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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Jun 17. 2024

#02. 편지와 애인

 백수가 되었으니 하루 시간표는 제 마음대로입니다. 실컷 자도 좋고 밤새 무언가 읽거나 봐도 무방하지요. 제 성격상 루틴이 있는 삶에서 안정감을 느끼기에 그렇게 보내진 않습니다. 대부분 아침 9시에 일어나 12시 전에 눕습니다. 하루 일과는 9시 기상. 대충 씻고 카페에 가 무언가 쓰거나, 읽습니다. 12시쯤 나와서 오는 길에 김밥 한 줄을 사 와 점심을 먹습니다. 이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운동을 다녀옵니다. 곧 저녁을 먹고 자유시간을 보냅니다. 그전까지는 자유시간이 아니었냐 물으신다면 나름의 일과시간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정했지만, 루틴처럼 해오는 일이기에 자유시간은 아닌 것으로 해두죠.


 제게는 검은색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5년 가까이 만난 애인이 있습니다. 10년 넘게 회사생활을 하며 본인 분야에서 자리 잡은 멋진 사람이지요. 어느 날 그가 작은 선물 상자를 내밀었습니다. 뭔가 하고 열어봤더니 세 줄정도 쓸 수 있는 작은 편지와 스타벅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들어 있었습니다. 매일 카페로 출퇴근하는 저에게 쓰라며 돈을 내고 충전한 스타벅스 카드와 이 시간(제가 백수가 된 시간)을 잘 버티자며 쓴 응원의 편지였습니다. 요즘도 그 짧은 편지를 종종 살펴봅니다. 때로는 긴 글이나 한 시간이 넘는 통화보다 짧은 편지가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편지에는 어떤 기운 같은 게 담겨 있거든요. 새로 구매한 향수 상자를 열 때 향이 나는 것처럼 편지를 열 때마다 저를 보살펴주는 그의 따뜻함이 스며듭니다.


 오늘도 카페로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애인이 준 카드를 들고 말이지요. 부적처럼 편지도 읽으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그래서 이런 일을 당하는 걸까? 생각하는 당신과 나 모두 괜찮을 거라고. 언젠가 김영하 소설가가 말한 것처럼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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