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2
오늘은 오늘의 영감을 받아서 새로운 글을 쓰고 싶은 욕망과 달리, 딱히 받은 영감은 없는 심심하고 평온한 하루를 보냈다.
아침 9시, 동거인의 깨우는 소리에 '5분만 더'를 서너 번 외치다 이제는 정말 안 되겠다 싶을 때가 돼서야 졸린 눈을 비비며 욕실로 향해 15년 전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을 들으며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5분만 더'를 너무 외친 탓인지 교회에 늦어 헐레벌떡 입고서는 대충 던져둔 옷을 다시 걸치고 교회에 갔다. 새해에는 더 받으려 하기보다는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고 심플하게 살아가라는 골자의 설교를 듣고는 '그렇지, 그렇지' 속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약간 주린 배를 하고 집에 와서는 비건 만두와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며 디즈니 플러스를 켜 마블의 드라마를 네댓 편 봤다. 이제 좀 생산적인 걸 해볼까 싶던 참에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스우파)> 콘서트 실황을 중계한다기에 덕력 충만한 친구들과 카톡으로 떠들며 콘서트를 봤더니 이내 8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이젠 진짜로 좀 더 생산적인 것을 해볼까 하던 찰나에 다른 친구들의 단톡에서 전화벨이 울렸고 단체 통화를 시작했고, 무능한 상사와 일하는 것의 괴로움에 대해서, 슬픈 연애를 할 때만 대화에 나타나는 친구에 대해서,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김수영 시 속 인물 같은 서로에 삶에 대해서 2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다.
아, 결국 '생산적'인 일은 못했다.
원래 오늘은 썼던 글을 다시 써보려 했다. 브런치에 글 쓰는 사람들이라면 많이들 공감할, 브런치 작가가 아니라 '진짜 작가'가 되는 꿈을 (비록 그것이 헛된 망상에 그친다 하더라도) 이루기 위해 투고를 해볼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쁘실 편집자분들께 링크만 툭 던질 수 없으니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한데 모아 문서 파일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하고 레이아웃도 다시 잡아야 한다. 브런치 북 응모 광탈의 쓰라린 아픔을 담은 글을 가지고 투고해볼 작정이기 때문에 다시 읽고 수정하는 것도 필수일 테다. 무플도 피드백이라면 피드백이기 때문에, 이미 피드백을 거하게 받았으니 정말 투고로 뭔가 돼보고 싶은 요량이라면 수정이 필수라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의 눈치는 있다.
오늘은 원래 그 '꼭 해야 할 일'을 할 생각이었다. 앞서 적은 오늘의 내 시시껄렁한 하루에 그런 흔적이 없다고 시도도 안 했다고 생각하시면 서운하다. 나는 마블 드라마를 보고 생산적인 걸 해볼까 싶던 차에 실제로 다시 뚜껑을 열어 내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으니까. 다시 본 내 글은, 오래간만에 글을 쓰며 의욕이 과다하게 뿜어져 나온 티가 역력했다. 맨날 폐강만 당하다가 오랜만에 잡힌 강의에 너무 들뜬 나머지 원래 해야 할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아하는 말들을 쏟아내며 주어진 시간을 한참 오버해서 수업을 끝내는 교수님 수업 같았다. 와, 정말 별로였다. 나름 재밌다고 생각하고 잘 썼다고 생각했으니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세상에 내놓은 것일 텐데, 카카오 서버를 활용하고, 전기와 시간을 투입해서 나눠보자고 한 것일 텐데, 오늘 다시 본 내 글은 술에 진탕 취해 잘생겼다고 생각해서 잤던 남자의 다음 날 아침 본 진짜 얼굴 같은 느낌이었다. 혹은 맨날 보정해주는 카메라 앱으로 셀카 찍다가 아이폰 전면 카메라로 찍은 내 얼굴 같았다.
이를 어쩐다 싶어 허둥지둥 고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똥을 도넛 모양으로 빚는다 해서 갑자기 똥이 초콜릿으로 변하진 않는 건데, 내가 지금 똥으로 초코링 도넛을 만들겠다는 건가. 대체 나는 어쩌자고 그런 희망을 품었을고.' 어째 글을 고치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스우파 콘서트로 도망을 쳤다. 콘서트를 다 보고 이제는 도망치지 말아야지 싶어서 다시 내 글을 열어봤다. 아까는 너무 내가 나한테 모질게 굴었다 싶어 '썼던 글을 찬찬히 다시 보면서 스스로한테 괜찮다고 해줘야지.'생각하며 워드 파일을 더블 클릭했다. 그리고 워드 창이 눈앞에 뜨는 순간, 똥으로 빚다만 도넛이 인사했다.
'Hey~'
아, 오늘은 안 되겠다. 썼던 글을 다시 보는 괴로움이나 토로하고 잘란다.
'진짜 작가'가 된 사람들은 다들 이걸 견디는 걸까? 내가 마음에 들어 했던 나의 띵문들이 자고 일어나 다시 보니 똥이었다는 이 사실을 모두 견뎌내는 걸까? 나는 이게 똥인 줄 알면서도 내 몸에서 나온 것이라 나름 정이 들었는데, '진짜 작가'들은 똥은 똥이니 미련 갖지 않고 변기 레버를 눌러 흘러 보내는 것일까? 매정한 사람들... 똥으로 초코 도넛을 만드는 데 성공하는 작가들도 있을까? 저 유명 작가들이 만들어낸 초코 도넛도 원래는 똥이었을까? 지금이라도 감히 책을 쓴 '진짜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나무와 지구와 환경에 훨씬 유익한 건 아닐까? 아니, 근데 썼던 글을 다시 봐도 기쁜 작가들도 있을 거 아니야?
이어지는 생각들에 여러모로 혼란스럽고 썩 행복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전에는 내가 잘했다고 생각한 것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스스로를 달래야겠다. 부족한 것이 보이면 나아지고 싶은 원동력을 얻는 것이고, 조금씩 나아지면 똥도 약으로 쓰인 것이라 생각해야지. 약은 원래 괴로운 법이다. 오죽 괴로우면 하루의 적정 복용량도 정해져 있을까. 나는... 오늘의 괴로움은 이로 족하다. 더 복용하면 남용이니까... 썼던 글을 다시 보는 괴로움은 내일로, 내일모레로 견딜 수 있는 수준에서만 조금씩 조금씩 복용해야지.
약으로 쓸 똥이 남들은 똥을 약에 쓰려고 해도 없다는데 나는 브런치에 잔뜩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도 눈에 눈물이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