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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진 Jan 13. 2019

당신은 그림을 보고 울어본 적 있나요?

이제 더 이상 떠남이 두렵지 않은 여행자가 보내는 여덟 번째 러브레터

@벨베데레 궁전, 오스트리아 비엔나


전시회 도대체 왜 가는 거죠?

누군가 저에게 다음 생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저는 바로 '화가'라 대답할 겁니다. 글자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선과 색, 질감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건 가슴 설레는 일이니까요. 어릴 적부터 미술에 재능이라곤 쥐뿔도 없었던 지라 저에게 없는 재능을 무조건적으로 동경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제 스스로 그림을 그리거나 표현할 줄 모르는 탓에 미술 작품을 보며 감동해본 적도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방학 숙제로 미술관을 가야 할 때면 꾸역꾸역 발도장을 찍어내듯이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곤 했죠. 이런 제가 미술 작품 앞에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이건 클림트의 명작 '키스' 이야기입니다.


클림트의 '키스'를 찾아서... 벨베데레 궁전

비엔나에서의 첫날, 부푼 기대감을 안고 들른 미술사 박물관에서 큰 실망감만 느꼈습니다. 예술의 도시 비엔나에서 다양한 미술 작품과 조각들을 충분히 감상하겠다 결심한 저였는데, 강한 종교적 색채와 이름 모를 조각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 전 정말 미술이랑은 안 맞나 봐요. 전 날의 실패 탓에 자연스레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클림트의 '키스' 딱 한 작품을 보기 위해 일정에 넣은 거라서요.


작품 설명도 듣고 다양한 나라의 언어가 만드는 소음도 차단할 겸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습니다. 이어폰을 꽂고 한 작품씩 차분히 관람해 나갔죠. 다행히 미술사 박물관보다 종교적 색채가 덜하고 저조차도 아는 유명한 작품들이 종종 있어 부담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다음 관. 입구로 한 걸음 다가섰는데 그 큰 전시관 안에서 유독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예상하셨듯이 바로 클림트의 '키스'(1907)였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한동안 홀의 가장 안 쪽에 전시된 클림트의 키스만 바라봤습니다. 한 걸음씩 그림에 가까워질수록 일렁이는 금빛이 자아내는 경외감에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코 앞에서 바라보는 클림트의 키스는 더욱 특별했습니다. 두 연인이 서로를 감싸 안고, 그들의 사랑이 금빛 입자로 구현돼 이들 주변을 떠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분명히 종이에 그려진 그림인데 입체적으로 보였던 이유는 뭐였을까요?


오랜 시간 그림을 보고 있자니 실제 연인이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은밀한 기분에 취합니다. 그들을 둘러싼 황금빛 물결이 끝없이 일렁이며 공간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을 글자로 쓰고 다시 읽자니 민망한 감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만, 실제 이 작품과 마주한 누구나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리라 자신합니다. 전날 점심 식사를 함께한 오빠가 이 작품의 붓 터치에 홀려 한참을 보다 왔다기에 코웃음을 쳤는데, 막상 그림 앞에 서니 알겠더라고요,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외감. 그 말만이 이 그림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고요한 내 마음에 돌을 던져요, 책 읽는 소녀

클림트의 키스가 황금빛으로 저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면, 잔잔히 제 마음을 두드린 작품도 있습니다. 

바로, 프란츠 아이블(Franz Eybl)의 '책 읽는 소녀(A Girl Reading)'(1850)입니다.


뽀얀 살결의 단발머리 소녀가 고요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림에는 기본적으로 소리라는 감각이 없는데, 왜 이 작품을 마주한 순간 주변이 단번에 고요해지는 기분에 휩싸였을 까요? 보는 순간 마음에 들어 작품 소개를 찾았는데 '옷이 저렇게나 흘러내리는지도 모를 만큼 책에 흠뻑 빠져있는 소녀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소녀의 피부며 머릿결, 그리고 책을 꼭 쥐고 있는 저 손까지 예뻐 한없이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벨베데레 미술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작품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술 작품이 그려진 엽서를 구매했어요. 그 넓은 미술관에서 내 작품을 찾은 기쁨에 민박집에 도착하자마자 같은 방 친구에게 엽서를 자랑했습니다. 제가 사 온 엽서를 보고 '책 읽는 소녀'에 홀딱 반한 친구도 다음 날 벨베데레를 들렀을 정도입니다.


어설프지만 연필을 쥐어보려 합니다

혹시나 제가 비엔나로 다시 여행을 오게 된다면 빈 스케치북과 색연필 한 세트를 가져오고 싶어요. 잘 그리지 못하더라도 제가 첫눈에 반했던 작품들을 제 손으로 그려오고 싶어 졌습니다. 어설프더라도 현장에서 슥슥 그려낸 그림 한 장이 제가 이렇게 줄줄이 써 내려가는 텍스트보다 더 효과적으로 현장의 감동과 분위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설프지만 연필을 쥐어보려 합니다. 뭐든 그리고 색칠하며 제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요. 당신과 그리고 내일의 나에게 요.


클림트의 '키스'처럼 제 영혼을 송두리째 뒤 흔들

또 다른 작품을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며 여행자 김수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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