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살기] 대학교 수강신청보다 어려운 방과 후 스케줄 짜기
시간표와 눈싸움 중입니다.
벌써 몇 주째, 난 모니터에 펼쳐진 시간표와 눈싸움 중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이의 여름방학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난 한 달 전쯤부터 일하면서 틈틈이 지도를 켜 놓고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학기 중 돌봄 교실은 5시까지 운영이라 태권도 1시간만 보내도 퇴근시간에 맞출 수 있었지만 방학중 돌봄 교실은 3시까지 밖에 운영하지 않는단다. 3시부터 태권도에 가는 시간까지 2시간이 비어 하는 수 없이 학원을 늘려야 했다. 태권도 학원 밑에 있는 피아노학원을 보내도 1시간이 남았다.
차량운행도 되고, 집 인근에 있는 영어학원을 알아보니 주 3회 수업이란다. 어쨌든 조건에 맞는 학원 찾기도 쉽지 않으니 혹시라도 마감될세라 바로 등록을 해버렸다. 그렇게 주 3회 2시간은 영어학원에서 보내면 되는데 그럼 나머지 2일간의 1시간은 어떻게 채운담. 고민이 시작됐다.
1시간을 위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1시간은 집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라고 할까 생각했지만, 학기 초 아픈 아이를 데리러 갈 수가 없어 혼자 조퇴시키고 집에서 TV를 보면서 기다리라고 했다가 아이가 혼자 집에서 엉엉 울고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차마 아이에게 요구할 수가 없었다.
다른 학원을 가려면 적어도 혼자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물론 아이가 조심하기야 하겠지만 막달 생인 1학년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 이 동네 엄마들은 아이들을 모두 직접 픽업을 시키는 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스스로 학원을 찾아다닐 수 있는 건지. 차량을 지원하는 학원도 많지가 않으니 골머리다.
학원 시간표들은 어찌나 제각각인지, 여유 있게 짜자니 대기시간만 한 시간이고 시간을 꽉꽉 채우자니 이건 해리포터처럼 10분 전 되돌리기 시간 마법이라도 부려야 할 판이다.
돌봄이 끝나면 인근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시간 맞춰 들어가라고 하자니, 시간은 잘 맞출 수 있을지, 아니 그보다 나왔을 때 친구들이 있기는 할지, 혼자 있다가 괜히 사고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불안하다.
오늘도 시간표를 바라본다고 답은 없지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보면 번뜩이는 해답이 나오려나 하는 기대로 눈싸움을 매일 해본다.
라떼는 말이야…
생각해 보면 내가 8살일 때도 우리 부모님도 맞벌이셨고, 난 학교에서 돌아와서 쭉 집에 있었다. 피아노 학원까지 혼자 걸어갔다 와서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 보면 엄마아빠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시간이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부모님은 나름의 방법을 쓰셨다. 타지살이를 해야 했던 대학생 사촌언니나 사촌오빠, 인근 대학교의 여대생을 찾아 남는 방 하나를 내어주고 나의 돌봄과 학습지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렇게 부탁할 사람도 없자 같은 아파트에서 친하게 지내던 할머니에게 일정의 비용을 지불하시면서 나의 하교 후 돌봄을 맡기셨다.
그러던 중 3학년쯤이었을까 동네에 공부방이 생겼다. 18-20평쯤 되는 아파트 단지 1층 집에 동네 초등학생들이 모여서 같이 공부할 수 있었다. 공부방에는 몇 대의 컴퓨터가 있어서 생전 처음 컴퓨터를 배우기도 했다. 공부방 선생님은 학교 숙제를 도와주거나,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엄마처럼 숙제를 살펴주고 때론 고민을 들어주시기도 했다.
요즘은 왜 그런 정 많은 동네 공부방을 찾을 수 없는 건지도 의문이다.
프랜차이즈 공부방에 자기주도학습이니 융합교육, 사고력 확장 같은 온갖 그럴싸한 수식어가 붙는 학습활동들이 난무하지만 사실 정작 필요한 건 돌봄 공백과 학습공백을 채울 수 있는 시간과 안전한 공간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많은 건지 교육열이 높은 동네라 그런 건지 학교 인근에 지역아동센터도 없으니 맞벌이인 우리 집은 학원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
아이 나이 뒤에 "0"
돌봄 공백을 꽉꽉 채운 아이의 하루 시간표는 힘들다. 하루에 학원 3군데는 이제 고작 8살인 아이에게 과하다 싶어 결국 한 시간은 집에서 혼자 쉬는 것으로 아이와 합의를 봤다. 그래도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학원비만 60만 원이 넘었다. 거기에 학교 교육을 보강할 학습지까지 보태니 한 달 사교육비 지출만 70만 원이 훌쩍 뛰어넘는다. 어느 기사에 아이 나이 뒤에 "0"을 하나 붙인 만큼 학원비가 들어간다는 말이 이거구나 싶었다.
입학 후 돌봄 공백을 채우느라 학원 뺑뺑이를 돌리며 부모 등골은 휘어가는데 아동수당은 8세 전까지인 것도 교육비 소득공제는 미취학까지만 반영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나마 돌봄 교실이 있으니 이 정도지 2학년부터는 돌봄 교실 대상자도 아니어서 오전 시간을 채울 학원도 추가해야 할 판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집에서 혼자 학습지를 풀다가 알아서 학원 갔다 집에 오고 엄마아빠의 퇴근을 기다릴 수 있는 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돈을 들여 학습지나 학원을 다니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센스 있게 척척 스스로 알아보고 배워가는 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 2회 차가 아니라 10회 차를 살았어도 8살이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괜스레 아이 탓을 한다.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남편의 직장 근처로 영끌하여 집을 매입한 뒤 매월 따박따박 한 사람 월급 절반에 육박하는 대출금이 나갈 걸 생각하면 쉬이 내릴 수 있는 결정도 아니다. 한 사람이 일을 쉰다고 한들 교육 격차 때문에 학원을 안 보낼 수도 없는 현실을 알기에 오늘도 자본의 노예가 되어 꾸역꾸역 출근을 한다.
2살 터울의 둘째 아이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그야말로 사교육비가 따블일 텐데 내 월급이 아이나이 뒤에 붙은 "0"만큼 오를 수 있긴 하려나.
돌봄 공백, 교육 격차를 채워 줄 만큼 여유롭지 못한 나와 신랑이 무능력한 탓이 되어버린 사회가 어찌 출산율 증가를 논할 수 있을까도 싶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마을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작 인생 8년 차인 아이의 하루가 이렇게 까지 힘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 아이가 모자라서가 아닌데도 독립적이지 못한 아이의 성향을 자꾸만 탓하게 된다.
오늘도 바뀐 학원 시간과 픽업 장소를 헷갈려한 아이 덕에 업무 중 여기저기서 연락을 받고선
“아이고- 아침에 분명 여러 번 이야기해 줬는데 걔가 왜 그랬을까요..”라고 아이 탓을 해버린 못난 엄마다. 아이는 그렇게 사회공동체의 문제와 엄마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뭐 어찌 되었든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니 만 6세인 아이에게 일찍이 자립심을 조기교육 시켜준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