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지글 끓는 여름이 지나고 바람이 조금 차가워질 무렵, 가을 아침이었다. 명례 씨가 고운 숨을 거두었다. 침대 난간에 매달리듯 기대어 긴 낮잠을 끝낸 명례 씨는 큰 아들이 오자 “나 아직 살아있냐.” 라는 질문을 건네고는 손녀인 내가 임종면회를 가려는 아침에 조금 서둘러 떠났다.
명례 씨가 떠나기 바로 전 날, 촬영이 끝나고 출연자들을 보내며 “이별하기 좋은 날씨네.” 하고 읊조렸는데 그 말이 하필 허공에 퍼져 명례 씨에게 닿은 걸까. 명례 씨는 이별하기 좋은 어느 날 아침에 고운 얼굴을 하고서 갔다. 영정사진 속 꽃분홍색 옷이 고와서 참 좋았다. 장례식장은 첫날 오후부터 손님으로 북적였다. 나를 기다리지 않고 가버린 명례 씨에게 서운했지만, 희나리처럼 더 야위어버린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명례 씨만의 고고함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좋은 마음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반갑게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던 온기까지. 우리가 잡은 손의 모양은 언제까지나 다정한 모습일 것이다.
일 년 전, 호철 씨가 먼저 떠난 때를 기억한다.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감각이 청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하염없이 말을 걸었었다. 좋은 기억만 하시고 좋은 생각만 하시라는 말, 나는 그 마음밖에는 전할 수가 없었다. 목사님이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다음에 반드시 만날 수 있음을 믿사옵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 간절함이 닿아서 만난 게 바로 지금 생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은 않는 것 같다.
우리에게 다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행여 다음 생이 있다고 해도 이번 생을 기억하지 못한 채로 살아갈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미 우린 여기서 같은 세상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났으니까. 사랑과 예절을 배우고 헌신과 배려를 익혔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게 되었으니까. 그 단단한 뿌리와 터전을 내 인생에 쥐어 준 명례 씨와 호철 씨의 거룩함에 큰 절을 올린다. 나는 그 모든 것으로 충분하다. 그걸로 됐다.
납골당에 꽃을 건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전에 그들이 피워내고 간 것들의 숭고함을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을 빗대어 기리기 위함일까. 감사와 존경을 이제 더는 말로는 전할 수가 없어 우리 가족들은 언제나 가장 예쁘고 고운 꽃을 고를 것이다. 그리고 그 꽃길을 따라 결국 같은 곳으로 갈 것이다. 아마도 기꺼이, 서운하지만 반갑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