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 IS MORE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기기들이 끊임없이 출시되고, 건축물의 층고는 점점 높아져만 간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브랜드가 탄생하고 사라지는 현대 사회에서, 수평적으로나 수직적으로나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삶의 흐름에 사람들이 이골이라도 난 것일까? 삶을 단순화하기 위한 미니멀리즘이 언제부터인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니멀리즘을 온전히 피부로 체감한 것은 2016년 어느 한 여름 시침이 오후 12시를 가리켰을 때였다. 운 좋게도 당시 나는 근무하던 회사가 교보타워에 입주하고 있어, 지하에 어마어마한 책 물량을 자랑하는 교보문고를 수시로 드나들 수 있었다. 그 기회를 만끽하기 위해 점심시간에 종종 서점에 들러 시간을 때우곤 했는데, 수백, 수천 권의 책들 중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책이 한 권 있었다. 바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였다.
'단순'이라는 키워드에 눈길을 빼앗긴 나는, 그 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책의 주요 내용은 일본에 사는 저자가 집 안에 있는 물건들과 소지품들을 최소한으로 줄였을 때 찾아오는 나름의 심리적 만족감과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 책을 읽고 저자가 알려준 팁을 응용해 보겠다며 대청소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9년 늦겨울, 어쩐지 지금도 '미니멀리즘' 열풍은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법정 스님이 그토록 역설하던 '무소유'와 에리히 프롬의 '존재 양식'이 이제야 현대인들의 심금을 울린 것일까?
이런 결과를 초래한 환경과 사람들의 니즈를 골몰히 분석해보며,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브랜드들을 떠올려봤다.
브랜드 네이밍부터 콘셉트까지 확실하게 줄이고 줄인 브랜드가 있다. 신세계의 PB상품인 'No Brand'가 그것이다. 그들은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라는 캐치 프레이즈로 범람하는 브랜드 메시지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브랜드가 없는 것이 브랜드인 '노 브랜드'의 브랜드 철학으로 노 브랜드를 구매하는 소비자 스스로 '스마트 컨슈머'라고 느끼게 한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며 소비 행태가 실용성을 강화하는 측면으로 변화하고 가격 경쟁이 과열되는 시장에서 가성비를 내세운 제품으로 인기몰이를 하며,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노 브랜드'는 꾸준히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 또 다른 미니멀 브랜드가 있다. '공백(0100)'은 블랭크코퍼레이션의 PB상품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브랜드 가치를 설파한다.
모던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으로 새로운 클린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고 무엇이든 비울 수 있는 당신의 공간, 그 공간의 가치를 만듭니다.
(출처 : 블랭크코퍼레이션)
공백의 제품은 실용적이고 가성비 높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 하나의 세제로 접시부터 과일까지'라는 주방 세제의 카피라이트에서 우리는 공백이 가져올 생활의 편리함과, 덩달아 공간의 효율화까지 상상해볼 수 있다. 여백의 미로 '공백'이라는 브랜딩을 그대로 옮겨 닮는 패키지 디자인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
COS(코스)는 H&M의 컨템포러리 브랜드이며 국내에는 2014년도에 진출했다. 코스의 매니징 디렉터인 마리혼다는 코스의 브랜드 DNA에 대해 '영속성(Timeless), 현대적임(Modernity), 기능성(Functionality), 촉감(Tactility)'와 같은 네 가지를 강조했다. 이들이 주목한 주요 소비자 층의 특징으로는 다 분야에 관심이 많고, 특히 패션, 아트에 흥미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코스는 지속적인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패션 디자인 외에 매장 건축 디자인에도 브랜드 DNA를 옮겨 심는다.
COS에 무엇인가가 있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마리혼다의 말에서 나는 또 다른 미니멀리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수불가결하지 않는 것은 빼겠다는 의지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소비자이 COS를 미니멀리즘 브랜드라고 칭한다.
꼭 필요한 것만, 이유가 있는 것만 디자인 요소를 브랜드 철학에 맞춰 가차 없이 가감하는 코스의 애티튜드에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그에 코스는 아시아 최초로 국내에 온라인 매장을 오픈하는 등, 한국 시장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제껏 애플의 디스플레이 제품들은 새롭게 출시될 때마다 점점 얇아지는 베젤과 넓어지는 디스플레이 등 기술 혁신으로 세간의 귀추가 주목되어 왔다. 더 편리한, 더 간단한, 더 미니멀한 제품 디자인과 스펙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이어폰 단자와 홈버튼을 제거한 변화에는 소비자의 반응이 호불호로 극명하게 갈렸다. 이어폰 단자가 사라진 대신 'AirPods'가 탄생했고, 홈버튼을 제거한 대신 'Face ID'로 대체했다.
Use Face ID to unlock your iPad Pro, log in to apps, and pay with a glance.
애플의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는 아이폰 X에 홈버튼이 폐지되고 Face ID가 도입된 것에 대해 '향후 스마트폰 기기와 사용자의 물리적 접촉이 최소화되는 것은 물론, 디자인을 최소화해 사용자에게 콘텐츠를 최적화하여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Face ID'로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기기에 접속하고, 앱에 로그인하며 결제까지 이루어지는 UX(User Experience)의 간소화만 보아도, 추후 IT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해서 삶의 방식이 바뀔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오늘도 소비자들을 향해 브랜드들이 던지는 러브콜은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던져지고 있다. 브랜드 본질의 정수(Essence)만 간결히 담아 '가치, 디자인, UX'를 미니멀라이즈하는 브랜드 마케터들의 노력이 더 가중될 것이다.
10년 뒤 이 브랜드들의 '미니멀리즘'은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될까? 이들이 한 목소리로 내는 'Less Is More'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