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같은 마음일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순간. 같은 지점에서 숨죽이고, 같은 지점에서 압도되고, 같은 지점에서 웃고 기뻐하고 아쉬워하는 순간. 그래서 몇 백명이 되는 사람들의 호흡이 같은 박자로 모아지는 영화관이 너무나 좋다. 단, 전제조건이 붙는다. 개봉일, 혹은 개봉전야제 아이맥스 영화관에 한해서다.
좋아하는 영화는 반드시 개봉일을 챙겨 개봉하는 날에 봐야 직성이 풀렸다. 어벤져스가 그랬고, 스타워즈가 그랬고, 에반게리온이 그랬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그랬으며, 오늘 같은 경우는 듄이 그랬다. 누군가의 스포가 싫어서 시작한 이 습관은 이제 스포를 떠나서 나에게는 하나의 정갈한 의식과도 같이 자리잡았다.
개봉 첫 타임 상영관의 공통점은 특정 마니아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속편을 기대하고, 크랭크인부터 제작 진행상황을 수시로 체크하며, 광팬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 같은 목적과 마음가짐으로 예매했기 때문에 관람예절에 흠 잡을 데가 없다. 물론 감동적인 순간도 있다. 나는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를 봤을 때 인트로에 박수를 치며 환호한 관객들을 잊지 못한다. 나도 따라서 박수를 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장엄한 음악과 <STAR WARS> 로고가 도대체 얼마만이란 말인가.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in a galaxy far, far away….>보다도 더 far, far away에 있는 아담 드라이버의 제3의 눈을 확인한 사람들이었다. <에반게리온: Q>를 보러 갔을 땐 경외심 마저 들었다. 나를 포함한 관객 중 어느 누구도 엔딩스크롤이 끝날 때까지 한 순간도 움직이지 않고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거의 신드롬이었다. 잘 훈련받은 군인처럼 우리는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숨소리 하나 없이 앉아있었다. 역시 덕후들은 위대하다.
오늘은 어김없이 폴을 숭배하고 왔다. 300여명이 함께 종교의 탄생을 목격했고, 신화의 시작을 간접 경험하고, 아라키스 행성의 사막에서 벌레를 유인하고, 모래걸음을 걸었다. 물론 각자의 후기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럼에도 명확한 한 가지는 우리가 아주 긴 플래시몹을 하는 사람들처럼 2시간 40분 이상을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시종일관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지금 내가 몸이 떨리는 게 이 장엄한 스토리에 감동을 받아서인지, 아이맥스관의 음향과 좌석의 진동 때문인지를 혼동하고 돌아왔다. 지금 내 눈 앞에는 <듄> 시리즈 전권이 놓여있다. 오늘은 또 어디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인가. 각주만 모아놔도 책 한 권인 세계관을 언제쯤 다 익힐 수 있을까. 영원히 <듄>을 보고 싶다. 리산 알 가입!
믿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 믿게 하는 자와 믿게 하고 싶지 않은 자, 믿고 싶지 않은 자, 다른 편을 믿은 자, 편이라는 건 없다고 믿으려는 자. <듄 : 파트2>에는 각자의 사상과 가치관으로 예언을 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펼쳐져 있다. 모래알만큼이나 제각각인 것들이, 모이거나 흐트러지며 큰 사막을 이룬다. 그리고 그 안에는 거대한 진실과 결말이 숨겨져 있다. 누구라도 일정한 간격으로 땅을 두드리면 기꺼이 그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마친 채.
내 기준 영화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모든 스크롤이 다 올라간 후 ‘상영이 종료되는 시점‘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노고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게 여운이고, 존경이고, 감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당분간은 이 여운이 오래 갈 것 같다. 다시 한 번 듄에 가서 모래 걸음을 걷고 싶다.
[작가의 말]
더 자세한 얘기는 우리 모두 각자 영화를 본 후에 술을 먹으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술은 끊어서 차를 마시는 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