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진 Jan 13. 2019

디저트의 도시, 비엔나

이제 더 이상 떠남이 두렵지 않은 여행자가 보내는 열한 번째 러브레터

@카페 자허, 오스트리아 비엔나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어요, 제발!

저는 대표적인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만 마시는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입니다. 제 사전에 따뜻한 음료란 존재하지 않죠. 하얗게 입김이 서리는 한 겨울에도 제 선택은 무조건 아이스 라테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유럽은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 외에는 따뜻한 커피가 기본이더라고요. 프라하나 부다페스트에서는 매일 아침 아이스커피를 찾아 스타벅스를 방문했는데, 비엔나에서는 그마저도 찾기 어려워 저 사실 많이 슬펐습니다. 


저 같은 또 다른 얼죽아들을 위해, 그리고 디저트의 도시 비엔나를 만끽하고 싶은 예비 여행자들을 위해 비엔나 3대 카페라 불리는 '카페 자허'와 '카페 데멜', 그리고 '카페 란트만'을 비교해보려 합니다.



살구 쨈 가득한 정통 토르테를 맛볼 수 있는 '카페 자허'

자허 토르테의 원조, 카페 자허입니다. 비엔나 오페라 극장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빨간 파라솔이 덮인 카페죠. 카페 내부는 마치 씨씨(SISI) 왕비가 살았던 그 시절처럼 우아하고 고풍스럽습니다.


자허 토르테를 겉으로 봤을 땐 그냥 초콜릿 케이크가 아닐까 싶겠지만, 한 입 먹어보면 미묘한 맛에 놀라시게 될 거예요. 케이크 시트 안의 살구 쨈과 휘핑크림이 어우러져 달콤한데 느끼하지는 않은 독특한 맛을 만들어 내거든요. 굳이 왜 이 먼 곳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먹나 했는데 시트 사이에 얇게 발린 살구 쨈이 케이크 전체의 맛을 바꾸더라고요. 한 마디로 맛있습니다.


자허 토르테 하나에 아인슈페너 한 잔과 멜랑지 한 잔을 마십니다. 얼죽아에게는 연하고 미적지근한 커피였지만 내부 분위기에 취하니 제법 맛있더라고요. 서비스가 곧 친절을 뜻하는 한국과 달리 다소 불친절하다 느꼈던 비엔나에서 만난 가장 친절한 카페이기도 했습니다.



반가워서 눈물 날 뻔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는 '카페 데멜'

호프부르크 왕궁 구경 후 저녁 시간 전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들어간 카페 데멜. 카페 자허의 토르테가 맛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굳이 한 번 더 먹을만한 메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가볼 생각이 없었는데 동행의 손에 이끌려 엉겁결에 들어갔습니다. 베이커리는 맛이 없었지만 아메리카노 아이스를 마실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는 대만족이었던 카페였습니다.


카페 데멜의 토르테는 자허 토르테에 비해 수분감이 적고 살짝 바스러지는 식감이 강합니다. 게다가 토르테의 포인트였던 살구 쨈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탓에, 그냥 말 그대로 초콜렛과 바싹 마른 시트 케이크를 함께 씹는 맛이었죠. 저는 촉촉한 무스 식감을 좋아하는 지라 별로였는데 깔끔한 베이커리를 좋아하는 동행은 맛있다며 먹는 걸 보면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은 카페 데멜의 베스트 메뉴는 애플파이라는 점이겠죠.



넓은 공간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 란트만'

친구 'H'가 오전 내내 시간을 보낸 곳이에요. 세 시간 넘게 한 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서 의아해했는데 들어가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고즈넉한 실내와 웨이터의 미소는 마치 시공간이 멈춘 듯한 여유 있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식사부터 디저트, 카페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올라운드 레스토랑답게 커피 / 디저트 / 메인 디쉬 각 메뉴판이 따로 준비돼 있습니다. 메뉴 또한 다양해서 오전 내내 그곳에 있었다는 내 동행은 벌써 세 번째 디저트 메뉴를 즐기고 있었죠. 현지 언어나 메뉴가 낯설 이들을 위해 일러스트로 메뉴가 그려져 있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박물관 몇 곳을 들리며 마리아 테레지아에 꽂혀있던 저는 망설임 없이 처음 보는 메뉴인 '카페 마리아 테레지아'를 주문했습니다. 진한 에스프레소 위에 풍성한 크림과 귤껍질 슬라이스가 얹어져 텁텁한 끝 맛을 상큼한 귤 향이 감싸주더라고요. 비주얼조차도 여왕답게 너무나 완벽했습니다. 


I love COFFEE, I love TEA

체코가 맥주의 나라였다면, 비엔나는 디저트의 도시임이 확실합니다. 현지인들에게 맛집을 물어봐도 모두들 레스토랑 대신 베이커리나 카페를 추천합니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카페가 아니더라도 비엔나의 모든 카페들이 달콤한 디저트와 풍성한 목 넘김의 커피를 제공한다고 하니, 디저트의 도시 비엔나에선 꼭 한번 커피 한 잔과 베이커리를 즐기시길 바라요. 자칫 지칠 수 있는 여행의 순간을 달콤하게 마무리해줄 테니까요.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

이제야 미적지근한 멜랑지 한 잔이 그리워진 여행자 김수진 올림

매거진의 이전글 적막한 비엔나의 밤을 붙잡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