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케터 로스코 Dec 21. 2018

짙은 그림들, 서른을 앞두고 펜촉을 잡다.

농익어 가는 나 자신의 색깔이 짙게 담긴 그림들

Just Do It

어느 한 의류 브랜드의 슬로건이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고민을 제치고, ‘그냥 해 봐’라는 말을 건넨다. 이 말 한마디에 현대인들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본 마케팅 담당자의 ‘기똥찬’ 브랜딩 전략이다.


그 ‘현대인’에 귀속된 나도 Just Do It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보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실행력이 부족해 마음속에 쌓아 놓은 위시리스트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을 마음속으로 헤아리고 있자면, 실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서른을 바라보게 되었다.


십여 년 동안 별다르게 이룬 것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스스로에게 볼멘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재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머릿속을 맴돌던 Just Do It을 떨쳐낼 수 없었고, 움츠러들었던 내 실행력이 처음 팔을 걷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무엇인가 시작하기 전에 멈칫하게 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 그래서 어떤 것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과 고민만 거듭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일수다. 그런 점에 있어 Just Do It이 나에게는 참 반가운 말이다. 이참에 침대 머리맡에 써서 붙여 놓을까?


나만의 색깔을 입힌 그림

본투비’홍대병’인 나는 어릴 때부터 천편일률적인 것들을 피했다. 그 예로 ‘동방신기’가 있었고, ‘스키니 진’이 있었다. 남들이 좋아하니까, 남들이 하니까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유별난 것도 아니지만, 나의 취향은 레드오션이 아닌 퍼플오션 그 어디쯤에 표류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냥 그려보기로 한 그림이지만 공장에서 찍어내는 그림과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직접 맞선 창작의 세계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사실 나와 같이 그림을 그리는 일반인들이라면, 별다른 준비물이 없어도 된다고 귀띔해주고 싶다. 나조차도 멋들어진 미술 도구들로 중무장하고 있지는 않다. 심지어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색연필 몇 가지는 분실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놀라웠다. 첫 째 생각보다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서였고, 둘째로는 첫걸음을 떼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습관처럼 그리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역시 Just Do It!

창가에 놓인 벗, 꽃


몰입,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그림을 그리면서 새롭게 얻은 것은 ‘몰입’의 즐거움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잡음이 많던 머릿속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지고 오로지 모든 감각은 손끝으로 쏠렸다. 그림 그리기를 끝마친 이후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성취감, 해방감이 찾아왔다.

struggling

피터 드러커 경영 대학교수 및 ‘삶의 질 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어떻게 사람들의 삶이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를 담아 FLow, 이른바 ‘몰입,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Flow(플로우)란 행위에 깊게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변화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는 심리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쉽게 말해 완벽한 심리적 몰입을 뜻한다. 내가 그림을 그린 후 느끼던 성취감과 해방감도 이 심리적 몰입을 통해 온 것일 터. 한글로 옮겨지며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미치도록(?) 행복한지는 의뭉스러운 나에게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Hey, where are you heading for?

가볍게 시작한 낙서의 개념이 일상에 행복을 가져다준다니 ‘삶’에 대한 애티튜드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 어림잡아 보게 된다. 행복은 역시 먼발치에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소확행


지금은 지나가다 문득 들른 이름 모를 상점에서 구입한 드로잉 북에 미국 보스턴 지방의 어느 와이너리에서 기념으로 받은 싸구려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일러스트 파일로 저장하는 것이 내 중장기 목표이다. 주변에서 벌써 굿즈로 만들어서 판매하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리고 있지만, 당분간은 ‘심리적 몰입’을 위한 자기만족의 매개체로 활용할 예정이다.


짙은 그림을 그릴 테야, 나만의 색이 짙은

꽃향기

나라는 사람과 내가 창조하는 것들, 그리고 내가 영유하는 것들로 구성된 나만의 바코드가 생성된다. 서른을 앞둔 나의 바코드는 어떤 모양일까? 분명한 것은 나의 바코드는 내 취향처럼 나만의 색, 아이덴티티가 짙을 것이다.


지난 십 년간 나의 색을 내려놓고 날카로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내게 어울리는 색을 찾기 급급했었던 것과 달리, 서른을 터닝포인트로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집중하려 한다. 그리고 그 길을 개척하는 툴로써 그림은 내게 큰 일조를 할 것이다.


이제 위시리스트를 다시 들여다볼 테다. 다음 차례는 무엇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