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야구를 처음 보기 시작한 건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팀을 응원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현대유니콘스 경기를 즐겨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야구 경기 시간과 겹치는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TV 근처를 서성거리는 저를 뒤로한 채 경기 시간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며 마른오징어를 굽는 아버지 모습이 생생합니다. 간혹 경기 내용이 형편없거나 패색이 짙은 날에는 일찌감치 저에게 리모컨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저는 미안하게도 그들이 부디 지길 바라며 아버지 곁에 앉아 재미없는 공놀이를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현대유니콘스도 해체됐지만, 야구는 남았습니다. 어릴 적 재미없는 공놀이라 불렀던 야구는 이제 저에게 없어선 안 될 것이 되었습니다. 야구 시즌 기간에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야구를 보거나 틀어놓고 보내고 있습니다. 애인은 저보다 더한 야구팬입니다. 주말에 가끔 야구장에 가고 평일 데이트가 있는 날이면 야구중계를 보며 저녁을 먹는 게 일상이 되었지요. 백수가 된 지금은 야구에 더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딱히 할 게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루틴처럼 같은 시간에 할 일이 생겼다는 즐거움도 있겠습니다. 늘 저녁 약속이 잡혀 있는 삶이랄까요. 흔히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관련한 책도 많고 명언도 많지요. 멀리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보는 사람은 속이 타들어갑니다. 상대팀과 승부를 내는 스포츠이기에 매번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는 경기는 어떻게 져도 늘 괴롭습니다. 당분간 안 본다 해놓고 다음날이면 또 TV 앞에 앉습니다.
며칠 전 애인과 소파에 앉아 괴로운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패색이 짙은 경기에 저희는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다른 얘기를 하며 설렁설렁 경기를 봤지요. 타석에 들어선 우리 팀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계속 커트하며 파울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부터 파울 타구는 스트라이크 숫자가 올라가지 않기에 타자가 계속해서 투수의 공을 커트하며 파울을 만들어낸다면 평생 타석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는 없지요. 계속해서 파울을 만들어내는 타자를 보며 의도치 않게 긴 기간 쉬다가 이제야 여기저기 면접을 보고 이력서를 내고 있는 제가 떠올랐습니다. '나도 타석에 서서 파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공은 계속 던져지고 저는 무언가 액션을 취하고 있습니다. 멋진 안타나 홈런을 만들어내서 다시금 보란 듯이 일자리를 구하거나 차라리 아웃되어 이 업계를 떠나면 좋겠지만, 현재는 계속해서 경기장 밖으로 공을 내보내고만 있는 것 같았습니다. 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왜 그 업계만 고집하냐, 넓게 다른 곳도 살펴보라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들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집에 돌아와 다시 준비합니다. 쉽게 타석에서 물러나고 싶진 않습니다. 아직 투 스트라이크이니까 스윙은 돌려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파울이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