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4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민 Nov 30. 2021

우리에게 "거침없이" 떠오르는 시트콤

<다큐 플렉스-청춘 다큐 거침없이 하이킥>

 소중한 휴식 시간을 더 확실하게 즐기고 싶은 마음에 안정적인 선택을 할 때가 있다. 특히 수많은 작품이 아카이빙 되어 있는 요즘, 무엇 하나 선정하는 데도 금세 피로감을 느끼고 ‘이게 과연 휴식인가’를 돌아보는 경우가 잦다. 그럴 때면 과거에 좋아했던 것을 기웃거린다. 첫술을 뜨면서도, 즐겨 봤던 시트콤과 예능을 틀어놓는다. 같은 것을 보고 또 보다가 내용과 대사를 읊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이, 내게 그중 하나다. 본방송을 챙기던 2006년을 지나, 재방송과 VOD로 시청한 때를 넘어, OTT 서비스로 하이킥을 보는 2021년이 되었다. 간혹 바래지기는 했어도 장장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게 사라진 적은 없는 하이킥 시리즈를 보면 처음 본 듯 재밌고, 언제든 뭉클한 데가 있다.

 이러한 하이킥을, MBC 다큐멘터리 <다큐 플렉스-청춘 다큐 거침없이 하이킥>가 소환했다. <다큐 플렉스>는 이전 <커피프린스 1호점>, <전원일기>를 다루었듯, 반가운 얼굴들을 한데 모았다. 극 중 가족이었던 ‘이순재’·‘나문희’·‘정준하’·‘박혜미’, 그리고 이민호와 이윤호 역을 맡았던, ‘김혜성’과 ‘정일우’가 재회했다. <다큐 플렉스>과 하이킥, 그 만남의 순간에 서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다큐 플렉스>만의 재현 방식

 처음 프로그램의 문을 연 정일우를 시작으로, 배우들은 하나둘씩 당시 작품 속 공간을 똑같이 재현한 스튜디오에 모였다. 그들은 함께했던 한 시절의 공간에 들어섰다는 사실 자체에 눈물이 핑 도는 묘한 감정을 느끼고, 그때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각자의 시간을 지나온 얼굴들을 바라보며 벅찬 모습을 보였다.

 추억의 공간에는 여섯 명의 가족들이 함께했지만, 방송에 그들만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엉뚱하면서도 미스터리 한 강유미 역의 ‘박민영’부터 학교와 집을 넘나드는 감초 역할의 ‘황찬성’, 하이킥 러브라인의 중심이었던 ‘서민정’, “굿, 굿, 굿이에요”라는 유행어를 남긴 풍파교 교감 ‘홍순창’까지. 주연과 조연 할 것 없이 하이킥의 주역이었던 그들은 개인 인터뷰와 화상 통화를 통해서 당시의 감정들을 생생히 전했다. 2부에서는 하이킥 가족들과 유쾌한 케미를 선보였던 ‘신지’와 시청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이준 역의 ‘고채민’이 합류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다큐 플렉스>가 작품을 재현하고 조명하는 방식은, 위 같이 최대한의 인물을 불러 모으는 것을 넘어선다. 방송은 한 작품이 가진 타이틀을 찬양하거나 깎아내리지 않는다. 그 자체를 과거의 것 나름대로 추억하며 지금의 시각으로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 맥락을 따라 저번 전원일기 특집에서 명성에 가려진 가부장성을 언급했다면, 이번에는 하이킥의 치솟은 인기의 이면을 짚어본다.

 국내 방송 제작 환경은 유난히 열악한 편이다. 노동 인식과 규제가 마땅치 않았고,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제작과 방영을 거의 동시 진행했던 몇 년 전에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이킥 또한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초반 반응이 미미했던 하이킥은, 코피를 흘리고 쪽잠을 청하던 제작진이 있어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우리가 편히 즐겨봤던 하이킥의 웃음과 눈물 포인트, 각 인물의 개성 넘치는 서사 전개에는 바뀌어야 했을 관습이 녹아 있었다.


2. ‘사람’만큼 ‘공간’

 배우들만큼 하이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은, 정감이 가는 집 안의 공간이다. 어떤 공간은 그 안에 있기만 해도, 다양한 방식으로 말을 건다. 자극을 주고, 무언가를 상기하고, 혹은 모든 것을 잊게 하도록. 그런 느낌을 받을 때 공간은 기억이라는 걸 할 수 있고, 무언가를 제안하는 것만 같다.

 하이킥의 공간은 배우들을 가족, 친구, 이웃으로 연기하게끔 감정을 이끌었다. 15년이 지난 공간의 효력은 지금에도 유효한지, 다시 만난 그들을 눈물짓게 만든다. 그래서 방송은 이전의 특집과 다르게 극 중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배우들의 재회와 시청자들이 꼽은 레전드 에피소드 5개를 함께 시청하는 코너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레전드 에피소드 1위의 영광을 거머쥔 ‘호박고구마’ 장면을 배우들이 실제 대본으로 재연하는 것에 있어서, 공간의 존재만으로 그때의 시공간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그때 그 장소’와 ‘그 사람’들이 만나, 시청자의 추억을 아름답게 조성하는 일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왔다. 실은 <다큐 플렉스>를 통해 세트장에 모인 사람들뿐 아니라, 시청자인 우리도 재회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의 고이 접어둔 청춘을 살며시 옆에서 지켜주기, 그것이 ‘청춘 다큐’라는 이름과 무척이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