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례 씨를 만나기 위해 주말에 요양병원을 방문했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곳에 있던 명례 씨는, 이제 데스크에 이름과 가족관계를 적고 출입을 허락을 받아야만 만날 수 있는 곳에 입원해 있다. 한 번에 최대 4명까지 면회가 가능한 요양병원에서, 나는 20분이라는 제한 시간 동안만 명례 씨를 만나고 돌아올 수 있었다.
6인실의 병원은 고요했다. 한가하고 조용한 백색의 공기만이 가득한 병실 안에 모두가 같은 분홍색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다. 명례 씨는 침대 한 켠에 옆으로 돌아누워 간신히 숨과 잠을 버티고 있었다. 언뜻 봐서는 잠이 들은 건지, 깨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나는 명례 씨에게 나의 가장 맑은 얼굴로 인사하기 위해 입가에 힘을 주었다. 명례 씨가 보면 좋아할 깔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서.
'옥까는 못 알아봤대. 재명이랑 석희랑 민수도. 알아보는 얼굴이 있고 못 알아보는 얼굴이 있으셔.'
영미 씨의 걱정과는 다르게 명례 씨는 나를 보자마자 놀라는 얼굴을 해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 한 마디 할 기력도 없었으면서 지금은 얼굴의 모든 근육으로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손주가 어쭈구 여기까지 왔다냐, 명례 씨는 나에게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잡고 얼굴을 매만졌다. 말없이 웃는 나를 향해 명례 씨는 이렇게 말했다.
“밥은 먹었냐.”
돌아눕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명례 씨가 한 쪽 팔을 힘겹게 들어 찬장을 가리킨다. 찬장을 열어서 먹을 게 있나 보라고, 찾아 먹으란다. (명례 씨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모든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배를 크게 쓰다듬으며 밥을 많-이 먹고 왔노라고,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된다고, 찬장에는 기저귀 뿐이라고 보여줬다. 천장을 보고 꿈뻑이던 명례 씨는 조금 뒤척였다. 많이 쓰다듬어주고 싶어서 다리를 콱 주물렀는데 아파해서 속이 상했다.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살살 쓸어주며 뒤를 돌아보니 나머지 5개의 침대에 모르는 할머니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 중에는 숨 쉴 때마다 가래 소리가 나는 분도 있고, 쓰레기통에 있는 모든 휴지를 꺼내 검사하고 다시 집어넣은 뒤 핸드크림을 바르는 분도 있고, 명상을 하듯 입을 벌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한 분도 있었다. 나는 잠들어 있는 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라보는 내내 저 분은 어떤 꿈을 꿀까, 어떤 생각을 할까, 결국 우리들도 이런 모습들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오래 눕고 오래 꿈꾸는 그 날이 오기 전에, 더 치열하고 더 유연하게 살아야겠다. 열정과 여유를 동시에 손에 쥐고.
잠깐 사이에 명례 씨가 잠들었었나 보다. 나를 다시금 바라보고 손을 뻗는다.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는 걸 유독 싫어하는 명례 씨는, 나를 보면 언제나 이마를 쓰다듬고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곤 했었다. 그 손길 그대로 명례 씨가 나의 머리를 넘겨 준다. 나는 그 작은 손짓에 마음이 놓였다. 조금씩 기억들을 잃어갈 명례 씨는 아직 나를 잊지 않았다. 그게 감사해서 자꾸만 손을 어루만졌다.
명례 씨는 텔레비전을 보고 잠깐 헤, 하고 웃었다. 프로레슬링을 즐겨 보던 명례 씨의 모습이 그리워졌다. TV 옆 시계를 보니 면회 가능 시간보다 10분이나 훌쩍 넘어 있다. 의자가 없어서 내내 서 있는 나를 보고 안쓰러워하고 시종일관 손주가 밥은 먹었는지를 계속해서 걱정하던 명례 씨가 이제 나에게 그만 돌아가라고 말한다. “가.” 나는 그 말이 서운하지 않다. 이 병실을 나서는 것도, 할머니와 손인사를 하는 것도.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명례 씨의 이마와 손에 한 번씩 입을 맞추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왔다. 다시 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39년생 명례 씨의 챔피언벨트> ; 명례 씨가 프로레슬링을 보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