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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Jan 22. 2022

써달라고 하는 글과 쓰고 싶은 글이 달라서

희망사항은 작가, 현실은 블로거, 기자, 최악의 시나리오는 작성자

지난주에는 우리 집 고양이 콩날두가 다음 메인에 오르는 일이 있었다.


뭐라도 쓰고 싶은데 직장에서 어깨에 지고 와 아직 채 털어내지 못한 삶의 무게 때문에 정말 하고 싶은 말들, 쓰고 싶은 것들은 삼키게 되는 날 쓴 글이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최대한 가볍게 써보려고 해도 어느 순간 미간에 주름잡고 진력을 다해 쓰게 되기 때문에, 에너지가 없는 평일에 쓴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 말들은 제쳐 놓고 쓴 글이었다.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와 도어록 비밀번호를 띠띠띠띠 띠띠띠띠 누르고 커버를 닫으며 부르게 되는, 고개를 문 밖으로 빼꼼히 내놓을락 말락 하며 나를 반기는 이름들인 '날라! 호두! 콩떡이'가 문득 고마워 쓴 글이었다.



다음 날이었나? 갑자기 글의 조회 수가 1000이 넘었다는 브런치 알람이 왔다. '어딘가에 노출되었나 보다!' 생각하고 유입 경로를 보니 다음 URL이 찍혀있길래 다음 메인 페이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 번에 찾을 수 없어, '브런치' 탭을 들여다보며 여러 번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런데도 잘 보이지 않았다. 브런치 탭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내 글은 '동물' 코너에 있었다. 제목이 '고양이도 이름을 알아듣는다'여서인지 동물에 관한 이야기로서 소개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글로서 '읽어볼 만한' 것으로 평가받았기보다는 순전히 콩날두의 미모가 가득한 사진들과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는 그들의 똘똘함 때문에 '볼 만한' 거리로 동물 코너에 오른 것이지, 내 글에 대한 인정은 아닌 것이다. 2009년이던가, 싸이월드 시절 싸이월드 블로그에 썼던 글 리뷰가 싸이월드 메인에 오르며 하루 만에 3만 명 이상씩 사람들이 방문하는 블로그가 되었던 때 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13년 만이네) 찾아온 노출의 기회였지만 편히 기쁠 수만은 없었다. 동물 코너가 싫었단 것은 아니다. 다음 메인에서 콩날두가 보이는 일이 즐거웠다. 내 새끼 예쁘다고 사람들이 칭찬해주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앞으로 주구장창 우리 집 고양이 얘기들만 브런치에 써볼까도 생각했다.


이건 시작이었고, 계속 조회수가 올라가더라... 포털의 힘이여
맨 아래 우리 콩날두가 있었지. 동물 탭에.



다만 화천, 일산, 연신내에서 온 우리 집의 코리안 숏헤어 삼 남매의 출세를 기뻐하면서도, 나의 출세는, 내가 진짜 내고 싶은 내 목소리는 언제 세상에 내놓아보나 생각했을 뿐.


브런치 글 조회수가 1,000이 넘었다는 알림이 오기 전, 그날 나는 한 출판사에 투고했던 원고에 대한 거절 메일을 받았다. 


브런치에선 글 쓰는 이들을 '작가'라고 하고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서도 내 목소리를 내놓지만, 나는 출간한 '진짜' 작가가 되고 싶었다. 동시에 여러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그 수에 한계가 있지만, 글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과 오래도록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 가능한 몇 천 권 이상의 책을 내놓는 사람 말이다. 브런치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그런 것이 가능할 수 있겠지. 물론 더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한때 싸이월드 블로그도 그렇게 기능했다. 그러나 싸이월드는 없어졌다. 내 글도 사라졌다. 오래 나누고 싶던 나의 이야기들도 없어졌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없어질 수도 있는 온라인 플랫폼에서가 아니라 단 한 권이라도 물성을 지니고 먼 훗날 도서관 한 켠에서 발견될 수 있는 글을 남기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런데 회신을 준 출판사가 이번엔 그런 기회를 갖기 어렵겠다는 메일을 보내온 직후, 가장 의기소침한 때에 우리 고양이들이 세상에 내놓아진 것이다. '동물' 코너에.


직전의 거절 메일로 인해 의기소침해질 대로 의기소침해진 나는, 브런치에서 글 쓰는 이들을 불러주는 '작가'라는 말이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브랜딩을 위한 유저 기만 같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에 브런치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 발에 채이는게 브런치 작가라면, 브런치 작가란 결국 잘 쳐줘야 고급 블로거인 것이다. 다만 이곳의 고급 블로거에는 진짜 작가가 될 수 있을 여지나 기회가, 일기장에 적는 것보다는 좀 더 있다는 점 때문에 나는 여기 쓰는 것이다. 작가도 아니면서, 작가인척 하면서.


블로거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되고 싶은 내가 블로거 재질은 될 수 있어도 작가 재질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은 사뭇 절망스러운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검색을 통해 생활정보를 주는 측면에 가까운 블로그보다는 늦은 밤 잠들기 전 누군가의 베개 곁에 뉘어있다 매일 꾸준히 열댓 장이 읽히고 싶은 내밀하고도 솔직한 이야기들이기에.


'블로거'로서는 우리 집 고양이가 슈퍼스타가 되는 기쁨을 맛본 날, 나는 작가로서는 깊은 고배를 마셨다.


순전히 글로만 벌어먹고 사는 것을 바라는 순진함을 가지고 작가가 되고 싶다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인세로 먹고사는 작가가 아니어도 좋다. 나는 이미 돈이 되는 글을 쓴다. 작가가 아닐 뿐. 한 스타트업 전문 매체의 기자 역할로 매 월 스타트업과 관련된 트렌드나, 투자와 관련된 20페이지짜리 원고의 마감을 친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다. 매월 추가 소득을 따박 따박 통장에 꽂아주는 돈이 되는 글이지만 일어난 사건을 무미건조하게 전달하거나,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더듬어 짚는 글에 불과하다. 물론 이런 글을 쓰면서도 읽는 사람들의 이해를 해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이런 글은 독자만을 위한 것이라 내가 그 안에 없다. 나와 독자 간의 소통이 아니라 내가 지워진 글이다. 나를 지운 글은 돈이 된다. 기자이나 역시 작가는 아니다.


블로거도 작가도, 기자도 모두 쓰는 일을 한다. 되고 싶은 것은 글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작가인데, 돈을 줄 테니 써달라고 하는 글은 내가 없는 글을 쓰는 기자 일이다. 돈도 안 주고,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예쁜 사진이 곁들여지면 우리 고양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일은 블로깅에 가까운 글이다. 셋 다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돈을 받는 걸 보니 현재로선 가장 잘하고 있는 일은 기자인 듯한데, 이 역시도 주 직업은 아니다 보니, 기자라는 시치미가 떼어지면 결국 나는 그 어떤 글보다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제일 많이 작성하는 '작성자'로 그치게 되는 건 아닐까. 나 없는 글 쓰기에 매진하고 내 목소리를 가뭄에 콩 나듯 쓰는 사람이 되진 않을까 두렵다. 무엇보다 내 얘기를 지나친 자기 연민도 아니고, 혼자만의 이야기로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흔한 이야기로도 아닐 수 있도록 풀어내는 작가로서의 역량은 타고나지도 못했을뿐더러 영영 없는 채로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닌지가 제일 두렵다.


어쩌다 나는 자아가 이다지도 비대하여 글로 많은 사람들이랑 이야기하고 싶어 하도록 무럭무럭 비대한 자아로 자라나 있을까. 왜 글을 잘 쓰고 싶을까. 쓰고 싶은 것과, 잘 쓰는 것과, 쓸 수 있는 힘 사이에서, 내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몰라 조난당한 기분이다. 내 글의 여정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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