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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s by letter Jan 21. 2019

블랙 미러 EPI3 - 당신의 모든 순간들

영화 '완벽한 타인'과 함께 느껴 보는 판도라의 상자

최근 잊힌 영국 드라마 중 흥미로운 시리즈를 찾았다. 이름하여 블랙 미러(Black Mirror) 

풍자 코미디언 찰리 브루커가 제작을 맡은 옴니버스 식 드라마로, 미디어가 사람에게 불려올 부정적인 면을 지극히 SF 적인 느낌으로 구성하였다.

흔히, 미디어란 현실 세계를 마주하는 거울의 성격을 갖고 있어, 현대인들은 현실 감각을 잊은 채 해당 미디어에 앞다투어 빠져든다. 허나, 미디어가 비로소 꺼졌을 때의 차가운 브라운관, 액정 화면 등에 비친 자신의 모습, 즉 현실 세계는 미디어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즉 블랙미러의 탄생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당신의 모든 순간들 (The Entire History of You)로,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완벽한 타인(Intimate Strangers, 2018)’를 회상하게 한다. 에피소드의 시작은 현재 2019년과 다름없는 지극히 평범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단, 이 에피소드 안에는 놀랄만한 ‘그레인’이라는 상상 이상의 기술이 존재한다. 매번 혼돈과 착오를 동반하는 완벽하지 못한 개인의 기억을 30년 동안 저장하고 되돌려 볼 수 있는 마법 같은 능력이다. 귀밑에 심어 둔 이 캡슐은 엄지손가락 크기의 단말을 조작해 자신의 기억을 생생하게 눈앞에 재생할 수 있으며 화면에 띄워 남들과 같이 볼 수도 있다. 더 이상 기억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다.


기억: 또 다른 아이덴티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궁금해한다. 혹시 다른 사람의 기억을 엿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 매력적인 컨탠츠는 없을 것이다. 개개인의 그레인에 저장된 기억은 자신만의 소유가 아닌 해당 사회에서 자신을 남과 구별하는 잣대가 된다.


변호사인 리암은 취직을 위해 로펌의 면접을 치르나, 그의 최근 기억도 평가 기준이 된다. 회사 인사과에서는 최근 리암의 기억을 다음 주에 제출하도록 요구하며, 리암도 반대로 이전의 면접 장면을 수없이 되돌려 보며 면접관의 자세, 억양 및 목소리 톤에 비추어 합격 가능성을 짐작해본다. 또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입국할 때도 그의 신분을 증명할 여권보다도 중요한 것이 그의 최근 기억이다. 


자신의 기억이 타임라인에 저장된다

(출처 : https://howwegettonext.com/the-black-mirror-writers-room-teaching-technology-ethics-through-speculation-f1a9e2deccf4)


여기서 리암이 과거의 행위를 읽듯이 우리는 시청자로써 리암의 행동과 눈빛을 읽는다. 리암이 주로 맡게 될 일은 소급 양육 소송이다. 리암은 회사에 해당 소송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지 질문을 던지지만, 회사 관계자는 별문제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리암은 세세한 일에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의심해 보는 성격이나, 세세한 문제에는 방점을 놓지 않는다는 회사의 태도와는 미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리암은 추후에 이 회사와 좋은 인연 관계를 갖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내의 외도를 이번 주에 목격했고, 그로 인해 그레인을 제거할 것이며 회사 인사과에는 자료를 제출하지 못할 것이다.


사건의 시작 : 의심

리암의 아내와 조나스의 대화 장면

(출처 : https://www.mirror.co.uk/tv/tv-news/blackmirror-thirdepisode-theentirehistoryofyou-12260563)


그는 아내 친구의 파티에 초대되어 방문하나, 아내가 조나스라는 남자와 사이좋게 얘기하는 걸 보고 의문이 생긴다. 심증은 결국 자신의 기억을 찾아보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조나스라는 사람에 대한 기억에 대해 확신이 없음을 알게 된다. 파티 내내 조나스와 피온의 반응을 유심히 살핀 리암은 파티가 끝나자 조나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가 문 앞에서 피곤하다며 돌려보내는 의외의 행동을 보이게 된다. 집에 와서도 리암은 계속 조나스의 행실에 대해 언짢음을 보인다. 결국 아내 피온은 예전에 피온과 조나스가 잠깐 사귀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피온은 그전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았느냐며 그때도 아무런 일이 아닌 걸로 결론나지 않았었냐 주장하며 어딘가 방어적인 자세를 고수하며 둘 간의 말다툼이 벌어진다. 결국 리암은 피온에게 사과를 하며, 곧 섹스를 통해 화해하고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보였다. 


사건의 진행 : 추궁


하지만 리암의 의심과 집착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새벽 일찍부터 어젯밤의 파티 장면을 돌려보며 조나스의 농담에 피온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하나하나 추궁하고, 조나스와 대화 장면에서 독순술 대화 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의미까지 또다시 파악하려 든다. 심지어 베이비시터에게도 그 장면을 보여주며 '누가 조나스를 더 초대하고 싶었는지’ 의견을 물어보며 술에 취해 계속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리암이 이렇게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경향은 확실하고 선명한 기억에 근거, 계속 분석하여 도출해내는 것들의 결과였으며 그레인이 없었다면 그냥 한 번 다투고 넘어갈 정도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직업 성격상,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싸우는 일을 하기에 이 정도의 추궁은 기본적이었을 것이다. 


조나스에게 피온에 대한 기억을 삭제하라고 협박한다

(출처 : https://the-artifice.com/black-mirror-tv/)


그의 추궁에 피온은 ‘그가 중요한 존재였어’라고 이야기를 하고, 감정이 격해진 리암은 차를 몰고 무작정 조나스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조나스의 집에서 자신의 아내에 대한 관계에 대해 확인하며 행패를 부리다 기절했다. 하지만 끊긴 필름도 그의 그레인에는 모조리 저장되어 있었고 돌려본 기억 속에서 리암은 조나스를 제압하고 깨진 병으로 위협해 그의 그레인에 저장된 아내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지우게 하는 중이었다. 그 장면을 리암은 저장해 놓았고, 기억을 돌려보던 중 리암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조나스의 기억에 떠오른 아내에 대한 화상 중에 자신의 집에 있는 그림 사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그림 아래에는 아내 피온의 모습이 있었다. 


사건의 종결 : 판도라의 상자


리암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피온에게 조나스의 기억을 보여주었고, 피온은 과거 리암과 싸우고 그가 집을 나갔을 때, 외롭고 술에 취해 조나스와 하룻밤 잤다고 실토한다. 리암은 아내에게 그날의 기억을 재생하게 하지만 피온은 '그날의 기억을 지웠다'라며 거짓말한다.'그러면 타임라인이 비어 있겠네'라는 리암의 말에 피온은 몰래 기억을 삭제하려 하다가 리암에게 제재당한다. 아내는 그날의 기억을 재생하고 두 부부는 절망에 빠진다.

불륜장면이 침실을 꽉 채운다.


리암은 자신의 그레인을 강제로 꺼내려고 한다

(출처: https://the-artifice.com/black-mirror-tv)/


해당 장면 이후 리암 혼자만이 텅 빈 집 안을 둘러보며 피온과의 일을 재생해본다. 그는 결국 괴로움 끝에 면도 칼로 피부를 째고 그레인을 꺼내버린다. 그레인이 빠져나가는 순간 아내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에피소드는 막을 내린다.


남녀 간의 비밀은 있는 것인가?


이 에피소드에서 리암은 피온에게 ‘이건 내가 아니야.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어,’라고 하면서 기억을 재생하도록 강요한다. 드라마에서 비친 기억에 대한 집착 및 요구 행위는 흔히들 현실 사회에서는 휴대폰에 저장된 내용을 남녀가 확인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투영된다.


흔히들 커플 간에 다투고 싸우는 이유, 핸드폰에 있다. 현대 사회에는 온갖 비밀과 정보가 핸드폰에 있고, 핸드폰에 자료를 삭제하더라도 복원 기능을 통해 데이터를 살릴 수 있다. 카카오톡, 인스타 및 SNS 등 사람과 사람 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이 바로 기록의 공간으로 남아 그 안에서의 진실을 담고 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는, 40년 지기 친구들의 부부동반 모임에서 하루 저녁 동안 핸드폰으로 온 모든 문자 및 전화를 서로 공유하는 내기를 한다. 특히 ‘핸드폰’이란 또 다른 ‘그레인’인 셈이다.


완벽한 타인 등장 배우

(출처 :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67638)


서로 간의 비밀이 없음을 자부하는 친구들은 모두들 내로라하는 사회적 지위와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해당 파티 주최자인 석호(조진웅)과 그 아내 예진(김지수)는 성형외과 및 정신과 의사 부부, 친구 태수(유해진)은 변호사이며 그 아내 수현(염정아)는 아이 셋의 엄마이자 전업주부, 친구 준모(이서진)는 레스토랑 오너이며, 아내 세경(송하윤)은 동물병원 수의사이고, 마지막으로 친구 영배(윤경호)는 변변찮은 직업은 없는 처지이다. 


해당 영화는 초반 장면부터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에 초점을 맞춘다. 태수(유해진)의 아내인 (염정아)는 외출 시, 핸드폰의 메시지를 보려다 급하게 끄는 행동을 보인다. 그리고 매일 10시경에 낯선 여자에게 사진이 오니 영배(윤경호)에게 핸드폰을 바꿔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는 등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보인다. 


본격적으로 그들의 비밀이 낱낱이 공개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추후 정리될 완벽한 타인 리뷰에 넣을 예정이나, 이것의 핵심은 석호(조진웅)의 대사에서 드러난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상처받기 쉽고 핸드폰은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기계거든! 그래서 애초에 사람끼리 핸드폰으로 게임하자는 거 자체가 잘못된 생각인 거예요
- 완벽한 타인 中 -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를 다 아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욕심은 집착이지 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비밀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서로 간의 갈등이 생기고 해소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리암은 피온에게 ‘비밀이 있으면 진실이 드러나는 게 나아.’라는 이야기를 던진다. 


‘판도라의 상자’는 드라마에서 ‘그레인’으로 영화에서는 ‘핸드폰’으로 드러났다. 리암은 그레인을 몸에서 때어나면서 다시는 단순히 아내를 기억이 아닌 마음으로 기억할 것이다. 배우자의 핸드폰은 판도라의 상자이다. 다만 우리 생활에서 핸드폰을 없앨 수는 없으니 이것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람 관계에서 친할수록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살아가며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의 비밀이 지켜질수록 결혼 생활 및 인간관계의 만족도는 올라가는 점으로 볼 때, 서로 간의 믿음이 정말 큰 요소라는 걸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비밀은 있기에나와 같을 순 없다. 완벽한 타인이다.
- 완벽한 타인이란? -

리암의 아내인 피온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리암이 그레인을 없앤 것도 이제는 그녀를 마음으로 믿겠다는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는 단순히 사실과 증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심과 그에 따른 결론 도출이 아닌, 마음으로 관심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은 사람과 사람을 더욱 가깝게 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결국 그들을 멀게 하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단순히 기술뿐만 아니라 집착에 대한 행위에서 멀어 질때 결국 우리는 자유로워 진다.


어쩌면 '그레인'이라는 기술이 없었더라면 리암은 피온의 행동에 대해 그냥 넘길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레인'이라는 수단을 통해 과거를 파헤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란 그 비밀을 알게 된 순간, 누구나 타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단순히 해프닝으로 알고 그들의 관계는 존속할 수 있었겠다. 하지만 리암이 그레인을 제거하는 장면을 통해, 이전의 기억들은 모두 정리하고 앞으로 나가야 함을 보여준다. 그레인와 함께 있었던 남녀간의 피상적인 관계가 아닌 진실로 마음으로 이어지는 관계로 진행되야 함을 보여준다.


며칠 동안 그레인 없이 지냈는데 괜찮더라고요난 지금이 더 행복해요

– 당신의 모든 것들 中–


https://blog.naver.com/jck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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