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 글 작성월 April, 실소가 터져 나온다
브런치를 개설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무 이유 없이 문득 무언가 쓰고 싶어졌기 때문. 부끄럽게도 직전 글을 작성한 시기가 지난 4월. 6개월 만에 또 다시 무언가 쓰고 싶어진 나는 결국 다시 브런치를 선택했다. 첫 번째 오늘의 수진 글을 읽는다.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때의 나 이렇게 의욕적이었구나 싶어 흐뭇해진다.
그렇다면 현황 보고를 해보자. 2019년 10월 22일 오늘의 수진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고백하건대 더욱 침전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보다는 답답한 마음을 비워내야 한다고 판단, '쉼'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변에 둘러댔지만 사실 잘 알고 있다. '쉼'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다는 것을. 침대에 누워 신경을 곤두세우는 초침 소리를 듣고 있는게 아니라 비워내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 그랬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감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매일이 너무 똑같아서라고. 요일이나 월이 바뀌어도 일상이 비슷하기에 시간을 베어낸 듯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물론 이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라 그럴 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부디 '어쩌다 발견한 하루' 웹툰이나 드라마를 봤기를) 제법 나이가 들어 머리에 든 말을 모두 내뱉을 수 없기에 평온한듯 컴퓨터 앞에 앉아 손가락으로 지껄여본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글을 퇴고할 오늘 저녁의 내가 오글거림을 못 이기고 글을 지울 것만 같다.
누구나 자신의 삶과 타인의 것을 비교한다. 왜 그리 옆 사람의 삶은 쉬워 보이는지. 10분 전 오늘의 수진도 그랬다. 나는 둔탁한 회색빛 목탄화인데 그와 그녀의 삶은 맑은 수채화일까. 이런 내 의문을 잠재워준 글귀를 sns에서 발견해 글로 남기고 싶었다.
어느 인생이든 어두운 긴 터널이다.
거기에 예쁜 전구를 달고 친구를 초대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퇴근 길에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가 너무 파리해보여 쓰지도 않는 펄 아이섀도우를 산 기억이 있다. 왜 그리 지쳐보였는지 뭐라도 생기를 주고 싶었나 보다. 푸념하는 나에게 엄마는 그래서 어른들이 새빨간 등산복을 사는거라며 깔깔 웃었다. 엄마의 농담이 큰 웃음으로 번졌고 그날 나는 다시는 패턴 많은 옷을 사오는 엄마에게 핀잔을 주지 않기로 약속했다. 모두의 삶이 어둡고 긴 터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놓이기 시작했다. 올해까지는 터널 속 먼지를 털어냈다고 생각하리라.
사실 이렇게나 어두운 글을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남은 두달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한다. 운전면허와 운동을 '시작'하는 것. 어이없게도 저녁 산책을 시작하려는 오늘부터 미세먼지가 극성이라고 한다.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틈타 얼마치의 운동을 하기 보다 운동을 '시작'하는 것으로 허들을 낮춰본다. 걷다가 우연히 허들을 넘어갈 수 있도록. 벌써 한 장을 다 채웠다. 기특하군. 이렇게 오늘의 일기를 마무리 한다.