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끈적끈적한 게 만져졌다. 막대사탕이 들어있었다. 주머니를 뒤집어 바닥에 털었다. 사탕 비닐 조각과 과자 부스러기가 나왔다. 바닥을 쓸고, 주머니 속을 닦고, 손을 씻으면서 생각했다. 언니 옷들은 다 이럴까.
우리 집에서 언니는 유일하게 자기 방을 가졌던 사람이다.
우리 집은 부모님과 세 자매가 머무는 안채와 언니가 지내는 별채로 분리되어 있었다. 언니 방문에는 자물쇠 대신 숟가락이 꽂혀 있었는데, 이따금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은 책상과 장롱만으로 꽉 찼고, 예쁜 액자가 걸려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방에 들어설 때마다 두근거렸다. 어른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꼭 이런 방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언니 방에서 가장 좋아했던 건 책상 서랍이었다. 서랍에는 삐삐 세 개와 카세트테이프가 들어있었다. 삐삐를 만지작거리다가 방문에 다시 숟가락을 꽂고 안채로 돌아왔다.
내가 알던 언니는 자기만의 공간과 물건을 가진 사람, 그리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언니는 자매들 가운데 가장 빨리 사춘기를 맞았다. 까닭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방에 들어가 종일 나오지 않은 날도 많았다. 생각해 보면 언니의 기분이 곧 나의 기분이었다. 나도 까닭 없이 목소리를 높이게 됐을 즈음 언니는 성인이 됐다. 그리고 가장 먼저 엄마가 됐다.
어느날 엄마가 된 사람을 알고 있다.
20대의 언니는 엄마와 달랐다. 말투와 식성부터 천 원, 이천 원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까지. 언니는 운전면허를 취득하자마자 차를 빌려 인천으로 조개구이를 먹으러 갔다고 했다. 운전이 서툴러서 몇 번이나 차선을 넘었고, 길을 잘못 들어 다섯 시간이나 걸렸고 했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도 마냥 웃었다고 한다. 내가 멋있다고 하자, 언니는 겁이 없었다고 답했다. 언니는 스스로를 겁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잃을 게 생기면서 무서운 것도 많아졌다고.
언니가 첫째를 낳은 후 가장 많이 한 말은 “아프다”였다. 종종 우리를 붙들고 출산이 얼마나 아픈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출산’이라 하면 숭고함을 먼저 떠올렸던 나로서는 꽤나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언니에게서 낯선 표정도 발견했다. 작고 예민한 아이를 보면서 언니는 우왕좌왕했다. 아이가 열이 들끓어 응급실에 다녀온 날이면, 종일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언니가 아팠던 순간이 비단 출산을 할 때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파서 둘째는 못 낳겠다던 언니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익숙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 기분이 언니를 또 어떤 사람으로 변화시킬는지 모른다. 엄마로서의 언니는 무작정 차를 몰고 나가거나 전처럼 비싼 옷을 사 입지 못한다. 옷보다는 기저귀 브랜드와 어린이집 후기에 관심이 많다. 아이가 언니 옷에 토하면 먼저 아이를 씻기고 배를 쓸어 만져주다가, 옷 갈아입는 걸 깜빡 잊기도 한다.
언니는 지금도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산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아이를 잘 훈육하거나 직접 만든 간식을 자주 내놓지도 않는다. 엄마가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이 생긴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언니는 지금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키운다. 씁쓸하지만, 언니를 바라보는 나도 달라졌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