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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Apr 25. 2021

꿈 없는 백수입니다만

대책이 있어야만 퇴사하나요?

서른 살에 퇴사를 했다. 

4년간 저축 붓듯 다녀온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그만하고 싶어서’. 일 년은 울기도 하고, 출퇴근길에 사고라도 났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시간이 해결해줬다. 어느새 나는 새로운 일도 어려운 사람도 없는 환경에서 무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직장 동료가 묻는다. "그거 누가 작업했어요?" 그러면 나는 퇴사자 이름을 말한 다음 파일을 찾아본다. 작은 회사의 몇 없는 장기근속자. 가끔 너스레 떠는 직원. 나의 포지션이었다.  


무탈한 사람도 그만하고 싶을 때가 있다. 

편집디자인 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했다. 기획안을 작성하고, 디자인 시안을 함께 구성하고, 글을 쓰거나 필자를 섭외하고, 교정지를 적어도 세 번 정독한다. 콘셉트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긴 하지만 결국 하는 일은 같다. 한 번은 교정교열을 보다 나도 모르게 "지겨워." 하는 말이 나왔다. 내 목소리가 낯설었다. 주변을 보니 내 말은 못 들은 듯 다들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퇴사하겠다는 말에는 이런 반응이 따른다.

"그만두고 뭐 할 거니?" "상여금 생각해서 몇 개월 더…." "환승 이직 알아봐." 분명한 질문들 앞에 나는 불분명해진다. 그냥 이 일 말고 다른 일이 하고 싶고, 상여금 기다리면 어영부영 일 년이 또 지날 테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환승 이직은 스스로를 다그치는 일 같고. 상사에게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두고 할 일을 못 찾았다면 그 일을 찾을 때까지 회사를 다니며 생각해보라고.


퇴사하려면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할까.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일'이냐는 질문에 생각나는 직종을 두어 개 말했다. 퇴사한 사람들을 보면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일이 많다. 보장된 미래가 없더라도 그동안 꿈꿔온 일을 이루겠다는 마음이 있다. 나도 꿈을 좇는 사람이었다. 등단을 하고 싶었다가 나중에는 그냥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그마저도 잘 모르겠다.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모른다니. 


차라리 꿈이라도 좇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친구는 매일 꿈에서 "퇴사하겠습니다." 하고 말한다. 속 시원히 말하고 나면 꿈이다. 이제는 꿈에서도 안다고 한다. '아 이거 꿈이구나.' 어떤 의미로든 꿈을 이루는 건 쉽지 않나 보다. 나는 친구에게 말한다. "일단 질러." 좋은 친구는 아니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나는 꿈도 대책도 없이 퇴사해, 1년을 지내고 있다. 이후 계약직으로 일하고 인디자인을 해보고 또 아이들을 가르쳐봤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1년 사이 눈앞의 일들에 뛰어드는 데 익숙해졌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부정적인 말들도 바닥났다.


그러니까 이제 이런 말도 해줘야 한다.

"그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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