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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스누피 May 11. 2023

악마는 불안을 먹는다

[엄마로 살기]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낸 이유


어린이날 이틀 뒤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주일행사가 있던 날.

나는 둘째 아이를 무섭게 혼을 냈다.

그날은 어린이 주일을 기념해 영아부부터 청장년부 모두가 함께 연합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유치부인 6살 둘째 아이와 함께 특송을 위해 앞에 섰는데, 리허설 때는 곧잘 율동을 따라 하던 아이가 특송 중에 뒤에 있던 나를 보고 쭈그리고 앉더니 내 신발끈을 풀고는 까르르 거리며 노는 것이다.

그것도 맨 앞줄에서...

워낙 자유로운 영혼인 둘째 아이인지라 웃지 못할 해프닝이 또 하나 생겼구나 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리에 돌아와서도 내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의자 위에 눕거나, 기어 다니기는 기본이었고 종이접기를 하던 주보를 찢어대는 찌-익 찌-익 소리가 고요함 마저 찢는 것 같았다.


그동안은 둘째 아이가 지루하고 힘들어하면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었지만, 그날은 아빠가 자리에 함께 없었고 내 눈엔 엄마아빠와 함께, 친구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는 다른 유치부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교회 유치부 예배에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통제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아이들이 집중하고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예배하는 시간과 공간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우리 아이보다 어린 동생들이나, 친구들 중 누구도 자리를 이탈하거나 산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 이 녀석만 빼고.


'왜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 같지 않지?'


둘째 아이는 유난히 지루한 걸 참지 못하는 성향이다. 유치원 활동 중에도 본인이 관심 없고 재미없는 활동을 할 때는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한다. 밥 먹는 일도 둘째 아이에겐 재미없는 것 중에 하나인데, 그러다 보니 식사 시간 10번 중 8번은 멍하게 있다가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고 자지 않는 2번은 놀면서 먹거나 자고 일어났을 때일 정도다.


혹여 ADHD 검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유치원 선생님과 상담하기도 했지만, 선생님들은 둘째 아이를 그저 "호-불호"가 명확한 아이라고 했다.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활동에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며 높은 집중도를 보이고, 잘못된 행동도 잘 설명하면 충분히 교정이 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했다. 나 역시 그런 아이의 성향이 장점일 수 있다 여겼고, 그저 유난히 자기 고집이 센 녀석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 중에 이 날은 둘째 아이의 그런 기질이 큰 문제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우리가 둘째 아이의 편의를 지나치게 수용해 준 것은 아니었을까. 왜 유독 우리 아이만 지겨운 상황을 참지 못하는 걸까.


난 아이를 데리고 나와 '지금 시간은 장난치는 시간이 아니다. 장난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집에 가서 혼난다.'라고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고 다시 자리로 왔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산만했고 보란 듯이 뒷사람의 얼굴을 향해 궁둥이를 들어 올리는가 하면, 발바닥을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가 내뱉는 "지겨워", "언제 끝나"라는 말이 설교 중인 목사님한테까지 다 들릴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를 고쳐 앉혀놓고는 귀에 나지막이 '자꾸 이러면 나중에 혼난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이를 꼭 안아서 붙잡아 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빠져나가기 위해 더욱 몸부림 칠 뿐이었다.


'안돼', '그만해' 사나운 눈빛으로 아이를 다그치며  이를 꽉 물고 있던 나의 인내심은 아이에게 발가락으로 똥X을 맞는 순간 얕은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마치 문제아의 엄마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 주변에 있던 또래 아이들과 성도들을 불편하게 한 것 같은 민망함과 성스러워야 할 예배시간조차 분노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


온갖 감정이 뒤섞여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는 그날의 모든 어린이 이벤트를 뒤로 하고 아이를 끌고 집으로 왔다. 오늘 본 떼를 보여주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엄마가 장난치지 말라고 했지!"


집에 오자마자 단전에서부터 끌어 올린 사자후의 뜨거운 입김을 내뿜었다. 팝콘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팝콘 알갱이들처럼 마음속 말들이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특송 할 때의 돌발행동,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장난에 대해 아이를 꾸짖었다.

"지겹다고 너처럼 장난치는 사람들 있었니? 너만 지겨운 거 아니야. 다른 친구들도 똑같이 지겹지만 참고 기다리는 거야."


지겹고 하기 싫은 것이라도 해야 하는 게 있다고, 참고 기다리는 법도 배워야 하는 거라고. 아이에게 5분간 손을 들고 있으라 했다.


악마는 불안을 먹는다


그렇게 아이를 향해 썰물처럼 화를 밀어내고 나니 후회가 밀물처럼 다시 밀려온다.

난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걸까. 아이에게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뒤늦게 생각해 본다.


지겨운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의자 위를 돌아다닌다거나 큰 소리를 내는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기에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다.


왜 방해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 왜 지금 나가지 않고 기다려야 하는 건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조용히 해', '얌전히 있어', '똑바로 앉아'라는 일방적인 명령과 그러지 않으면 혼날 줄 알라며 협박하던 나를 돌이켜본다. 첫째 아이땐 그러지 않았는데, 유독 둘째 아이에게만 나는 종종 설명을 생략하곤 했다.


그날도 예배의 본질을 가르치기보다 '예배 잘 드리는 아이'로 보이는 것이 우선시되었고, 우리 아이만 다른 아이들 같지 않다는 생각에 빠져들어 불안해졌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우리 아이가 이상한 것인가? 혹시나 문제가 있는 건가? 하는 불안 때문에 조급해했다. 당장 우리 아이도 다른 아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조금함은 아이를 통제하려는 태도로 이어졌고, 통제를 따르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나의 불안이 분노가 되었던 것이 비단 이번 일 뿐이겠는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고 우리를 유혹한다는데, 프라다 따윈 없고. 아무래도 엄마 마음속의 악마는 불안을 먹고 자라는 것 같다.


오늘 둘째 아이에게 그날 왜 혼났는지 기억하냐 물었더니 아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결과적으로 나는 6살 아이 앞에서 내 안의 악마를 드러내기만 했을 뿐 제대로 훈육하지 못했다.


이번 훈육도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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