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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s by letter Jan 13. 2019

블랙 미러 EPI2 - 핫 샷(Hot Shot)

핫샷과 매트릭스에서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모습을 찾다

최근 잊힌 영국 드라마 중 흥미로운 시리즈를 찾았다. 이름하여 블랙 미러(Black Mirror)

풍자 코미디언 찰리 브루커가 제작을 맡은 옴니버스 식 드라마로, 미디어가 사람에게 불려올 부정적인 면을 지극히 SF 적인 느낌으로 구성하였다.


흔히, 미디어란 현실 세계를 마주하는 거울의 성격을 갖고 있어, 현대인들은 현실 감각을 잊은 채 해당 미디어에 앞다투어 빠져든다. 허나, 미디어가 비로소 꺼졌을 때의 차가운 브라운관, 액정 화면 등에 비친 자신의 모습, 즉 현실 세계는 미디어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즉 블랙미러의 탄생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핫 샷(Hot shot)으로, 남들이 주목할 만한 훌륭한 장면을 뜻한다. 처음에는 슈퍼스타가 되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매력을 뽐내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생각했다. 단순히 감동과 스토리가 있는 오디션으로 이해하기에는 이번 에피소드가 무겁다.  


에피소드의 시작은 여타 일반적인 현실과 같다. 해가 뜨고 알람이 울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다만, 공간이 막혀 있다. 사방이 온통 막혀 있는 곳이다. 가장 큰 소품이나 부재인 ‘장소’라는 면에서 특이한 점을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밖과 단절된 세상: 현실인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 빙 매드슨. 그가 잠을 깨고 일어나면 주의의 화면이 순식간에 해가 뜬 모양새로 바뀐다. 하지만 실제로 해는 없다. 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이다. 또한 몇 시인지 모른다. 시계는 있지만 실제 시간인지 가상으로 설정된 시간인지 알 수가 없다.


빙 매드슨은 감정이 없는 모습으로 피트니스센터 같은 곳으로 가서 무의미한 표정으로 페달을 돌린다. 사이클링 머신 앞 화면에는 돈으로 모이는 수치가 천천히 올라간다. 그뿐 만이 아니라 해당 구역에 있는 사람들도 페달을 돌리고 있다. 퉁퉁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옆에서 가끔 무의미한 가상 게임을 하고 실실 웃는다.


밥을 먹을 때 그는 인스턴트보다도 사과를 고집한다. 다만 그 사과는 배양접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인스턴트보다는 신선함을 원한다. 단 것을 먹게 되면, 더 단 것을 찾게 되고 욕망의 악순환을 잘 알고 있다.

오디션 : 핫 샷 광고

휴식 시간에는 광고를 본다. 사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것이 광고이다. 오디션을 종용하는 광고, 레이스 아가씨의 선정적인 광고, 웃긴 광고 등 말초 신경을 돋우게 하는 광고이다. 실제로 자연이 살아 있음을 보지 않아도 된다. 자극적인 광고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몇 분간의 토막적인 장면에서 우리도 빙 매드슨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잠에서 깨어나고, 주어진 업무를 끝낸다. 점심을 먹을 때는 맛있는 집, 빨리 먹고 돌아올 수 있는 집을 찾고 유튜브를 보며, 웃긴 거, 야한 거 재미난 것을 찾아본다. 그 속에서 나는 즐긴다.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추구할 수 없다. 난 그 속에서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드라마 초반의 ‘I have a dream’의 노래는 페달을 돌리는 인간들과의 공존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Real)를 찾아가다


단조로운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관심 없다. 우리도 빙 매드슨에게 관심이 있지만 잘 알 수 없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뭘 하고 싶은지, 정보가 없다. 한 소녀가 관심을 보였지만 그마저도 단절된다.


그러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한 여자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그는 매일 사방이 막힌 독방에서 오디션 광고를 보았다. 수많은 목소리를 들었고 무슨 목소리가 좋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화장실에서 들었던 노래를 집에서도 반복한다.

 

그리고는 그녀와 이야기를 시도하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이하 ‘핫 샷’)에 나가기를 제안한다. 그녀는 고민 끝에 그의 제안을 받고 상층부로 이동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 핫샷 참가를 제안

여기서 그녀는 두 가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녀는 순수함과 신비로움을 모두 가진 인물이다. 또한 그녀는 비상품성과 상품성을 모두 가진 인물이다. 빙 매드슨은 그녀의 노래를 보면서 자신이 동경해온 때묻지 않은 자연스러움, 순수함을 믿어 왔고, 그것을 핫 샷에서 보여주길 바랐다.


하지만 오디션 관계자의 눈은 달랐다. 이미 그녀를 포르노 배우로 만들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그녀에게서 상품성을 보았다. 신비로움에서 발현되는 느낌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려 했다.  


그녀는 오디션으로 발을 딛기 전 긴장을 풀어 주는 주스를 마시고 몽롱한 상태로 들어간다. 노래를 불렀을 때 놀랐다. 다들 놀랐다. 허나 오디션 관계자는 그녀에게 포르노 배우를 제안했고, 다시 돌아가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악랄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설득했다.


                                        실패는 아니다. 다만 안주한다

 

빙 매드슨은 해당 모습에 주저앉았다. 그녀를 통해 가상에서 현실을 찾고자 한 행위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며칠 동안 무너 졌다. 그러던 중 자신이 목소리를 내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페달을 돌린다. 결국 핫 샷 참가권을 살 돈을 모았고, 다시 올라간다.  

 

오디션 현장에서 그는 엔터테이너로 자신을 소개하고 공연을 펼친 뒤, 자해를 시도하면서 자신이 생각해온 가상현실 세계를 폭로한다.

                                ‘우리를 사람이 아닌 그저 사료로 보는  거죠.
                                       그리고 가짜일수록 더 좋아해요
                                      가짜 사료만이 쓸모가 있으니까요.
                                           내가 꿈이 있냐고요?
                                          최고의 꿈이라고 해봐야
                                        도플에게 모자나 사주는 건데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아요
                                              - 빙 매드슨 대사

  

목소리를 높이는 빙험

그는 진심이었지만 심사위원은 또 하나의 공연이라 생각하고 그를 칭송한다. 그의 목소리는 또다시 가상적인 즐길 거리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소비되는 것으로 전락했다. 그가 창조한 진실된 목소리는 심사위원에 의해  가상적인 공연이라고 치부된다.


                                   빙 매드슨 : 그것은 공연이 아니라 ....  
                                    심사위원 : 그것은 진실이었죠?


  

그의 목소리 또한 상품거리가 된다.

그는 결국 일주일에 2번씩 공연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전과 달리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되고 육체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더욱 풍족한 지위를 얻는다. 허나 그는 예전과 같이 현실을 바라고자 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 또한 사람들에게 단순히 즐길 거리가 되어 소비되어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의 자해 용품은 도플에게 사용될 코스튬으로 팔리게 된다.


그는 인제 더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 그리고 더 큰 스크린에 밖의 경치도 보인다. 허나 그것이 현실은 아니다. 그것도 만들어낸 세상이다. 오히려 보면 그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더 좋은 세계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 가상 세계를 깨다
 

빙 매드슨은 이미 만들어 놓은 가상세계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의 진실한 목소리는 또 하나의 소비 거리가 되어 사라지고 만다. 그는 잔류와 탈출의 선택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주 2회 방송이라는 제안을 선택하면서 잔류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가상 세계를 다룬 할아버지 격의 훌륭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바로 1999년도에 막대한 흥행을 끌었던 ‘매트릭스 트릴로지’이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해당 영화에서는 인류는 태어나자마자 인공 지능 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그들은 AI가 만들어 낸 매트릭스라는 가상 프로그램 속에서 살아간다. 사실이라고 믿어지던 현실은 바로 거짓인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 안에서 인간은 철저히 인공지능의 통제를 받으며, 그들의 기억 또한 인공지능에 의해 왜곡된다.

 

3부작으로 이루어진 매트릭스 트릴로지 안에서 네오는 현실세계를 각성하고, 인간과 기계가 대립되는 상황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매트릭스 창조자 아키 택트를 만나게 된다. 네오는 결국 아키 택트를 만나고, 아키 택트가 넣어 준 매트릭스에서 스미스와 마지막 결전을 벌이게 된다. 스미스는 네오를 흡수하지만 아키 택트에 의해 제거되고, 창조주는 약속대로 인간을 모두 풀어 주면서 영화는 마무리 짓는다.  


매트릭스의 가장 첫 번째 시발점은 선택이란 점이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약을 건네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한다. 매트릭스에 남을 것인가,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 네오는 후자를 선택한다. 빙 매드슨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형의 죽음으로 인해 물려받은 막대한 금액이 있다.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막대한 금액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기 위해, 핫샷 참가권을 산다.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가상현실과 현실 사이의 선택 (출처: 네이버 영화)

다만 매트릭스에서는 네오는 트리니티라는 사랑의 파트너를 통해 최종까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길을 갔지만, 빙 매드슨은 단순히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오히려 빙 매드슨이 더 사실 같아 보인다. 방대하고 대서사시적인 매트릭스 영화와 달리 빙 매드슨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단순히 안주하게 되는 자그마한 개인을 찾을 수 있다. 개인의 능력으로는 더 큰 존재를 무너트릴 수 없다. 가상현실은 그의 발버둥 치는 모습도 체재 유지를 위한 부속품으로 보내 버린다. 빙 매드슨은 페달을 밟은 사람에서 엔터테이너로 새로운 부속품이 되었지만 기존의 가상현실은 건재하다.

 
                    시뮬라크르(Simulacre)        시뮬라시옹(Simulation)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낸 인공지능(AI)가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게 된 가상현실의 내용은 이전부터 자주 예술이나 문학에서 등장하는 소재이다. 특히 매트릭스를 통해 해당 영화를 기점으로 철학 및 미학에서도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잦았는데 자주 언급되는 것이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다.


매트릭스 영화 초반에도 나오는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는 매트릭스에 관심을 갖은 영화 팬이라면 한 번은 들어 봤음직한 이름이다. 현인들의 세계를 인식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 플라톤은 세상의 진리를 이데아에 두었다. 현실은 그저 감각에 의해 왜곡된 허상일 뿐 진실은 오직 이데아에 있는 것이다. 현실은 이데아의 복제이기에 우리는 모름지기 이데아를 바라보아야 하고, 그것이 세상의 진리이자 도덕적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뮬라크르(Simulacre)는 그 현실을 다시 복제한 것으로 복제의 복제를 일삼은 행위다. 현실의 복제는 얼마든지 주위에 찾아볼 수 있다. 현실이 fact라면 그것의 복제는 Fiction이다. 밤마다 시청하는 드라마, 영화, 그리고 게임까지 또 다른 복제 세계로 볼 수 있다.  


핫 샷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현실보다 더욱 실제처럼 다가오는 미래의 현실을 보여준다. 빙 매드슨은 실체 같은 가상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과 시간을 소비한다. 현실 속으로 가기 위해 그가 외친 처절한 외침은 분명 창조된 것이다. 허나 그러한 행위도 가상현실의 한 프로그램으로 녹아들면서 그 또한 가상세계에 머물게 된다. 현실을 찾고자 하는 행위는 물거품이 되고 더욱더 가상세계에 빠져들어 이미 빙 매드슨이 있는 그곳이 현실세계로 탈바꿈한다. 시뮬라시옹을 통해 현실과 가상과의 구분은 없어진다.  


또 다른 존재가 빙 매드슨을 자극하여 가상세계의 주인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매트릭스처럼 가상세계를 없애고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https://blog.naver.com/jck0409/221440719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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