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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스누피 Aug 11. 2023

남 탓하는 세상, 나도 남 탓 좀 해도 되나요?

한풀이. 내가 지금 힘든 건 OO 때문이다.

사는 게 너무 빡빡하고 갑갑하다.

좋은 뉴스라곤 하나도 없다. 교권추락, 흉기난동, 재난까지 연일 시끄러운 뉴스뿐이다.


누구 하나 잘못했다는 말도 없고 책임지겠다는 말도 없다.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만 할 뿐. 심지어 흉기 난동꾼도 남 탓이다. 바뀌는 것 하나 없는 남 탓 쟁론이 너무 피곤하다. 이런 세상에서 내가 내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아이 하굣길에 흉기 난동꾼이라도 만나면 어쩌나, 괜히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겨 학부모로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지레 걱정된다. 혹여라도 실수해서 우리 아이가 손가락질받는 상황이 되면 어쩌나 싶다.


이번 태풍이 심하다고 난리인데, 돌봄 교실을 다니고 있는 아이 학교는 공사 중이다. 자칫 하교할 때 태풍 때문에 공사장비나 공사파편이라도 날아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싶어 너무 불안했다. 학교에 연락해서 공사현장에 태풍대비가 되어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진상엄마 소리 듣는 거 아닌가 조심스럽고 그렇게 걱정되면 보내지 말라는 답을 들을 것 같아서 꾹 참았다. 학교도 다 준비했으니 별말 없는 거겠지. 그냥 진행상황을 지켜보다 여차하면 한 사람이 반차를 내고 데리러 가는 걸로 했고, 다행히도 반차를 쓰지 않고도 태풍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 이야기를 회사 동료들과 밥 먹는 자리에서 꺼냈더니,

"어휴~ 그 전화 안 하길 잘했어요. 우리 와이프가 그런다고 했으면 나는 절대 못하게 말렸을 거예요. 그런 전화는 하는 거 아니라고 생각해요. 학교 선생님들은 바른 길로 지도하는 사람인데 대체 그런 민원을 왜 해요. 교사의 권리를 지켜줘야죠."라고 한다.

응? 아니, 이러면 좀 억울한데.


안전에 대한 확인조차도 교권을 무시한 행동으로 보인다니. 그저 태풍에 아이를 보내도 될 만큼 학교가 안전한 상태인지가 궁금했을 뿐인데, 학부모가 돼서 그런 것조차 확인할 권리가 없다면 내 새끼는 안전은 도대체 누가 책임지나. 사고라도 생기면 돌아오는 건 태풍에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안전불감증 학부모 탓이 될 텐데.


각자도생 하는 세상이라더니 초등학교 1학년 짜리 아이도 재난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건가. 답답했다. 교권추락이 꼭 학부모 탓만은 아닌데, 모든 책임이 학부모 민원과 안하무인인 학생들에게만 있는 것처럼 학부모와 학생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이젠 피곤하다. 부당하고 잘못된 상황이 와도 가만히 지켜보고 참고 있어야 바른 학부모, 바른 학생인 건가.


그런 와중에 종일 난감한 연락이 왔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이번주 내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운다. 태권도 학원 안 가고 밥 먹고 엄마가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오늘 일찍 오실 수 없냐고 한다.


하.. 답답할 노릇이다. 가뜩이나 1학기 일정과 방학, 질병 때문에 연차가 며칠 남지도 않은 데다 2학기 일정까지 빼놓으면 아예 없는데 아이가 우는 일로 반차를 내야 하는 걸까.

태권도 학원은 가지 않고 아빠가 퇴근 후에 데리러 갈 거라고 했지만,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멀쩡히 잘 다니던 유치원인데, 아침에 분명 신나게 유치원 버스를 탔는데도 요즘 들어 부쩍 아이가 우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어디가 아픈 건 아닌가 걱정돼서 머리가 복잡했다.

그냥 두자니 일찍 데리러 오지 않았다고 엄마가 나를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신뢰가 깨지면 어쩌나, 반차를 내고 데리러 가자니 울면 엄마가 올 수 있다는 걸 학습하면 어쩌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오후가 되니 이번엔 첫째 피아노 학원에서 전화가 온다.


얘도 운단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니 통화 좀 해보시라고.

하... 오늘 얘가 핸드폰을 두고 갔구나.

그제야 아침에 가방을 학원가방으로 바꿔 챙기면서 핸드폰을 두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핸드폰 없어서 불안했어? 핸드폰 없어도 괜찮아. 잘 다닐 수 있어. 그리고 선생님도 잘 챙겨주실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달래서 전화를 끊고 잠시 뒤 학원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선생님께 색종이에 코를 묻혀왔다고 억울하게 혼난 것 같은데 한번 알아보시라는 메시지였다.


아.. 참.. 난감하다.

엄마로서 내 새끼가 억울하게 혼났다니까 속상하긴 한데, 이거 뭐 내가 뭐라 따질 수가 있나.

학부모가 갑질 민원한다고 온 세상이 난리인 판국에

"선생님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억울하게 혼났다고 울고 왔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고 물어봤다가 갑질 부모로 찍히기라도 하면, 그거 고스란히 우리 애가 감당해야 할 텐데 솔직히 사정을 물어보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겁난다.


설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냥 혼냈을까. 아이 이야기를 잘 듣고 달래주는 편이 좋겠다 싶은데 꼭 무슨 일인지 알아보시라고 두 번이나 당부의 문자가 오니. 이런 내가 무책임한 엄마인 건가 싶고 환장하겠다.


아이가 정말 큰 잘못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혹시나 이런 분위기에 학부모들이 민원을 못 넣을 거라고 생각해 진짜 우리 아이한테 나쁜 짓을 했으면 어떡하지. 실제로 아이가 정말 억울한 입장에서 아무도 자기편이 되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걱정도 된다.


그런 중에 이번엔 영어학원에서 또 연락이 온다. 학원 오기 전부터 아이가 계속 운다고. 통화해 보시라고.

모르는 척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니, 선생님한테 별 거 아닌 걸로 큰 소리로 혼나서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무슨 일로 혼났냐고 하니 기억이 안 난다는 아이.


아.. 어떻게 말해줘야 좋은 엄마인가. 어렵다. 혼란스럽다.


"괜찮아, 엄마도 어릴 때 선생님께 혼난 적 많아. 원래 혼날 때도 있고 칭찬받을 때도 있고 그런 거야. 선생님이 혼내면서 소리 질렀어? 그래서 많이 놀랬나 보구나? 혼나서 속상할 수는 있지만 그것보다 왜 그랬는지 잘 생각해 봐. 선생님 기분이 안 좋으셨을 수도 있지만 네가 뭔가 잘못한 게 있을 수도 있어. 일단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해 봐. 그래야 다음번에 조심할 수 있지. 혼나도 괜찮아, 다음번에 조심하면 돼."


라고 달래 놓고 보니 아뿔싸. 지금 몇 시지? 태권도 학원에 둘째 아이 결석을 알리지 않은 일이 생각났다.

울면서 태권도 학원 차를 탄 건 아니려나 놀라서 서둘러 첫째 아이와 전화를 끊고 유치원으로 전화했더니, 태권도 차가 이미 다녀왔단다. 아빠가 데리러 온다고 해서 아버님께 전화해서 확인하고 태권도로 안 보냈다는 답.

다행이었다. 아 근데 애들 아빠가 이따 한마디 하겠구나 싶어 괜한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아니 왜.

내가 다 챙겨야 하고, 못 챙기면 욕도 내가 먹어야 하나. 갑자기 억울해졌다.


얼마 전 미혼인 친구와 만나 이야기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왜. 학부모는 부와 모가 같이 있는데, 사람들은 왜 꼭 학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거야? 학부는 왜 빼? 학부도 돌봄의 책임이 있는데 왜 학모에게만 묻는 건지 이해가 안 돼."


그러고 보니, 학원에 연락하는 것도 학교에 연락하는 것도 아이 친구 엄마에게 연락하는 것도 다 엄마 몫이다. 부와 모의 역할이 다르고 엄마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일이긴 한데, 생각해 보니 아이들을 둘러싼 사회는 왜 모계중심일까 궁금도 하다. 그렇다고 나만 소통창구 되는 거 억울하니 이제부터 당신이 하라고 아빠한테 떠넘기는 건 또 못하겠다. 예부터 백년지대계는 학모의 몫이었던가.


(아니 근데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는 남자들이 앉아있는 건지 모르겠네.)


하루종일 속상하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막막했다.


왜 내가 학생일 때 어른으로 사는 게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거라고 아무도 안 가르쳐 줬나.

국영수가 아니라 각자도생 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건 교육부 때문이다. 아닌가. 한국 교육은 일제강점기 때 잔재이니 일본 때문인가. 아니다. 그냥. 인간을 이렇게 악하게 만든 아담이 제일 잘못했다. 아담 때문이라 하자.


내가 지금 힘든 건 다 아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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