하기로 맘먹었다. 차를 세우면서 정자 옆에 있는 유모차를 보았다. 버려진 것인지 놓아둔 것인지 아리송해서 정자 유리문을 기웃거려보았다. 우리집과 반대편 끝집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혼자 화투짝을 맞추고 계셨다. 할머니께서 걸으실 때 의지하며 밀고 다니시는 유모차였나 보다.
나는 집에 와서 아침에 부쳤던 전이랑 도토리묵, 송편, 식혜를 쟁반에 담았다. 집을 나서는 내 뒤통수에 엄마는 한소리 하셨다. “그 콧대 높고 고집 센 양반이 먹나 봐라. 헛수고 말아라.” 봄 생신 때 면사무소에서도, 중학교에서도 100세 어르신께 방문하여 축하와 공연을 하고 갔을 때에도 음식 하나 입에 안 댄 분이라고 하셨다. 자식도 남편도 없이 홀로 지내시는 분께서 오죽 적적하셨으면 이 북적북적한 명절에 정자에서 혼자놀이를 하셨을까. 정자에 올라 쟁반을 할머니 앞에 놓아드렸다. “할머니, 추석이어서 만들었어요. 드셔보세요.”.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숟가락을 들고 묵을 한 점 드시더니 식혜를 마시셨다. “니가 누구냐, 소주리댁 막내냐? 아이고, 많이 컸다. 고맙다, 맛있게 잘 먹었다.” 할머니는 소매를 끌어당겨 입가를 닦으시고 쟁반을 미셨다.
그 즈음에 나는 필리핀 해외 봉사활동을 마치고 와서 생활 변화의 괴리감에도 바득바득 버티고 있었다. 나에게 팍팍한 외로움이 몰려왔는지, 할머니의 모습에 싱글인 내 미래가 투영되어서 그랬던 것인지 집에 오는 길에 눈물이 났다. 나는 품위 있고 유쾌한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어렸을 때 보았던 당당하고 기품 있던 귀둥할머니조차 초라하고 궁색하게 명절을 맞고 계시니 그 처지가 서글프고 속상했다.
그때부터였다. 나이 들어가면서 소중한 가족과 벗들이 나와 함께 하지 못하는 그 흔한 순간들을 나는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자존을 지키며 무위의 시간에 나를 어루만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마구 쏟아졌다. 내가 할머니이면 분명 나보다 먼저 간 사람들도 있을 테고, 아무리 깊은 친밀감이 있는 관계라 하더라도 먼 거리를 자주 오갈만큼 몸과 컨디션이 가뿐하지도 않을 테다. 희옥이 할머니가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씻고 누울 때까지의 일상을 그려보았다. 모닝 커피 한 잔을 내려 햇살 좋은 데에서 마시며 날아다니는 참새들에게 안부를 건네겠네! 테라스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책 읽다가 졸기도 하겠군. 세이브더칠드런의 ‘신생아 모자뜨기’에 동참해서 뜨개질은 할 테야, 치매 예방도 된다잖아? 동네 책방에 가서 신간 그림책을 보고 맘에 든 것을 사뒀다가 주말에 카페에서 어린이들에게 읽어주면 좋겠다. 그때도 일기를 쓸까? 산책하기 좋은 계절에는 미술관 큐레이터로 어린이들을 만나고 싶은데 아이들은 젊고 빠른 청년들을 선호하겠지? 그때도 털 알레르기는 있을 테니 키우지는 못하고, 길고양이들에게 밥 챙겨주며 눈키스도 나누고 털을 부비며 어루만지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자그마한 꽃밭을 가꿀까? 이런저런 말풍선을 보태도 허전했다. 내 영혼을 풍성하게 살리는 취미로 무엇이 있을까?
연휴 마지막 날 만난 친구에게서 그 대답을 찾았다. 친구는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20년 동안 했고 바이올린을 6년 동안 배우고 있다. “악기는 연애같은 밀당이 없어.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고스란히 다 남아. 포기만 안하면 다 할 수 있어. 딱 10년만 해봐.” 인생을 사람과 함께 하면 반려자, 동물과 함께 하면 반려 동물, 식물과 함께 하면 반려 식물. 그러니까 나는 악기와 함께 하는 생을 그리고 싶으니 반려 악기를 찾아보기로 했다. 폐활량이 적어 긴 호흡이 어려우니까 관악기는 어렵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고음 음색을 오래 들으면 귀가 쉽게 피로해져서 패스. 기타는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내 끈기를 믿을 수 없다. 저녁에 피곤하면 묵직한 김민기 아저씨의 노래를 듣곤 했다. 낮은 목소리가 주는 편안함과 뭔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중저음의 현악기이면 어떨까? 문학수 씨가 클래식 음악과 작곡가를 소개한 ‘더 클래식’ 책을 참고해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피에르 푸르니에가 연주한 음반을 샀다. CD는 1번과 2번이 있어서 하나는 차에서 출퇴근 시간에 듣고 하나는 집에서 내내 들어보았다. 보통 첼로는 단독으로 연주되지 않고 피아노나 바이올린과 협주되어서 배경처럼 밑에 깔아주던데, 이 음반은 첼로로만 연주하였어도 듣고 또 들어도 물리지 않고 어둡지 않아서 매력적이었다. 친구네 바이올린 레슨 샘의 동생이 첼로 전공을 했다기에 소개 받아서 시작하기로 했다.
심사숙고하여 선택한 악기였지만 악기값이 월급의 반절이라 간이 쪼그라들었고, 생전 처음 보는 낮은음자리표는 음계 위치도 달라서 생소했다. 레슨은 10분에 만원이니 매주 50분 1회만으로도 한 달 꼬박꼬박 레슨비 지출도 부담스러웠다.
악기는 레슨샘이 악기사에서 사왔다. 검정 천가방의 지퍼를 열고 햇볕 품은 나무 색깔의 첼로를 꺼내셨다. 두 발을 벌리고 그 사이에 첼로를 끼워 세우고 내 왼쪽 가슴에 몸통을 기댔다. 오른손가락을 갈퀴처럼 벌려서 활을 잡고 현을 반듯하게 그어보았다. 낮지만 맑고 무겁지만 환한 소리의 떨림이 내 심장에도 전해오니 팔에서 소름이 돋았다. 도. 솔. 레. 라. 왼쪽의 가장 굵은 줄부터 하나씩 활을 대고 오른 검지로 살짝 누르면서 공기 중에 평행한 선을 그으며 자세 연습을 했다. 낮은음자리표 악보를 읽을 줄 몰라서 입말이 자꾸 틀렸고, 레슨샘 앞에서 첼로를 켜는 게 민망하고 자신이 없어서 팔이 바들바들 떨었다. 힘을 너무 많이 주면 금방 힘 빠져서 쉬어야 했고, 레슨샘이 가시면 지쳐서 방바닥에 발라당 누워 어깨를 주물렀다.
집에 어린 가족이 있어서 퇴근 후 곧장 집에 가려하는 직장인들처럼 나도 저녁시간이 중요해졌다, 우리집에는 첼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첼로를 연습하면 바닥에서 진동이 커서 카펫을 깔아야 아래층에 피해를 주지 않고, 늦은 시각에 연습을 하면 일찍 자는 앞집 아기가 순조롭게 못 자니까 늦어도 8시 이전에는 연습을 마쳐야 한다. 오후 출장이 늦게 끝나거나 저녁 식사까지 이어지면 그날은 30분 일찍 출근해서 교실에서 연습했다. 연습이 잘 되지 않더라도 내 가슴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끼다보면 내 몸도 악기가 되는 거 같고 하고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뿌듯했다.
학생들의 생일마다 생일축하 노래를 연주해줬다. 비록 바들바들 떨고 중간에 찍찍 소리가 났지만, 같이 웃고 넘겼다. 주말에 엄마한테 가면 일부러 엄마가 아는 섬집아기나 고향의 봄 악보를 챙겨가서 들려준다. 기법을 연습할 때는 도대체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더니 아는 곳이 나오니 이제야 첼로 맛을 느끼겠다고 하셨다. 가끔은 피곤해서 첼로를 두고 시골에 그냥 가면 엄마가 왜 안 가져 왔냐고 물으신다. 바이올린 배우는 친구에게 피노키오를 녹음해서 보냈더니, 그 파일에 피아노 반주를 덧입혀 보내왔다. 카페에서 나눈 긴긴 수다와는 다른 결의 공감대가 새롭고 뭉클했다. 지난 추석에는 가족들 앞에서 동요 몇 곡을 연주했다. 피아노를 배우는 조카랑 기타를 배우는 조카가 듣더니 다음에는 한 곡을 같이 연주해보자고 하였다. 각자의 일상에서 연습해보고 가족들이 모였을 때 작은 음악회로 합주해보는 것. 생각만으로도 벅차고 설렌다.
요즘은 연습을 자주 못한다. 집에 오면 피곤해서 씻고 밥도 거른 채 누워있고 싶다. 분명히 같은 악기인데도 레슨샘이 시범보일 때랑 내가 연습할 때 음색이 다르다. 내 첼로도 좋은 소리가 나는 악기구나 싶어서 다행이다. 한편으로는 난 언제 이렇게 깊고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싶어서 한숨이 나기도 한다. 출퇴근할 때도 영어 연수를 듣느라 음악은 뒷전이다.
내년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려고 준비 중이다. 하드케이스가 100만원이라니 살 엄두도 안 난다. 그러니 첼로를 들고 갈 수도 없다. 첼로는 레슨샘한테 맡기면 본인이 교회 성가대 반주할 때 사용하면서 악기 길을 좀 들여주겠다고 했다. 이제 1포지션 끝날 초보라 1년 쉬면 다시 도로묵일 텐데, 레슨 책만 들고 가서 첼로를 중고라도 사서 혼자 연습을 하면 어떨까? 그러면 조율은 누가 해주지? 어학비도 홈스테이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거기까지 가서 첼로 레슨을 받을 수 있으려나?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한 반려 악기이건만, 그간 쏟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고민이다.
이 밤만큼 깊은 소리를 내는 첼로와 맑고 청량한 피아노가 어울려서 서로를 보듬거나 대화하듯 어우러지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를 들으면 맘이 아리기도 하고 풍성해지기도 한다. 매번 그렇듯 듣다보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무사히 첼로를 켜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