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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라 Aug 12. 2023

착한 며느리병 투병기. 00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 착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상황에 좌지우지되며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다.

또한 학습의 동물이다.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에 따라 행동양식이 각각 다르다.


나라를 먹여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하고

국가와 단체에 헌신하는 게 당연했던 시기를 지나

빠르게 이룬 풍요 속에서 개개인을 주목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인구는 줄었고 돈을 벌고 있는 2030대들과

막 자라나는 아이들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면서

묻혀있던 악습들이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윗세대의 무지와 잘못된 교육

무너진 가정으로 인해 현세대가 겪는 고통에 주목한다.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은 지금의 3040, 샌드위치 세대는 윗세대를 따르지도 못하고 아랫세대를 공감하지도 못하는 불쌍한 세대가 되었다.

나라가 챙겨주지도 않아서 지 밥줄 지가 챙겨야 하는

세대.

그래서 3040대 남녀 엄마 아빠들은 이다지도 상처가 많은가 보다.


사회가 주목하는 여러 가지 현상 중에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거절을 못하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떠날까 봐,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우리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착한 직장인, 착한 친구, 착한 아내로 성장했다.

그중에 한 명이 나다.


나의 착한 며느리병은 심각했다.

사람은 그릇대로 착해야 한다.

그리고 내 밥그릇은 챙겨야 한다.

나를 갉아먹고 아파가면서까지 착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착한 것도 아니다.

바보 같은 것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남편과의 연애시절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에게만은 아주 못된 시어머니였다.

외부에선 아주 좋은 분이고 많은 남편의 친구들이

엄마라고 부르며 따랐지만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여기며 무례히 행하고

선을 넘는 부탁을 매번 하셨다.

그 덕에 나는 남편을 제치고 집안의 기둥이 되었다.


그러나 이방인인 며느리가 남의 집 기둥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좋지도 않은 일이다.

며느리는 어디까지나 외부인이며 그들을 가족같이 대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것을 동서를 보며 배웠다.

그래도 되는 것이란 걸.


어머니는 동서가 다녀가면 약 한 달간 동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셨다.

한 번은 동서가 나에게 어머님이 내 뒷담을 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미안하지만 동서에게만 한 것도 아님을 이미 알고 있으며

동서의 뒷담을 365일 중 200일은 들어왔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매번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동서를 욕하시면서도

동서 앞에선 말 한마디 험하게 못하시는 분이

내 시어머니였다.


내가 동서처럼 했다면 나라고 달랐을까?

지금의 상황은 내가 만든 것이다.


나는 때때로 무례한 시어머니와 싸워야 했으나 상처받는 나를 방치하며 그래야 마땅한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선을 넘는 부탁을 하실 때마다 나의 사정보다 그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탁들을 받아들였고 해내었다.


외부적으로 나는 정말 대단한 며느리였다.

그러나 죽고 싶었고 우울증은 대단히 깊어졌으며

시댁일 빼면 싸울 일 없는 다정한 남편과도 감정의 골이 매우 깊었다.

이 또한 큰아들을 자신의 남편을 제치고 과도하게 의존하며 살아오셨던 어머니의 무지와 남편을 향한 조용한 학대를 남편이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여기며 살았던 사람이라 그랬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 사는 사람.

그를 위해 했다고 했지만 그를 위해서 더더욱 그러지 말아야 했음을 이제와 깨닫는다.



사람은 불편감을 느끼면 그것을 인지하고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그래서 독재국가인 북한에 아직까지 단 한 번의 쿠데타도 없고

중국은 자신의 나라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한 것.

아주 좋다. 좋은 얘기다.

그러나 상대방이 서로에게 어느 정도 불편감을 느껴야

배려할 수 있다는 것.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엔 유독 지독한 고부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근데 사실 고부갈등은 전 세계가 겪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부갈등은 더욱 은밀하고

사회적 치장으로 덮여 있기에 타국에 비해 지독하다.

그렇기에 더욱 드러내야 한다.


우리 어머니는 자신의 시어머니가 얼마나 지독하신지

만날 때마다 이야기하셨다.

경상도 분이라 말투도 험악하고 늘 독불장군처럼 구셨다며 말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서울분이라 교양 있는 척 상대방을 교묘하게 웃음거리고 만드는 것을 잘하시고  자신의 평판에 예민하셔서 다행히 주변에서 큰며느리 같은 아이가 없다며 치켜줄 때에야 나를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것을 못마땅해하시고 자격지심을 늘 느끼셨다. 큰 아들의 옆자리엔 늘 자신이 있고 싶어 하셨다.


남편과 어머니의 관계는 애틋하며 비정상적이다. 남편은 정상적인 어머니와의 관계를 모르기에 내가 어머니에 대해 힘들다며 토로하면 그러면 엄마랑 인연을 끊으라는 거냐며 노발대발하곤 했다.


인연을 끊지 않더라도 남편은 어머님보다 나와 아이를 우선에 두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처음엔 그가 독립하길 바랐다.

내가 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을 그만두고

살기 위해 착한 며느리의 가면을 내려놓았을 때에야

남편은 자신을 들여다보며 자신 안의 고장 난 부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다음페이지는 이전세대들과는 다를 것이다.

남편은 나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또한도 그와 가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착한 며느리의 가면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매일 애써도 돌고 돌아 들어온 뒷담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스러워질 수 없었던 나날들.

원래 시어머니에게 며느리는 내 아들 뺏어간 나쁜 년이다.

그래서 그냥 나쁜 년이 되어보기로 했다.


죽지 않기 위해.

나를 죽이는 착한 짓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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